[단독] "이중섭 그림, 타일에 베낀 위작" LA미술관 전시 초유의 사건
" “전시 도록 발행을 취소하겠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마이클 고반 관장의 말이다. 지난 26일 이 미술관에서 마련한 ‘한국의 보물들’ 전시 관련 간담회를 마치고서다. 전시 개막 후 해외 전문가들을 초빙해 특별 감정을 여는 건 미국 미술관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LACMA 관계자는 설명했다. 참석한 전문가들은 이중섭·박수근 그림 4점 외에도 조선시대 회화·도자 등 여러 점에 대해 위작 의혹을 제기했다. 간담회는 당초 예정됐던 8시간을 넘겨 10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전시에 출품된 박수근ㆍ이중섭 등의 작품이 위작으로 의심된다는 본지 보도〈중앙일보 2월 29일자 18면〉 후 박수근연구소와 한국화랑협회, 그리고 LA 한국문화원에서 질의서를 보냈다. 미술관은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국제 간담회 자리를 마련했다. 여비 포함 1500만원 넘는 예산은 미술관이 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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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전문가 불러 국제 회의…초유의 일
미술관은 휴관일인 26일 해당 전시장에서 전문가들과 회의를 열었다. 전시를 준비한 LACMA의 스티픈 리틀 아시아미술부장(중국미술사)으로 시작,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 수석연구원, 홍선표 이화여대 명예교수, 김선희 전 부산시립미술관장 등 초대된 한국의 전문가 4인이 각자의 작품 분석 결과를 공유하며 종일 심도 있는 논의를 이어 갔다.
이 자리에서 이중섭 카탈로그 레조네(전작도록)에 수록된 ‘장대놀이 하는 아이들‘ 이미지가 '원본'으로 제시됐다. LACMA 전시에 나온 '기어오르는 아이들'은 이 그림을 같은 크기의 타일에 그리는 과정에서 세로 그림이 서명이 빠진 가로 그림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홍선표 교수는 박수근의 인물화에 대해 “정지한 인물 여럿을 공간감 없이 찍듯이 나열한 점, 인물에 붙어 있다시피 서명을 한 것이 의심스럽다”고 지적했고, 이중섭의 ‘소와 아이’에 대해서도 “커다란 눈망울의 소 그림들과 달리 이 그림은 소의 눈이 가로로 길고, ‘중섭’ 서명의 ‘ㅅ’은 획이 잘려 있다”고 지적했다.
LACMA 리틀 부장이 “박수근 그림의 캔버스 뒷면에 1963년 이전 뉴욕ㆍLA의 미술재료상 스티커가 붙어 있다”고 하자 홍 교수는 “이 시기 캔버스라고 박수근 그림이 되는 건 아니다. 작가 고유의 양식과 기법에 비하면 재료의 시기는 부차적 요소"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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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ㆍ이중섭만 문제 아냐…A급 작품 하나 없는 ‘한국의 보물들’
이동국 경기도박물관장은 이인문(1745~1831)의 ‘이백관폭도(李白觀瀑圖)’로 나온 그림에 대해 “산수와 인물 표현이 이인문의 것과 다르다. 작가 미상의 19세기 그림으로 보인다”며 “특히 그림 맨 위에 ‘충익부인’이 찍혀 있는데 충익부(忠翊府)는 1699년 통폐합된 관청이다. 이인문은 이보다 훨씬 뒤에 태어났기에 이 도장 자체가 위작의 증거가 됐다”고 말했다.
또 한국의 도자 전문가 5명과 분석한 바 12세기 청자 정병(淨甁)은 “형태만 비슷할 뿐 유약색이나 빙열(도자기 표면의 실금)이 20세기 중반 이후의 모조품”이라며, 전시된 백자 대부분을 20세기 중반 이후의 것으로 판단했다. 이 관장은 “미술품에 A~D 등급이 있다면, ‘한국의 보물들’이라는 제목의 전시에는 적어도 AㆍB급 수준의 작품이 반 이상은 포함되어야 할 텐데, A급 작품은 한 점도 없고, 대부분이 CㆍD급”이라고도 지적했다.
김선희 전 부산시립미술관장이 전시 준비 과정에서 한국미술 전문가들을 통해 검토하지 않았는지 묻자 리틀 부장이 “한국의 공립미술관장 A 씨에게 보여줬고, ‘좋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A 관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리틀 부장이 지인을 통해 '미술관을 보고 싶다'고 해 지난해 말 처음 만났고, 이 자리에서 본인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근대 회화 이미지들을 보여줘서 '더 연구해 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LACMA 마이클 고반 관장은 "기증자에 대한 예우로 시작된 전시였다. 계획된 작품집 발행은 취소해야겠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미 서부 최대의 공립미술관인 LACMA는 지난 2021년 한국계 미국인 체스터 장과 그의 아들 캐머런 장으로부터 회화ㆍ도자ㆍ수석 등 100점을 기증받았고, 이 중 35점을 골라 지난 2월 ‘한국의 보물들: 체스터&캐머런 장 컬렉션’ 전을 열었다. 전시는 30일 종료됐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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