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K그룹, 신사업도 속도조절…인력 재배치 불가피
친환경 분야를 중심으로 공격적인 확장을 해온 SK그룹이 각종 신사업을 정리하며 긴축 기조로의 전환을 본격화한다. 그룹 최고경영진은 전기차(EV) 충전 관련 사업, 중간지주사 SK스퀘어의 적자 자회사 등을 핵심 구조조정 대상으로 보고 후속 절차에 착수했다. 위기 상황에 맞춰 조직 규모를 줄이고,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해 임원 슬림화에도 나선다.
30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SK는 여러 계열사가 중복으로 진출한 전기차 충전 관련 사업을 교통 정리하는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앞서 계열사들의 전기차 충전 사업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로 만들었던 ‘EV 경영혁신 TF’ 대신 기투자 회사 매각, 사업부 축소·통폐합 등을 논의하는 구조조정 TF를 신설해 가동하고 있다.
㈜SK, SK텔레콤, SK네트웍스, SK이노베이션, SK E&S 등 다수 계열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뛰어들었던 전기차 충전 관련 사업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구조조정하기 위해 예의주시하는 분야다. 투자 대비 성과가 미흡해 시간이 지나면서 수익성에 관한 회의론이 커졌고, 지난해 말 전기차 ‘캐즘’(대중화 전 수요 정체기)까지 덮치면서 그룹 재무 구조에 부담을 주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판단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SK는 계열사들이 인수했던 전기차 충전 관련 회사를 팔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SK가 사들인 곳은 충전기 제조사 시그넷EV(현 SK시그넷), 충전소 운영 업체 에스에스차저(현 SK일렉링크) 등이 있다. 이에 대해 SK시그넷 측은 “매각을 검토한 바 없다”고 말했다.
계열사 산하의 자회사 ‘다이어트’도 진행 중이다. 최근 대표가 사임 의사를 밝힌 중간지주사 SK스퀘어는 SK하이닉스, 11번가 등 23개 자회사를 두고 있는데 이 가운데 18개 회사가 적자다. 그 결과 SK스퀘어는 지난해 2조3397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이에 ‘버릴 건 버리고 가겠다’는 기조가 뚜렷해졌다. 그룹 유동성 확보를 위해 손절매할 명단에 다수의 회사가 올라 있다. 지난해 SK스퀘어가 사모펀드에 약속한 콜옵션 이행을 포기하면서 11번가는 강제매각 절차에 들어갔다. SK스퀘어는 11번가 외 다른 적자 자회사 정리도 검토 중이다.
계열사와 자회사뿐 아니라 조직 말단인 사업부 단위에서도 축소·통폐합이 이뤄지고 있다. SK에너지의 자체 애플리케이션 ‘머핀’ 사업 구조조정이 단적인 예다.
SK 내부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부산 엑스포 유치에 주력하던 최 회장은 지난해 11월 유치 실패 이후 그룹 내부 상황을 보고받았다. 최 회장은 예상보다 계열사 경영이 방만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슷한 시기 SK가 막대한 투자금을 넣은 반도체·배터리 산업이 불황을 맞아 그룹 현금 흐름에도 차질이 생겼다. 올해 들어서는 최 회장이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지면서 경영권 위협 우려까지 대두됐다. 고조된 위기감 속에 SK그룹은 강도 높은 군살 빼기로 유동성을 확보해 인공지능(AI), 반도체, 전기차용 배터리 등 핵심 사업에 몰아주겠다는 전략을 짰다.
임원 수는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SK 관계자는 “기업들은 위기의 순간이 오면 조직 규모부터 줄이는데 결국 임원 숫자가 조직 수를 결정한다”며 “지난해 연말 정기 인사, 올해 중반 수시 인사에 이어 오는 연말에도 상당수 임원이 방출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임원 수를 줄이고, 그 임원이 담당하던 조직을 다른 사업부와 통폐합하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특히 ‘SK온 살리기’의 핵심축인 SK이노베이션의 경우 규모가 작거나, 투자금을 회수할 만큼 이익을 내지 못하는 신사업 조직을 과감히 정리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SK에너지 산하 TTS(종합교통서비스) 사업부 담당 이재호 부사장을 내보내고, 해당 사업부를 마케팅본부와 통합했다. TTS는 주유·세차·전기차 충전부터 보험, 정비, 중고차 매매까지 자동차 생활 전반을 디지털화하겠다는 포부로 출범한 신사업 조직이다. 이를 위해 카카오모빌리티 출신의 40대를 TTS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고, 정유 업계에선 처음으로 자체 애플리케이션(머핀) 개발 조직도 갖췄다.
하지만 이 부사장이 회사를 떠나고 관련 신사업의 확장보다는 유지·보수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TTS는 동력을 잃은 형국이다. 핵심 인력인 앱 개발자 3명도 이미 회사를 떠났거나, 떠날 예정이어서 이탈자는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SK그룹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을 추진하는 등 계열사 줄이기에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임원 자리도 연쇄 감축이 불가피해졌다. 다른 대기업으로 따지면 상무보급에 해당하는 임원의 경우 팀장으로 급을 하향 조정하는 식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한 관계자는 “계열사 간 합병 후 보직이 애매해질 수 있고 그룹의 임원 축소 기조에 맞춰 알아서 이직을 준비 중인 직원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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