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술로…베트남선 지금 소주 열풍
35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와 월요일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곳곳에 포진해 있는 익숙한 ‘녹색병’이 눈에 띈다. 맥주 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테이블 위에 ‘소주’를 올려놓고 연신 건배를 나누는 현지인과 관광객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소주 있어요”라는 말로 호객 행위를 하는 매장 직원을 계속 마주치는가 하면 진로 소주 공병을 줄지어 세워놓고 인테리어로 활용하는 매장도 여럿 보인다.
인근 식당에서 만난 베트남 대학생 부 띠 땀 씨는 “친구 생일 축하를 위해 함께 모여 소주를 마시고 있다. 과일 소주를 코리안 바비큐와 함께 먹는 걸 제일 좋아한다”며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소주를 마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진로BBQ’라는 고깃집 4개를 운영하는 김광욱 대표는 “베트남 현지에서 소주 인기와 함께 진로 소주 인지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매출이 매년 15% 가까이 오른다. 1년에 하나꼴로 추가 출점 계획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주 한잔할래?”
한국을 넘어 이제 전 세계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 됐다. 과거 ‘코리아 보드카’로 설명해야 겨우 고개를 끄덕였던 소주가 이제는 당당히 ‘소주(SOJU)’라는 정식 카테고리로 전 세계 사랑을 받고 있다. 매년 수출이 급증, 2022년에는 사상 최초 1억달러 수출을 달성했다.
소주 역사는 하이트진로 역사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4년 진천양조상회로 출발한 하이트진로는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세계 무대도 하이트진로가 개척해왔다. 1968년 해외 첫 수출국인 베트남을 시작으로 현재는 총 80여개국에 소주를 판매 중이다.
진로 소주는 올해 100주년을 맞아 글로벌 시장 공략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소주 세계화를 넘어 대중화’라는 포부로, 하이트진로 수출 역사에서 상징적인 국가인 베트남에서 글로벌 비전을 선포했다. 베트남을 글로벌 소주 대중화 전초기지로 삼고 공격적으로 수출을 전개해나가겠다는 복안이다.
“세계화는 성공, 이젠 대중화”
친숙한 이미지 앞세워 글로벌 공략
하이트진로는 지난 6월 9일 베트남 하노이 모벤픽 호텔에서 창립 100주년 기념 ‘글로벌 비전 2030’을 선포했다. 슬로건은 ‘EASY TO DRINK, DRINK TO LINK(편하게 한잔, 한잔 후 가깝게)’다. 소주가 갖고 있는 대중성과 친근한 이미지를 전 세계에 이식함으로써, 단순 음주를 넘어 인간관계 소통 수단으로 전 세계 소비자에게 다가간다는 포부다.
이번 비전 선포는 지난 2016년 공개한 ‘글로벌 비전 2024’의 후속이다. 소주를 세계적인 주류 카테고리로 육성하겠다는 ‘소주의 세계화’ 비전을 밝힌 바 있다. 당시에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국내에서만 팔리는 저렴한 술이라는 인식이 워낙 강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현재 결과는 ‘성공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일반 소주에 더해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과일 소주를 앞세운 투트랙 전략으로 전 세계 소주 알리기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소주 인지도가 급증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소주 인지 수준은 평균 약 88.6%였다. 전 세계 10명 중 9명이 소주를 알고 있다는 얘기다. 2022년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상품 카테고리에 ‘소주(SOJU)’가 등록되며 국제 상품 명칭으로 인정받았다. 한국 명사 중 WIPO에 등재된 건 김치·한복·소주 등 9개뿐이다.
판매도 날개를 달았다. 2017년 대비 2022년 전 세계 소주 판매 규모는 약 2.5배 커졌다. 진로 소주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약 12.6% 성장을 기록 중이다. 2022년에 소주 단일 품목 1억달러 수출 업적을 달성했다. 지난해 소주 수출량은 말리부(1억3300만병)와 봄베이 사파이어, 시바스리갈(각 1억4400만병) 같은 유명 글로벌 브랜드를 넘어서는 1억7400만병을 기록했다.
올해 목표는 세계화를 넘어선 ‘대중화’다. 제품 강화와 유통 확대, 커뮤니케이션 확장 전략을 통해 세계 속 진로의 대중화를 이루고 해외 시장 소주 매출 5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황정호 하이트진로 해외사업본부 전무는 “술마다 어울리는 장소와 분위기가 있다. K콘텐츠와 진로 소주 마케팅 등 영향으로 소주는 이제 ‘한잔 마시고 서로 솔직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술’이라는 이미지가 생겼다”며 “전 세계 일상 속에 친숙하게 자리 잡는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축구장 11개 크기…글로벌 전초기지
하이트진로는 주점·식당 같은 유흥 채널보다 편의점·마트 등 오프 채널을 우선 공략 중이다. 지난해 기준 글로벌 소주 판매 비중은 오프 채널이 71%, 유흥 채널이 29%다. 최근에는 오프 채널 확장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코스트코 17개 매장에 과일 소주 4종을 입점시켰다. 지난해 상반기 미국 소주 수출액은 전년 동기 107.4% 늘어났다.
베트남 하노이 시내 마트에서도 하이트진로 소주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베트남 유통 기업 BRG그룹과 일본 기업 스미토모가 합작해 운영하는 슈퍼마켓 ‘후지마트’에는 하이트진로 소주만 따로 파는 별도 매대가 마련돼 있었다. 평균 판매량은 월 300병 정도. 전체 주류 매출 95%를 차지하는 맥주 카테고리에 비하면 적은 양이지만 맥주를 제외한 다른 주류 제품과 비교 시 최상위권이다.
윤현식 하이트진로 베트남 북부 관리마케팅 팀장은 “현지에서는 청포도·복숭아·딸기 등 과일 소주 인기가 많다. 6병입 패키지 등 선물용 제품 수요도 크다. 젊은 여성 중심으로 ‘힙’한 술이라는 이미지가 확산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흥 채널에서도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가는 중이다. 하노이 맥주 거리에 위치한 78개 주점 중 64곳에 진로 소주가 입점돼 있다. 진로 소주 마스코트인 ‘두꺼비’를 활용한 현지인 대상 프로모션도 인기다.
베트남에서 12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성원용 씨는 “베트남 내 진로 소주 인기에는 캐릭터도 한몫하는 것 같다”며 “유흥 채널에서는 소주를 한 병 시키면 키링 같은 두꺼비 굿즈를 주는 행사를 하고는 하는데, 현지 젊은이 사이에서는 개인 간 거래로 돈을 주고 사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는 수출 물량 확대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사상 첫 해외 생산기지를 베트남 타이빈성 그린아이파크 산업 단지 내에 세우기로 했다. 베트남 공장은 축구장의 11배 크기인 약 2만5000여평(8만2083㎡) 면적으로 설계됐다. 2025년 1분기 내 착공에 돌입, 2026년 내 완공과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초기 생산량 목표는 연간 약 100만상자다. 올해 진로 소주 해외 판매 목표 약 17%를 차지하는 양이다. 추후 라인을 더 늘려나가는 형태로 확장해나가면 동남아를 넘어 글로벌 시장 생산 유통 거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정성훈 진로소주 베트남 법인장은 “타이빈성 공장은 하이트진로 100주년 역사상 최초의 해외 생산공장이다. 첫 해외 공장인 만큼 앞으로 해외 표준 공장이 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나 친환경 측면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노이 =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5호 (2024.06.26~2024.07.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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