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 안 보는 '요즘 10대 애들'의 소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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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연 기자]
며칠 전, 고등학교 1학년인 큰 아이에게 친구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물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다 말한다.
"소통이요? 소통 안 하는데. 근데 소통이 뭐죠?"
당혹스러웠다. 소통을 안 한다는 것도 그랬지만, 소통이 뭐냐고 묻는 아이의 심각한 어휘력 부족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소통이란,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그리고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을 뜻한다. 설명해 주니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딱히 소통은 안 하는데…."
알고 보니 소통이란 단어를 몰랐던 게 아니라, 소통을 안 한다는 말에 돌아온 내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고 혹시 자기가 소통의 뜻을 잘못 알고 있나 싶어 확인한 것이었다. 그럼 친구들이랑 주로 뭐로 연락하냐고 물으니 바로 답했다.
"인스타그램이죠!"
▲ SNS로 대화하는 아이들(자료사진) |
ⓒ 픽사베이 |
요즘 청소년들은 카카오톡이 아닌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DM (Direct Message)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당장 우리 집 두 딸만 봐도 그렇다. 카톡으로 물으면 답이 없다가도 DM으로 물으면 재깍 답이 온다.
물론 아이들도 카카오톡을 쓰긴 한다. 다만 용도를 나눠 학급 공지용 단체 카톡 같이 공적인 일은 카카오톡으로, 친구들과의 대화 같이 조금 더 사적인 용도로는 DM을 쓴다. 아이들이 DM에 즉각 반응한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들이 인스타그램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는 방증이다.
아이들이 인스타그램으로 몰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청소년기는 트렌드에 민감하면서 타인에게 관심이 많고. 튀는 건 극혐하면서도 은근히 튀길 바라고, 다 컸다는 생각에 어른들로부터 벗어나 비밀스러운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특징이 있다. 이런 아이들의 구미에 딱 맞는 기능을 인스타그램이 발 빠르게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중심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시작한 인스타그램은 DM은 물론 스토리, 게시물, 라이브, 메모, 릴스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SNS의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아이들은 '스토리'와 '메모' 기능을 즐겨 사용한다.
줄여서 '인스스'라고 부르는 '스토리'는 일상의 순간을 공유하고 24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게시물이다. '메모'는 스토리의 텍스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대 문자 수가 60자로 제한된다. 텍스트뿐 아니라 동영상과 음악도 공유할 수 있고 이 역시 24시간 후면 자동 삭제된다.
삭제 후 스토리는 보관함에서 따로 확인 가능하지만, 메모는 완전히 사라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스토리는 전체 혹은 친한 친구 중 선택적으로 공개할 수 있고, 메모는 맞팔로우(상대방과 서로 팔로우를 한 상태)한 사람 혹은 친한 친구 중 선택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스토리보다 메모가 조금 더 제한적이고 비밀스럽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른 게시물에 비해 부담도 적고, 친한 사이끼리만 공유할 수 있다는 비밀스러움 때문에 게시물은 안 올리고 '스토리'와 '메모'만 올리는 아이들도 많다.
▲ 태어남과 동시에 스마트폰, SNS와 함께 성장 중인 요즘 아이들은 SNS 세상에서 놀고 소통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간다. |
ⓒ 픽사베이 |
이처럼 아이들은 인스타그램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근황을 공유한다. 그럼에도 큰 아이는 왜 친구들과 딱히 소통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 걸까? 아이를 통해 단톡방과 인스타그램 속 친구들을 보니 이해가 됐다.
단톡방에서 아이들은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었다. 주제가 산발적이고 산만한 것이 대화라 보기 어려웠다. 인스트그램 '스토리'나, '메모' 역시 자신에 대한 일방적인 상태 알림에 가까워 보였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뭘 원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등등을 알리는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친구들의 관심이나 의견을 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에 답을 달고 의견을 전달할 순 있지만 그 조차도 의견 제시일 뿐, 어른들이 흔히 생각하는 '소통'의 느낌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건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단톡방에서 각자 하고 싶은 얘기만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어차피 단톡방의 목적이 대화가 아닌 정보 공유이기 때문에 나름 정해 놓은 규칙을 어기지 않는 한 그러려니 한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 역시 저 친구는 저렇구나 정도로 인지하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다. 어떻게 보면 쿨하고 심플한데, 한편 어떻게 보면 '내 알 바 아니다' 이런 건가 싶어 매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유독 우리 집 아이들만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주변 엄마들과 얘기해 봤는데 상황은 비슷했다. 소통은 하는데 소통을 안 한다는 요즘 아이들을 두고 어른들은 정이 없다느니, 낭만이 없다느니, 사회성이 부족하다느니 걱정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스마트폰과 SNS 때문이라며 탓한다. 틀린 말은 아닌데 이 말,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생각해보니 내가 어릴 때도 어른들에게 비슷한 말을 들었다. 그땐 그 모든 것이 'TV 탓'이었는데, 어느새 내가 아이들에게 똑같은 말을 돌려주고 있었다. 그땐 그 말이 참 듣기 싫었는데. 어른들이 생각하고 정해 놓은 것만 정이고 낭만이냐, 우리도 우리 나름의 정과 낭만이 있다! 지금 우리 아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겠지.
지금껏 없던 신인류의 소통법
달라진 세상만큼 삶의 방식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특히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이 세상을 더 빠르게 바꿨고 지금도 계속 업데이트를 통해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과 SNS가 일상인 요즘 청소년도 변화에 적응하며 성장 중이다.
아이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오가며 '멀티 유니버스', 즉 다중 우주를 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쪽 생활을 관리해야 하고, 양쪽 에티켓도 익히고 지켜야 한다. 오프라인에서 벌어지는 왕따, 따돌림이나 괴롭힘이 온라인에서는 보다 교묘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벌어지기도 한다.
학원도 다녀야 한다. 공부뿐 아니라 예체능도 잘해야 하고 외모에 신경도 써야 한다. 인간 진화의 끝판왕이 아닐까 싶을 만큼 아이들은 점점 더 높은 기준을 향해 내몰린다. 결국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학교 내신관리가 곧 친구 간의 경쟁인 현실 속에서, 예전과 같은 정과 낭만을 기대한다는 건 아무래도 무리지 싶다.
그럼에도 요즘 청소년들에게도 나름의 정과 낭만, 의리와 정의는 분명 있다. 친구에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싫다는 친구를 억지로 끌어들이지 않는 존중과 배려, 친구의 비밀은 끝까지 지켜주는 의리, 선 넘는 건 참지 못하는 정의, 함께 릴스를 만들며 공유하는 낭만 등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 세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결국 이런 게 이 시대 아이들의 소통은 아닐까?
요즘 기말고사 기간인 큰 아이는 스마트폰에서 인스타그램 앱을 지웠다. 아이는 친구들의 소식을 알 길이 없어지자 궁금하고 답답한 마음에 잠깐 앱을 깔고 확인만 한 후 다시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러면서 빨리 기말고사가 끝나고 친구들과 놀 그날을 고대한다. 그런 딸에게 소통의 의미를 다시금 알려줬다.
"지금 네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친구들과 통하고 있다면 그게 바로 소통이야. 소통은 생각만큼 거창한 게 아니야."
스마트폰과 SNS가 야기하는 도파민 중독, 집중력 저하, 팝콘 브레인 같은 문제점에 대한 우려가 많다. 두 딸을 키우는 입장에서 나 역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로부터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면 차라리 잘 활용하자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친구를 넘어 세상과 편견 없이 소통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다면, 참 멋진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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