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분이 한국의 존 레논입니까?"... 일본 관광객은 몸을 흔들었다
[이현파 기자]
▲ 아시안 팝 페스티벌 2024' 무대에 오른 김창완 밴드 |
ⓒ 아시안 팝 페스티벌 |
"희망을 잃지 마세요. 기쁠 때는 몰라도, 슬플 때는 저를 부르세요."
김창완이 '무지개(산울림)'를 부른 뒤 위와 같은 멘트를 하자, 주변에 있던 모든 관객이 알 수 없던 감정에 휩싸였다. 결국 메시지를 완성하는 것은 메신저라 믿는다. 똑같은 위로의 말도, 수십 년 동안 우리 곁에 함께 해 온 이웃 아저씨 같은 록 전설의 입에서 나온다면 설득력이 다르다. 지난해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와 마찬가지로, 김창완밴드는 아시안 팝 페스티벌의 첫 여정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 주인공이었다.
지난 6월 23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 시티 일대에서 열린 '아시안 팝 페스티벌 2024(이하 아팝페)'의 둘째 날에 다녀왔다. 아팝페의 전신은 홍대 인디 신(scene)을 상징하는 축제 라이브 클럽 데이의 '아시안 팝 스테이지'로부터 출발했다. 아시안 팝 스테이지는 아시아의 다양한 음악가와 음악 팬이 교류할 수 있는 무대였다. 아팝페는 이 아이디어를 큰 규모의 뮤직 페스티벌로 확장한 결과물이다. 라이브 클럽 데이와 홍대 클럽 공연장을 이끌어온 이들이 구성한 APF 컴퍼니(공동대표 박정용, 김대우), 그리고 파라다이스 그룹의 자본력이 더해졌다.
물론 아시안 팝이라는 장르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페스티벌에는 록과 일렉트로니카, 포크, 알앤비 등 다양한 스타일의 아티스트들이 혼재되어 있다. 공통점이라곤 없는 아티스트 사이에 유일한 응집력을 부여하는 것은 '아시아'다. '아시안 팝 페스티벌'이라는 기획에 걸맞게, 라인업의 모든 아티스트들은 아시아인으로 구성되었다. 아팝페는 다양한 장르의 아시아 뮤지션을 한데 모은 다음 감히 '아시안 팝'이라 명명하는 과감함을 보여주었다.
▲ '아시안 팝 페스티벌 2024' 무대에 오른 수요일의 캄파넬라 |
ⓒ 아시안 팝 페스티벌 |
낯선 얼굴들이 선사한 신선함이 대단했다. 일본 싸이키델릭의 거장 신타로 사카모토는 다양한 악기를 소환하며,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세계로 파고 들었다. 싱어송라이터 카네코 아야노는 폭발하는 보컬과 기타 디스토션을 들려주었다. 오히려 포스트 록, 슈게이징 밴드의 공연을 보는 듯 했다. 음원과 라이브의 괴리가 오히려 쾌감을 만든 경우였다. 토요일에는 중화권 최고의 록밴드로 불리는 노 파티 포 차오 동(No Party For CAo Dong) 등이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틱톡을 중심으로 일본 Z세대에게 사랑받고 있는 일렉트로니카 그룹 '수요일의 캄파넬라'는 키치한 음악만큼 더 유쾌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행복한 에너지와 귀여움으로 무장한 2001년생 보컬 우타하의 공이 크다. 심지어 우타하가 에어볼에 몸을 넣은 채 관객들 위로 날아다니는 장관이 펼쳐지기도 했다.
익숙한 얼굴들은 반가울지언정 뻔하지 않았다. 대낮 공연의 문을 연 김사월은 대표곡 '누군가에게'와 신보 <디폴트>의 수록곡들을 부르며 관객들을 집중시켰다. 오랜만에 솔로 아티스트로서 무대에 오른 백예린의 목소리는 재지한 밴드 사운드, 그리고 밤 바람과 아름답게 묻었다. 공연장 뒤로 여러 번 지나다니는 비행기의 모습도 소품처럼 느껴졌다. 베테랑 밴드 크라잉넛도 관객의 신뢰에 부합했다. '밤이 깊었네', '좋지 아니한가', '명동콜링', '말 달리자' 등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많은 명곡이 이어졌다.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깃발 아래 모여 슬램과 스캥킹을 즐겼다.
▲ 아시안 팝 페스티벌 2024에서 함께 무대를 꾸민 이민휘, 재패니즈 브렉퍼스트, 이랑(왼쪽에서부터) |
ⓒ 아시안 팝 페스티벌 |
한국계 미국 뮤지션인 Japanese Breakfast(미셸 자우너) 역시 이 무대에 올랐다. 미셸 자우너는 Japanese Breakfast로 2022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신인상 후보에 올랐고,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책 <H마트에서 울다>를 뉴욕 타임즈 선정 베스트셀러로 만든 작가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 6개월 넘게 머물고 있는 자우너는 어느때보다 유창한 한국어로 팬들과 소통했다. 자신의 남편이자 밴드 멤버인 피터 알렉산더를 가리키며 '이 페스티벌의 유일한 백인'이라 소개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우너는 공연 도중 이민휘와 이랑을 초대해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를 불렀다. 자신이 아시아 뮤지션으로서 이 무대에 섰음을 이 선곡으로 완성했다. '아시안 팝 페스티벌'이기에 가능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5성급 호텔인 파라다이스 호텔을 끼고 열린 것은 아팝페의 차별화된 지점이다. 루빅 스테이지, 크로마 스테이지, 시티 스테이지 등 실내 공연장은 일본 섬머소닉의 마쿠하리 메세처럼 기존의 베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물이다. 호텔 로비, 플라자 내의 미술 전시관, 식당, 화장실 등의 공간이 관객에게 그대로 개방된 점도 인상적이었다. 페스티벌 마니아들은 "이렇게 쾌적한 페스티벌은 처음"이라며 입을 모았다. 아팝페는 공간이 경험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였다.
물론 수년간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울트라 코리아', '홀리데이 랜드' 등 여러 뮤직 페스티벌이 열려 왔지만, 이토록 인디적인 축제가 열린 적은 없다. 백예린과 넬, 김창완밴드, 크라잉넛 등 몇몇 팀을 제외하면 대중에게 생소한 뮤지션이 대부분이다. 다채로운 인디 음악의 세계가 자본력과 우수한 인프라를 만나면서 만들어진 시너지는 여타 페스티벌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온 중년 남성이 김창완밴드의 공연을 기다리다가 영어로 "실례합니다. 저 사람(김창완)은 한국의 존 레넌이나 폴 매카트니 같은 존재입니까?"라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부족한 영어로 애써 설명을 하긴 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5분을 훌쩍 넘기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전주가 흘러나오자, 일본인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시아의 뮤지션과 음악팬들이 교류하는 장을 만들겠다는, 아팝페의 꿈이 생각보다 빠르게 이뤄졌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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