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전용기 타시라" 각별했던 尹-김진표 충돌…과거엔 어땠나
전직 국회의장이 현직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일방 폭로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국가 의전서열 1·2인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가깝고도 먼 관계가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지난 27일 공개된 회고록 『대한민국은 무엇을 축적해왔는가』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한 달여 뒤인 2022년 12월 5일 자신과 독대한 자리에서 “(이태원 참사가) 특정 세력에 의해 유도되고 조작된 사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즉각 “멋대로 왜곡해서 세상에 알리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란 공식 입장을 냈고 이튿날인 28일엔 “책 장사 하냐”며 부글부글 끓었다.
이처럼 감정의 골이 깊어졌지만 두 사람은 윤 대통령 취임 초기만 해도 “말이 통하는 사이”로 통했다. 경제 관료 출신으로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를 지낸 김 전 의장은 더불어민주당 출신임에도 야당 강성 의원들과 결이 달랐고, 둘 다 저녁 식사를 즐기는 스타일이어서 만찬 회동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특히, 2022년 8월 국회의장단 초청 만찬 때는 윤 대통령이 “필요하면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가시라”며 김 전 의장의 해외 순방 편의를 배려하는 발언까지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실제 지난해 6월 김 전 의장이 미국 방문을 할 때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를 이용하는 방안이 구체화됐으나 방미가 순연되며 전용기 사용이 무산된 적도 있었다.
이랬던 두 사람이지만 지난 4·10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갈수록 충돌하는 살얼음 정국이 이어지며 관계가 불편해졌다는 게 중론이다. 검사 탄핵소추안 상정 등 민주당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의사일정이 잡히는 경우가 늘자 대통령실에선 “김 전 의장이 국회의장으로서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는 불만이 커진 것이다. 반대로 김 전 의장은 국회가 처리한 법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이 잦아지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김 전 의장은 2년의 임기 종료를 앞둔 지난달 21일 ‘22대 국회 초선 의원을 위한 오찬’ 행사장에서 “국회의장으로서 일을 하며 겪었던 일들 중 가장 자괴감이 들었던 것은 9번의 거부권 행사를 막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과 국회의장은 긴장 관계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 1993년 12월 당시 여당이던 민주자유당이 통합선거법 처리를 강행하려 하자 당시 이만섭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 사회를 거부했고, 이 때문에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이만섭 의장의 사이가 멀어졌었다. 2015년 6월에는 국회법 개정안 문제를 놓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정의화 국회의장이 공개 충돌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22대 국회 상반기를 이끌게 된 우원식 국회의장과 윤 대통령의 관계도 녹록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우 의장이 민주당 의장 후보 경선에서 추미애 의원을 꺾고 당선될 때부터 강성 지지층의 타깃이 됐던 만큼 현재 의장이 무소속이더라도 민주당 지지층의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많기 때문이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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