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서 결혼식도... 지역 황폐화 걱정이지만 활로 찾아야"

이선필 2024. 6. 2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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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옆 독립예술전용관] 광주독립영화관 한재섭 관장

[이선필 기자]

 
 한재섭 광주독립영화관장.
ⓒ 이선필
 

지역 영화인들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고, 중심이 되며 자생하는 연대 모임이 있다. 수차례 토론 끝에 2017년 4월 탄생한 광주 지역 16개 영화 관련 단체와 모임이 주축이 된 광주영화영상인 연대다. 인구대비 스크린 수가 가장 많다지만, 영화 학과나 기반 시설은 전무하다시피 한 광주에서 이 연대는 현재까지 교육, 상영, 제작 부문으로 서로가 밀고 당기며 자생력을 확보 중이다.

2018년 개관한 광주독립영화관(Gwangju Indipendent Film Theater)의 애칭은 'GIFT'다. 지난 27일 개막한 제13회 광주독립영화제 주요 프로그램이 상영되는 공간인 이곳은 광주 지역 주민들이 한국독립영화의 접근성을 높이고, 영화인들이 교류하고 상생하는 주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영화제 기간 중 한재섭 관장을 만났다. 103석 규모의 단관 극장이지만, 그 역할만큼은 대형 멀티플렉스가 하지 못하는 소중한 일들을 이뤄내고 있었다.

누가 지역 영화를 두려워하는가

지난해까지 진행됐던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사업이 모두 사라졌다. 위기감이 감지됐지만 광주 지역 영화영상인 연대는 해당 극장을 중심으로 각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광주독립영화제 주요 프로그램 중 하나인 '메이드 인 광주'는 광주 지역 영화인들이 주축이 된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광주독립영화관에서 매년 이 기획전을 열고 진행 중이다.

"메이드 인 광주 기획전이 우리 극장 설립의 1원칙과도 같다. 사단법인인 영상영화인 연대가 하는 주요 사업 중 하나가 이 극장이고, 또 하나가 2019년에 창간한 <씬1980>이라는 비평지다. 이 비평지를 통해 지역 영화와 지역 영화인들은 어떤 상황인지 11개 꼭지로 연재한 적이 있다. '누가 지역 영화를 두려워하는가'라는 코너였다.

매년 여름 광주 영화학교도 운영해오고 있다. 창작 열정과 의지가 있는데 지식이 없는 분들, 그리고 차세대 미래 영화인 발굴을 위해 하고 있는 사업이다. 올해는 예산이 줄어드는 바람에 단편영화 제작 워크숍만 진행했다. 지난해엔 연기, 영화 수입과 배급 등 다양하게 진행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산하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원하던)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 지원 사업 등 관련 예산 12억 원이 전액 사라지면서 광주 영화인들도 직격탄을 맞은 셈.

그나마 지역영화제 중 유일하게 영화제 지원사업에 선정되며 한숨을 돌렸다지만, 민선 8기로 김광진 광주시 문화경제부시장이 취임하면서 그간 논의되던 영화인들 연대 사업 출범이 중단됐다고 한다. 한재섭 관장은 "해당 예산으로 광주극장, 여성영화제, 독립영화제 사람들이 연대해 온 건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로 사업을 연결할 건지 발표하려는 단계에서 중단됐다"며 "문화라는 게 한번 중단되면 그걸 다시 복구하는 게 어려운데 안타깝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2016년에 광주국제영화제가 파행되면서 이후 연대 정책 사업을 개발하는 로드맵을 그려서 제안했다. 그래서 지금의 법인이 나온 것이다. 첫 번째가 극장이었고, 두 번째가 조례 제정이었다. 2019년 7월 1일 광주시 영상영화 활성화를 위한 진흥 조례가 제정됐다. 민간의 역량만으로 할 수 없으니 민과 관이 제대로 협력하기 위한 명문화된 법조항이 필요했거든. 그때까지 광주시가 제작 지원하는 돈이 없었다. 조례 제정 이후 꾸준하게 지원비가 늘고 있다. 세 번째가 민과 관이 협력할 수 있는 상설 기구였는데 그게 문화부시장이 오면서 답보상태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한 관장은 이런 연대 모델이 광주에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아시아영화제로 도약을 준비 중인 광주여성영화제, 그리고 오랜 역사의 광주극장, 독립영화협회 등이 이번 독립영화제를 함께 준비했다. 이런 모습도 타 지역 영화제와 구분되는 차별점 중 하나다. 

"서로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하는 관계다. 교류의 장이 되기도 하고. 실제로 법인의 이사들이 독립영화협회, 여성영화제 이사 등으로 고르게 포진해있다. 제가 알기론 영진위가 진행하던 지역 영화 활성화 사업의 모델이 광주였다고 한다. 지역 상황을 지역인들이 잘 알 테니 3개 이상 단체들이 연대해서 사업을 진행하라는 식이었거든."

극장에서 결혼식도... 다양한 모델 연구 중
 
 광주독립영화관 내부 전경.
ⓒ 광주독립영화관
 

극장 운영 면에서도 광주독립영화관은 나름의 변화를 모색 중이었다. 2018년 4월 개관 이후 한국독립영화만 상영했는데 올해 부턴 해외 예술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다. 관장 포함 4명의 상주 직원을 중심으로 기획전과 특별전을 수시로 열고 있는데, 때론 이 극장을 거쳐 간 사람들의 추억을 위한 이벤트 공간이 되기도 한다.

"올해 개관 6주년 기획전을 이경민 코디네이터가 담당했다. 광주여성영화제 경험도 있고 기획력과 섬세함이 있다. 임순례 감독님 데뷔 30주년 기념으로 (감독님을) 섭외했는데 흔쾌히 오셨다. 단편 <우중산책> 기준으로 올해가 30년이셨거든. 여성 감독으로서 파워풀하고 대형 상업영화도 하는 분이잖나. 와주셔서 감사했다.

이번 개관 기획전과 작년 기획전 때 배우 박정민씨 팬이 꽃다발을 보내주셨는데 알고 보니 그의 데뷔작을 올해 틀어서 그랬다더라. 작년엔 <파수꾼>을 상영했고. 이런 게 넷플릭스와 달리 극장이 할 수 있는 역할이지 않나 싶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곳. 얼마 전엔 결혼식도 했다. 극장 개관할 때 아르바이트했던 친구가 연락 와서 하고 (여기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길래 빌려줬다. 광주 지역 영화인들이 하나같이 도와주셨다. 찾아보니 예전 극장 중 실제로 예식장으로 활용된 경우가 있더라. 이걸 사업화해볼까도 생각 중이다(웃음)."

올해 광주독립영화관은 서포터즈 제도를 신설했다. 한재섭 관장은 "분명 지역이라는 공간이 황폐화되어가는 건 맞는데, 거기에 절망할 게 아닌 그 안에서 재밌게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며 "인적 자원과 문화 자원의 결합을 고민 중"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물론 그럼에도 극장 본연의 역할을 무시할 순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침체일로인 극장 산업을 몸소 겪으며 각 주체들이 여러 시도를 하며 해법을 모색 중이다.

광주독립영화관의 비전을 물었다. 한 관장은 "그래도 다행인 건 광주에서 극장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있고, 지난해 대비 관객수도 20% 정도 늘었다"라며 "대관이나 단체 관람 문의도 1달에 1건 이상은 들어오고 있다"며 말을 이었다.

"팬데믹 때 다들 고생했고, 영화 관람 문화가 개인화되어가고 있지만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곳으로써 여전히 극장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방에서 혼자 보는 체험이 아니라 서로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일종의 광장과 비슷한 역할을 극장이 할 수 있다. 특히 독립영화로 사회적 약자, 소수자와 연대하는 최후의 공론장 역할을 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개인들을 광장으로 이끌어 내는 역할 말이다. 영화 상영이 여전히 첫 번째지만, 꾸준히 다른 예술 장르와 결합하면서 도전해보겠다."

'한국영화의 오래된 미래는 언제나 독립영화에 있었습니다'.

올해 광주독립영화관 개관 6주년 기획전을 하며 이경민 코디네이터가 직접 쓴 글 일부다. 오래 꿈꿀 수 있는 미래를 향해 지역 영화인들의 연대는 여전히 유효한 실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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