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 한국 팝업에 3000명 몰렸다, 뜨거운 도쿄의 'K오픈런' [K, 도쿄 상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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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만 해도 일본 시장에서 한국 기업이나 브랜드는 ‘K’를 떼야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K’를 붙여야 관심을 받는 ‘K-프리미엄’이 생겨났다. 과장이 아니다. 2024년 현재, 도쿄의 트렌드 발신지로 꼽히는 시부야에서는 연일 한국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가 열리고, 명품 거리로 불리는 아오야마에 문 연 한국 브랜드의 매장 앞에는 매번 긴 줄이 늘어선다. 이세탄·마루이 등 일본 주요 유통 업체에서는 도쿄에 상륙하지 않은 한국의 ‘핫’ 브랜드를 찾는데 여념이 없다. 분명 우리보다 패션에서, 소비재에서 ‘한 수 위’였던 일본의 변화다. 자국 브랜드 사랑이 유난히 뜨거워 ‘내수 철옹성’으로까지 불렸던 일본이 한국 브랜드에 무장 해제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시부야 팝업에 하루 3000명 몰렸다, 도쿄의 ‘오픈런’ 풍경
② 한국에는 있는데, 일본에는 없는 것
③ 50억-〉1800억, 이 브랜드가 새로 쓰는 K-패션 성공 방정식
」
지난달 28일 찾은 일본 도쿄 파르코 시부야점 3층. 에스컬레이터를 오르자마자 유난히 북적이는 매장이 나타났다. 57㎡(17.4평) 규모의 국내 패션 브랜드 ‘마뗑킴’의 팝업 스토어다. 현대백화점과 파르코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이 팝업 스토어에서는 약 두 달간 12개의 한국 브랜드가 소개된다. 지난달 10일 ‘노이스’를 시작으로, ‘마리떼프랑소와저버’ ‘마뗑킴’ 등을 순차적으로 선보였다.
반응은 예상보다 뜨거웠다. 마뗑킴이 문을 연 지난달 24일에는 3000명이 넘는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려 매장 앞에서부터 1층 백화점 입구를 지나 지하층의 직원 통로까지 대기가 이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마뗑킴 관계자는 “파르코 측도 이런 인기는 처음이라며 놀라워했다”라면서 “일본에서 열린 한국 패션 팝업스토어 중 최대 인원”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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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Z세대, “한국 패션 귀여워”
팝업스토어를 찾는 고객들은 대부분 20대 초중반의 현지 여성들이다. 이날 만난 이들 중엔 마뗑킴의 티셔츠를 입거나 품절된 가방을 가지고 온 브랜드의 ‘찐팬(진짜 팬)’도 종종 보였다. 아이리(20) 씨는 “패션 학교를 졸업한 친구의 ‘틱톡’에서 마뗑킴을 처음 알게 됐다”며 “최근 한국 브랜드가 무척 귀여워 보인다”고 말했다.
높은 관심만큼 실제 매출도 높다. 마뗑킴의 경우 금·토·일 주말 3일 매출만 2억4000만원에 달했다. 팝업 스토어가 있는 파르코 3층에서 최고 매출을 찍는 매장의 월매출이 3억원 수준이다. 히라마츠 유고 파르코 시부야 점장은 “매출이나 고객 반응 모두 예상치의 1.5배 정도 높다”며 “보통 매장이 한 달 동안 만드는 매출을 2~3일 안에 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오는 7월 28일까지 약 두 달간 팝업에서만 약 40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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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륙’ 한국 브랜드 찾아라, K-팝업 열풍
한국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는 이미 일본 리테일 업계의 히트 상품이다.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이세탄 신주쿠점 2층은 일본 유행 패션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이곳에서도 지난해부터 ‘더 바넷’ ‘포츠포츠’ ‘낫띵리튼’ 등 한국 패션 브랜드의 팝업이 연이어 열리고 있다. 이세탄 프로젝트팀에서 한국 브랜드 행사를 가장 많이 기획하고 있는 미야지 사호씨는 “이세탄 고객들 사이 ‘한국 브랜드’라는 하나의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제안한 한국 브랜드 팝업 대부분 목표 매출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에 방문해 새로운 브랜드를 발굴한다. 오프라인 매장이 없는 경우 브랜드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제품을 직접 보고 싶다는 연락을 취하는 등 적극적으로 브랜드 탐색에 나선다.
팝업 스토어는 본격적인 일본 시장 진출의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지난 1월과 3월 두 차례 이세탄 신주쿠점에서 팝업 행사를 진행했던 패션 브랜드 ‘쿠메’의 김보영 대표는 올가을 일본을 겨냥한 온라인 몰을 오픈하기로 결정했다. 김 대표는 “1월은 비수기로 통하는데도 목표 매출을 이뤄 3월에 다시 팝업을 열었다”며 “일본 시장에 조금씩 문을 두드리고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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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그십 매장으로 도심 접수
산발적인 팝업 매장을 넘어 아예 상설 매장을 낸 브랜드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 1일 도쿄 다이칸야마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낸 패션 브랜드 ‘마르디 메크르디’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패션 플랫폼 무신사 일본 법인을 통해 몇 차례 팝업을 진행한 후 일본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직진출했다. 박화목 마르디 메크르디 대표는 “팝업으로만 하루·이틀 만에 1억5000만~2억원의 매출이 나오고 재고가 없어 못 파는 경우가 생길 정도였다”고 말했다. 현재 플래그십 매장도 주말 기준 하루 매출 1억 원대. 지난 3월 일본 패션 플랫폼 조조타운에 입점한 온라인 매장 매출까지 더해 "올해 일본에서만 총 150억원의 매출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흥행 면에서도 해외 명품 브랜드에 뒤처지지 않는다.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는 지난 3월 도쿄 아오야마에 플래그십을 내며 이 지역에 화제가 되고 있다. 입장하려면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가능할 정도로 매장 앞에 긴 줄이 늘어선다. 이 지역은 프라다·티파니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 매장이 즐비한, 도쿄 내에서도 손꼽히는 노른자 상권으로 매장 월세만 한 달에 3억~4억 원대다. 웬만한 브랜드가 매장을 내기 쉽지 않은 곳에 과감히 출사표를 던지며 선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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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찾아 입점 상담회 열기도
일본 생활 잡화 유통 업체인 ‘로프트’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 두 차례 한국 브랜드 기획전인 ‘펀펀 서울’과 ‘K코스메 페스티벌’을 진행했다. 한국 뷰티·문구류·생활용품·패션잡화·캐릭터 브랜드를 한 번에 모아 소개하는 기획전으로, 오는 10월에도 같은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지난달 15일에는 로프트의 한국 페스티벌 담당자들이 한국을 찾아 입점 상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곳에서 인기 있는 화장품 브랜드로는 ‘티르티르’ ‘라카’ ‘라네즈’가, 잡화에서는 ‘조구만 스튜디오’, 문구에서는 ‘차니베어’ 등이 꼽힌다.
이번 로프트 입점 상담회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주최했다. 김보혜 코트라 도쿄 무역관은 “최근 한국 브랜드를 소싱하고 싶다는 현지 업체의 연락을 자주 받는다”고 말했다. 한국 업체가 일본에 나가고 싶어 문의하는 경우가 많았던 과거와 정반대다. 특히 젊은 층에 유명하면서 일본에 아직 선을 보이지 않은 이른바 ‘미상륙 한국 제품’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예를 들어 올리브영·더현대 서울 등에 입점하고 서울 성수동에 팝업을 내는 등 실제 한국에서 잘 팔리는 브랜드가 일본에서도 ‘셀링 포인트’를 갖는 식이다.
일본 내 한국 제품의 선전은 실제 무역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3년 기준 일본 내 수입 화장품 중 우리나라 화장품이 21.6%를 차지하며 프랑스(19.8%)를 제치고 연속 1위를 유지했다고 지난달 밝혔다. 지난 2022년부터는 한국 화장품이 일본 내 수입 화장품 점유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지 통역=한지윤
도쿄=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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