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웹사이트도 이용 못했다…'윈암' AI 노트북, 쉽지않은 첫발

이희권 2024. 6. 29. 06: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르네 하스 Arm CEO가 3일(현지시간) 컴퓨텍스 2024가 열리는 대만 타이베이 그랜드 힐라이 호텔에서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질문을 듣고 있다. 타이베이(대만)=이희권 기자


르네 하스 Arm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일(현지시각) 아시아 최대 IT박람회 대만 컴퓨텍스 2024에 등장해 “내년 말까지 전 세계에 1000억 개 이상의 ARM 기반 인공지능(AI) 기기가 생길 것”이라며 “5년 안에 윈도 PC 시장 점유율 50%를 달성하겠다”고 자신했다. 지난해 전 세계 노트북 시장에서 Arm 기반 프로세서의 점유율은 15%. 그나마도 독자 운영체제(OS) 생태계를 구축한 애플 맥북 판매량이 사실상 전부였다. Arm의 야망은 이뤄질까.

40년 넘게 컴퓨터 두뇌에 해당하는 중앙처리장치(CPU) 패권을 장악해 온 미국 인텔과 심장 역할을 하는 OS를 독점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텔’ 동맹이 AI 시대를 맞아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생성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PC에 다양한 AI 기능을 접목한 AI PC가 올해부터 잇따라 시장에 출시된 가운데 칩 설계방식을 둘러싼 주도권 싸움도 덩달아 치열해지고 있다.

김경진 기자

x86은 인텔이 시작한 CPU 설계방식이다. 현재 인텔 외에도 AMD가 x86 기반의 칩을 만들고 있다. 두 회사는 전체 PC용 프로세서 시장에서 85%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며 주도권을 쥐고 있다. 모든 PC 생태계가 x86 체제에 맞춰져 있지만,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x86이 탄생할 당시엔 전력 공급 없이 기기를 사용하는 모바일 시대를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 반면 Arm의 설계방식을 적용해 만든 칩은 전력 소비가 적어 스마트폰·태블릿 등 모바일 기기에 적용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 이에 스마트폰을 넘어 노트북에도 Arm 기반 칩을 적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졌고, 애플이 가장 먼저 맥북을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x86 vs Arm...노트북서 만나다


김경진 기자
결국 모바일 반도체 설계(팹리스) 강자 퀄컴이 윈도 PC 시장으로 넘어오며 가장 먼저 포문을 열었다. 퀄컴이 최초로 AI PC를 겨냥해 개발한 프로세서 ‘스냅드래곤 X 시리즈’를 탑재한 제품이 이달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에 출시됐다.

스냅드래곤 X 시리즈를 적용한 삼성전자의 ‘갤럭시 북4 엣지’가 지난 18일 출시된 데 이어 25일에는 HP의 ‘옴니북 X’ 등이 시장에 데뷔했다. 모두 인텔의 x86이 아닌 Arm의 설계방식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이어 레노버·델·에이수스 등 주요 제조사들도 모두 퀄컴 칩을 장착한 신제품을 선보인다. 15년 넘게 이어졌던 PC의 x86·스마트폰의 Arm이라는 공식이 노트북 시장을 시작으로 완전히 깨지기 시작한 셈이다.


아직 어색하네...출발부터 삐걱


지난 5월 30일 서울 용산구 케이브하우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행사에서 참석자가 '갤럭시 북4 엣지'를 살펴보고 있다. 갤럭시 북4 엣지는 퀄컴의 '스냅드래곤 X 엘리트' 칩셋을 탑재했다. 뉴스1
야심찬 출발과는 달리 아직 Arm과 MS의 궁합은 아직 어딘가 어색하다는 평가다. 여전히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기존 x86 체제에 맞춰져 있어 노트북 신제품 출시 이후에도 오류가 속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급기야 갤럭시 북4 엣지에서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와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등 상당수 프로그램이 작동되지 않는다며 안내문을 공지해야 했다. 물론 이는 삼성의 문제가 아니라 퀄컴의 칩을 탑재한 HP·레노버·에이수스 등 모든 노트북 제품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진 문제다. 일부 제품에서는 은행 웹사이트조차 호환성 문제로 아예 이용이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MS와 퀄컴은 이 같은 호환 문제를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기초적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일단 출시부터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IT 업계 관계자는 “전력 효율이 뛰어난 것이 Arm 칩의 장점인데 아직은 이를 살리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긴 배터리 사용시간에도 정작 호환성 문제로 쓸 수 없는 프로그램이 적거나, 고성능 작업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면 배터리가 결국 x86 프로세서와 비슷한 수준으로 소모된다는 보고가 있어 갈 길이 먼 상태”라 말했다.


Arm “이제 시작”


르네 하스 Arm CEO가 3일(현지시간) 컴퓨텍스 2024가 열리는 대만 타이베이 그랜드 힐라이 호텔에서 기조연설자로 무대에 올라 발표하고 있다. 타이베이(대만)=이희권 기자
x86에 대항해 ‘원팀’이 되어야 할 Arm과 퀄컴의 불협화음도 변수다. Arm과 퀄컴은 지난해부터 라이선스 조항을 두고 2년째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Arm은 퀄컴이 자체 설계한 칩을 만드는 과정에서 라이선스 계약을 위반했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장기적으로 Arm 진영에 막강한 도전자들이 합류를 예고한 만큼 예전과 같은 끈끈한 ‘윈텔’ 동맹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MS 역시 최근 더 이상 인텔만 밀어주지 않고 ‘투 트랙’ 전략을 펴는 쪽으로 선회했다. Arm과 x86 진영 누가 이기더라도 MS는 자사 OS 영향력을 키울 수 있어 밑질 것이 없기 때문.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4일 대만 타이베이 그랜드 하이라이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타이베이(대만)=이희권 기자

최근 MS가 퀄컴에 부여한 Arm기반 윈도우 호환 칩 독점 계약이 올해 만료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만 미디어텍이 노트북 칩 시장 진출을 예고하고 나섰다. 미디어텍은 지난해 퀄컴을 제치고 판매량 기준 전 세계 스마트폰 칩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숨은 강자로 꼽힌다.

여기에 ‘AI 칩 최강자’ 엔비디아는 물론 인텔과 함께 x86 진영의 한 축을 지탱했던 AMD마저 Arm 기반 PC 칩 시장에 뛰어든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컴퓨텍스 2024에서 이에 대한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웃었다. 일단 시장은 스마트폰을 넘어 PC와 서버까지 지배하려는 Arm의 야심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Arm 홀딩스의 주가는 지난 1개월 동안 33.6% 뛰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