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 특검법' 어차피 해봤자?…'특검 전문가' 한동훈 노림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3일 당권에 도전하며 띄운 ‘채 상병 특검법’ 문제가 국민의힘 전당대회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그는 “대표가 되면 진실 규명을 할 수 있는 특검법을 발의하겠다”며 대법원장 등 제3자가 추천하는 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을 제안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의 종결 여부는 특검법 종결 조건으로 달지 않겠다”고도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특검법에 있는 ‘야당 추천’ 조항을 ‘대법원장 등 제3자 추천’으로 바꿔 공정성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었다. 특검법 이슈에서 수세적 방어만 할 게 아니라 여당발(發) 법안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복안이기도 했다.
경쟁 후보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야당이 작동시켜 놓은 대통령 탄핵 초시계에 말려든 것”(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정치를 모르는 순진한 생각”(나경원 의원)이라는 성토가 쏟아졌다. “진실을 규명하기에 적합한 특검법”이란 한 전 위원장의 설명에도 “진실 규명이라는 진정성이 닿으려면 더 일찍 나서야 하지 않았냐”(여권 관계자)는 비판까지 이어졌다. 윤상현 의원도 지난 25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내부 교란 행위고, 대통령의 입장을 정식으로 처박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소속 광역단체장의 쓴소리도 이어졌다. 이철우 경북지사는 “특검법을 덜렁 받는다고 하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다”고 말했고, 홍준표 대구시장은 “정치를 한참 잘못 배웠다”고 했다. 두 사람은 대구·경북을 방문한 한 전 위원장의 면담 요청마저 거절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인 한 전 위원장은 특검에 관해서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 그룹에 속한다. 그는 2016년 12월 부패범죄특별수사단 부장검사로 있을 당시 박영수 특별검사가 이끌던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팀’에 파견됐고, 수사 4팀에 배정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를 집중 수사했다. 그런 경력 탓에 한 전 위원장이 던진 특검법의 함의(含意)를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한 전 위원장이 대법원장 추천 특검을 앞세운 건, 그간 이러한 특검이 결국 알맹이 없는 특검으로 끝났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과거 사례를 보면 대법원장이 추천한 특검이 수사를 지휘해 기소·처벌로 이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역대 13차례 특검 중 대법원장 추천 특검은 ▶2005년 러시아 사할린 유전 특검(정대훈) ▶2007년 BBK 특검(정호영) ▶2010년 스폰서 검사 특검(민경식) ▶2011년 디도스 특검(박태석) 등 4차례였다. 이 중 디도스 특검을 제외한 3차례 특검은 모두 판사 출신 특검이 이끌었다.
공교롭게도 이 3차례 특검은 기존의 수사 결과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해 ‘무능한 특검’이란 오명을 얻었다. 2005년 사할린 유전 특검은 3개월간의 수사에도 관련자 중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했다. BBK 특검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을 무혐의 처분했는데, 2017년 재수사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됐다. 2011년 디도스 특검 역시 종전 검찰과 경찰의 수사 결과에서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법조계 관계자는 “판사 출신 특검은 덕망은 높지만, 수사력이 떨어지는 탓에 성과 측면에선 아쉬움이 많았다”며 “이런 선례를 잘 아는 한 전 위원장이 국면 전환 카드로 자신 있게 내밀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권 일각에선 한 전 위원장의 승부수가 민주당이 주도하는 특검 이슈에 대한 여론의 집중도를 더 높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한 전 위원장이 좋은 의도로 특검법 대안을 던졌을 테지만 결과적으로 특검 문제가 여야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게 한 측면은 있다”고 말했다.
김민정·윤지원 기자 kim.minjeong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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