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출산할 결심
정부가 지난 19일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며 내놓은 저출생 반전 대책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병동에서 지켜봤다. 생후 160일 딸이 선천성 심장병으로 수술을 사흘 앞둔 날이었다.
육아휴직 급여 확대와 자녀 세액공제 추가,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 기준 완화 같은 대책을 보며 거꾸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를 건강하게 살릴 수 있다면 나는 과연 얼마를 낼 수 있을 것인가. 5000만원이 든다 하면 기꺼이 낼 것인가? 1억원이라면? 5억원, 10억원이라면? 금액을 끝없이 올려보다 상상하길 멈췄다. 설령 100억원, 1000억원이 든다 하더라도 아이를 포기하는 선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가 들더라도, 차라리 내 생명을 대신 내주어서라도 아이를 살리는 길을 택할 것이라서다.
신문사에 입사해 정신없이 일하다 10년 차에 첫 아이를 낳았다. 일터에서 만난 아내와 30대 중반에 결혼했고 아이를 위해 시험관 시술까지 했다. 뜻밖에 쌍둥이를 얻어 아내와 하루 2~3시간씩 번갈아 쪽잠을 자며 갓난아기들을 키우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산더미 같은 집안일과 경제적 문제, 일과 양육의 어려움을 매일 직면하면서도 아이를 낳기 전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귀여운 강아지 사진을 날마다 SNS에서 찾아보던 아내는 출산 이후 더이상 강아지 사진을 보지 않는다. “아기가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고 한다. 힘들어서 울다가도 아이 보며 웃는 나날들이 우리 부부의 하루를 풍성하게 한다.
출산과 육아를 선택한 것은 전 세계에서 아이가 가장 적게 태어나는 우리나라 현실과는 무관했다. 경제적으로 풍족해서도 아니었고, 부부 중 한 명이 일과 육아의 양립이 용이한 직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었다. 힘들더라도 가족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는 삶을 선택하고 다행히 아이가 곁에 찾아와준 것뿐이었다.
한국의 출생률이 세계 최저 수준인 데는 여러 요인이 뒤섞여 있다. 낮은 결혼율과 만혼 분위기 확대,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갖지 않기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 등이 단계적으로, 복합적으로 중첩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저출생 대책으로 내놓은 것들이 이런 추세를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육아휴직 급여를 월 150만원에서 최대 250만원으로 올리면 딩크족(맞벌이 무자녀 가정)이 아이를 낳겠다고 마음을 바꿀까.
세액공제 10만원을 추가하면, 신생아 우선공급 물량이 7만호에서 12만호로 늘어난다면 2030세대가 빠른 결혼을 결심하고 출산·육아까지 이어지게 될까. 더 근본적인 의문도 있다. 돈을 더 줘서 아이를 낳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얼마까지 지불할 수 있을까. 얼마나 돈을 준다면 사람들은 기꺼이 아이를 낳을까.
현재 한국의 저출생 대책은 단순히 돈을 더 주면 아이를 낳을 것이란 해법에 기대고 있다. 금전적 지원은 분명히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삶에 도움은 된다. 그러나 이것이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삶을 결심하게 하는 동기를 만들 수는 없다.
미국 시카고대 역사학과 교수인 페기 오도널 헤핑턴은 저서 ‘엄마 아닌 여자들’에서 “먹을 것과 돈, 안정이 없으면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꼬집었다. 소설가 최은영은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는 삶의 형태를 삽시간에 바꿔놓는 선택이다. 그렇기에 엄마가 되고, 되지 않고의 문제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라는 깊은 질문과 닿아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정말 제대로 돈을 쓰는 것도 아니다. 저출생 상황을 ‘국가비상사태’ ‘소멸 위기’ 등과 같은 수식어로 표현하면서도 정작 내놓는 정책들은 양육수당을 조금 늘려주거나 세제 혜택 확대, 늘봄교실 연장 등과 같은 수준에 그치고 있다. 권리인지 배려인지 경계도 모호한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을 만들어놓고는 임산부가 매일 다른 승객들과 눈치싸움을 벌이게 하는 것이 한국 저출생 대책의 현주소다.
작가이자 변호사인 정지우는 저서 ‘그럼에도 육아’에서 “육아는 정신없는 나날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나날들 속에 핀 꽃과 같다”고 했다. 나는 이 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있다. 다른 이들도 함께 누리길 소망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우리 사회의 아이와 여성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과연 ‘낳을 결심’을 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되고 있을까.
양민철 경제부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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