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수영과 아내 서사 폭발력은 놀라웠다

맹경환 2024. 6. 2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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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시인 김수영과 아방가르드 여인
홍기원 지음
어나더북스, 424쪽, 2만2000원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가 경기도 용인 자택 거실에서 책을 보고 있다. 늑골을 세 개나 다쳐 불편한 몸이지만 독서를 멈추지 않는다. 최근에는 김수영의 산문을 자주 읽는다. 어나더북스 제공


자유를 갈망했던 시인 김수영(1921∼1968)과 그의 아내 김현경(97). 두 사람과 각별한 인연을 간직하고 있는 시인 고은은 김수영이 죽기 전 해에 우연히 김현경을 만나 독일 문학계의 거장 슈테판 츠바이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의기투합했던 때를 회상했다. 그리고 책의 발문에 이렇게 썼다. “김현경이 김수영의 아내 이상의 동료임을 깨달았다. 아니 김수영이 또 하나의 김현경이고 김현경이 또 하나의 김수영이었다. 둘은 서로 음과 양을 바꾸는 생명들의 자유였고 둘의 합치는 놀라운 폭발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은의 말을 빌리면 “김현경의 렌즈를 통해 김수영을 반추하게 하는” 책의 저자는 김수영기념사업회 이사장이다. 그는 2021년 김수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펴낸 ‘길 위의 김수영’을 증정하기 위해 김현경을 만났다. 만남 이후 김수영의 인생을 뒤흔들고 운명이 된 한 여인의 삶을 탐구하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 그렇게 오랜 기간의 인터뷰 후 탄생한 것이 김현경의 100년 가까운 역사를 압축한 일대기다.


현경은 말 그대로 부잣집 딸이었다. 대지주 집안 출신의 어머니와 경성제일고보를 나온 엘리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김흥성은 1929년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조선박람회를 기획하고 금광채굴사업과 무역 등에 나서며 큰돈을 벌었다. 화신백화점의 박흥식, 유한양행의 유일한, 조선일보의 방응모 등과도 친구 사이였다. 외삼촌 박한식은 김기림 이기영 등이 주축이 된 사회주의 계열 문학단체 카프의 일원이었다.

현경은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 진명여고 때는 수학시간에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읽다가 걸려 혼나기도 했다. 진명여고를 졸업하던 1944년은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다. 일제는 어린 여학생들을 정신대나 군수공장으로 징용하기도 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결혼하거나 취직을 해야 했다. 현경은 부랴부랴 임시 교사 선발시험을 보고 경기도의 한 보통학교에서 임시교사로 일한다. 당시는 조선말 수업이 금지된 때였다. 하지만 현경은 일본말과 조선말을 섞어 수업을 하고 신사참배도 하지 않았다. 일본인 교장의 고발로 감옥에 갈 위기에 처했지만 아버지의 도움으로 피할 수 있었다.

해방 후 현경은 시를 쓰기 시작했고 이화여대 영문과에 진학한다. 진명여고 3학년이던 1942년 처음 만나 편지로만 교류했던 수영과도 해방 후에는 자주 만나 자신이 쓴 시를 보여주곤 했다. 이렇다 저렇다 평이 없던 수영도 자신의 시를 보여줬다. 현경은 ‘시로는 당해낼 수가 없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늘 수영에게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수영은 현경에게 이성(異性)은 아니었다. 그냥 ‘아저씨’로 불렸다. 하지만 수영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당시 해방정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배인철과의 짧은 연애가 끝나고 어둠에 갇혀 있는 현경을 수영이 찾아왔다. 그리고 ‘문학 하자’는 그의 말에 현경의 가슴은 요동쳤고 ‘구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둘은 연인이 된다. 현경은 데이트할 때 여의도의 한적한 물웅덩이에 알몸으로 뛰어들기도 했다. 수영은 두고두고 그 얘기를 했다고 한다. “당신은 참 아방가르드한 여자야. 어디서 그런 실험 정신이 나왔어.”

동생 졸업식에 참석한 생전 김수영의 모습. 어나더북스 제공


얼마 못 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헤어졌지만 현경은 바이런의 시 ‘마이 소울 이즈 다크(My soul is dark)’로 사랑을 고백하는 수영에게 다시 마음을 연다. 현경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한 시인의 아내가 된다. 하지만 꿈 같았던 신혼생활은 6·25 전쟁과 함께 산산이 부서진다. 북한 의용군으로 끌려간 수영은 야만의 세월을 견디며 돌아오지만 현경은 이미 다른 사람의 여자가 돼 있었다. 하지만 서로를 그리워했던 두 사람이 재결합하는 데는 수영의 ‘나가자’라는 말 한마디만 필요했다.

이제 김수영 문학이 만개했던 구수동 시절이 펼쳐진다. 현경은 소음에 유독 예민했던 남편을 위해 한강 가까운 구수동에 한적한 농가를 사서 어엿한 양옥집으로 개조했다. 수영에게는 문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안식처였다. 수영은 술을 좋아했지만 집과 서재에서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늘 “고된 노동으로 갈라진 어머니의 시커먼 손만 한 문학을 하고 싶다”던 수영에게 서재는 엄숙한 노동의 현장이자 신성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수영은 아내와 함께 닭을 키우며 노동의 땀을 흘렸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빨래하고 돌아오는 아내를 맞아주기도 했다. 주변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던 주사(酒邪)도 잦아들었다. 이 시절 발표한 시들은 김수영 문학의 정화(精華)로 평가된다. 당시 수영의 모든 작품의 첫 독자였던 현경은 작품 하나하나를 펜으로 정서해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대표작 ‘풀’을 발표한 지 17일 만인 1968년 6월 16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김수영은 세상을 떠난다.

저자는 “엄청난 국가폭력에 시달리면서도 굴하지 않고 일어나 ‘절대 자유’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갔던 시인의 삶이 무척이나 궁금했고, 그 힘이 어디서 생겨났는지를 살피고 싶었다”면서 “김수영 문학의 완성에 아내 김현경의 헌신과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김현경은 현재 김수영 시인의 유품이 가득한 용인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의 마지막 꿈은 ‘김수영-김현경 생활문학관’을 짓는 것이다.

⊙ 세·줄·평 ★ ★ ★

·김수영 문학의 이면을 엿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그리고 6·25 등 굴곡진 역사와 당시 생활상도 생생하게 읽을 수 있다
·시대를 풍미했던 임화 정지용 김순남 조병화 모윤숙 등과 얽힌 일화도 재밌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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