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중앙] 인터뷰 | “누구에게나 개방된 지식의 산실… 모두가 행복한 도서관 만들어낼 것”

2024. 6. 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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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윤 신임 국가도서관위원회 위원장

책 좋아하던 문학소년이 국내 최고 문헌정보학자·교육자·도서관정책 전문가로
제8기 국가도서관위원회 출범… 제4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2024~2028) 추진

제8기 국가도서관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된 윤희윤 대구대 문헌정보학과 명예교수.

국가도서관위원회(이하 ‘위원회’)는 대통령 소속 국가기관으로 국내 도서관 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수립·심의·조정하는 자문위원회다. 문체부장관(부위원장)을 비롯해 교육부, 기재부, 과기정통부, 법무부, 국방부, 행안부, 산업부, 복지부, 국토부, 여가부 등 11개 부처 장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대한민국 도서관계의 최고 기구라 할 수 있는데, 왜 필요할까?

도서관 정책은 문체부 소관이다. 하지만 도서관은 운영 주체가 각기 다르다. 공공도서관은 지방자치단체가, 학교도서관과 대학도서관은 교육부, 병영도서관은 국방부, 교도소도서관은 법무부가 정책을 담당한다. 이렇게 각기 다른 부처들의 정책을 통합·조정하는 역할을 위해 조직된 것이 바로 이 위원회다. 문체부장관을 부위원장으로, 11개 부처의 장관을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도록 한 것도 원활한 역할 수행을 위해서다.


2년의 공백기 딛고 출범한 제8기 위원장


문제는 지난 2년간 위원회 역할이 멈춤 상태였다는 것이다. 2022년 4월 제7기 위원회가 해단한 뒤 제8기 위원회가 이어 출범해야 했지만,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정비 추진 등으로 지연됐다. 그렇게 위원회가 구성되지 못한 상태로 2년이 흘렀다. 위원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공백기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전문가들은 도서관 독서 생태계가 많이 훼손됐다는 진단을 내렸다. 가장 먼저 현장 공공도서관, 작은 도서관들은 독서문화 분야 예산이 삭감됐다. 중앙정부의 관련 예산이 줄어들면서 각 지자체들도 관련 예산을 줄이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는 곧 도서관 이용자들이 누려야 할 문화 혜택 축소로 이어졌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여긴 도서관 관계자들이 모여 올해 초 문체부장관실을 두드린 끝에 위원장 위촉이 결정됐다. 여러 후보 중 문헌정보학자이자 도서관계의 거목 윤희윤(66) 대구대 문헌정보학과 명예교수가 위원장으로 위촉됐다. 드디어 4월 11일 제8기 위원회가 출범한 것이다. 5월 29일에는 제8기 위원회 출범 후 첫 번째 전체회의가 국립중앙도서관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유인촌 문체부장관을 비롯해 당연직 정부 부처 위원, 위촉직 민간위원 등이 모여 제4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2024~2028) 등을 심의·의결하는 자리였다.

윤 위원장이 ‘도서관’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유년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 청송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그는 이미 집 근처 향교를 다니며 천자문을 뗐다. 그의 나이 여섯 살 때였다. 당시 안동사범을 다녔던 삼촌의 영향으로 역사와 문학에 빠져들었고, 중학생 땐 고전읽기 대회에 지역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고등학교 은사님으로부터 도서관학과(현재 문헌정보학과) 진학을 추천 받았을 때도 수월하게 받아들였다. 당시 새로운 학문이었던 도서관학은 생소한 분야였지만, 관심이 갔다. 경북대 문리대 도서관학과 학생이 된 뒤에는 교내 백일장에 자작시가 당선돼 학보에 실리기도 했다.


“무너진 도서관 생태계 회복에 주력”


그는 대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로 30년간 재직한 뒤 퇴임하고 현재는 명예교수로서 강단에 서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도서관·정보학회 회장, 국립중앙도서관 자문위원장,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2016년에는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스 후즈 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에 등재되는 영광도 누렸다. 학자로서 저서도 여럿 남겼다. [도서관 지식문화사], [정보자료분류론], [공공도서관정론], [대학도서관경영론], [책과 도서관: 불멸의 기호학] 등이 있다. 그중 [도서관 지식문화사]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윤 위원장을 만나 비전과 목표를 들어봤다.

Q : 2년의 공백기 후 첫 위원장직을 맡게 됐다.

A : “위원회의 공백이 있었던 만큼 다들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보니 책임감도 크다. 무엇보다 제8기 위원회의 주요 과제인 제4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이하 ‘제4차 종합계획’)을 충실히 추진할 생각이다. 국민이 원하는 바를 잘 듣고, 전국 도서관 관계자들과도 소통과 협력을 통해 정책을 조정해갈 예정이다. 도서관이 국민의 삶을 행복하게 바꿔주는 지적 동반자로, 공동체 성장과 미래 혁신의 핵심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

Q : 지난 5월 29일 드디어 제8기 위원회 첫 전체회의가 열렸다. 감회가 컸을 듯하다.

A : “재적위원 26명 중 정부 당연직 7명, 민간 위촉직 10명 등 총 17명이 참석했다. 특히 부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유인촌 문체부장관이 끝까지 함께했는데, 위원회의 충실한 활동을 당부하면서 소위원회의 구성과 진행, 문화부 지원 등 도서관 정책이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해주셔서 무척 든든하다.”

Q : 제8기 위원회의 목표는 무엇이고, 또 가장 우선해서 실행해야 하는 과제는 뭔가?

A : “무너진 도서관 생태계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더욱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우려가 될 만큼 지적 자유 침해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다. 자료수집, 지식정보서비스, 이용자 알 권리와 접근성 보장, 공공대출권 문제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이를 위해 제4차 종합계획의 비전을 ‘모두가 행복한 도서관’으로 했다. 핵심가치는 ‘따뜻한 동행, 공동체 성장, 지속가능한 미래’다. 물론 이런 저런 목표와 실행과제가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나라가 문화국가가 될 수 있도록, 그래서 국민 행복에 기여하는 도서관이 되는 것이다.”

Q : 도서관의 역할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A : “도서관의 본질은 장서 중심의 지식정보센터 역할이다. 국·공립도서관의 장서는 공공재로서 국민 누구에게나 무료로 개방된 지식의 산실이다. 이런 본질 외에 파생적인 기능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문화활동의 거점 공간, 평생학습 산실, 사랑방 같은 사회적 장소로서의 역할이다. 만약 도서관이 지식정보센터의 본질을 무시하거나 외면한 채 파생적 역할에만 몰두한다면 ‘자기부정이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반 쪽짜리 도서관’이 된다. 때문에 두 가지 역할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국·공립도서관은 그 나라의 자존심”


5월 29일에 열린 제8기 국가도서관위원회 첫 전체회의에 유인촌 문체부장관 등이 참석해 제4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 (2024~2028) 등을 심의·의결했다. / 사진:국가도서관위원회

Q : 국가에 국·공립도서관이 왜 필요할까?

A : “국·공립도서관은 자국 또는 지역 지식정보의 보루일 뿐만 아니라 자존심이라 생각한다. 자국의 지식문화유산을 최대한 수집하고 보존해 후대에 전수하는 것, 국가장서의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국립도서관의 존재 이유다. 특히 공공도서관은 문화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필수재이자 공공재다. 우리나라 인구와 차이가 거의 없는 영국엔 도서관이 약 3900개가 있다. 미국은 약 9700개, 일본은 약 3200개가 있다. 우리나라는 몇 개일 거 같나? 약 1300개다. 턱없이 부족하다.”

Q : 단순히 도서관 수를 늘리고 규모를 키운다고 선진 도서관 문화가 생기지 않는다. 점검해야 할 부분을 꼽는다면?

A : “도서관 정책이 실효성을 담보하고 문화발전에 기여하려면 글로벌 메가트렌드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선되고 보완돼야 한다. 예를 들면 디지털 대전환, 저출생·초고령사회, 문화중심 지역 활력과 상생 등을 염두에 둔 정책이 나와야 하는데, 과연 지금 그렇게 흘러가고 있나 점검해야 한다. 세부적인 사항으로는 첫째, 자료예산을 증액하고 광역-기초 단위로 이어지는 견고한 시스템을 구축해 가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중앙행정기관, 특히 문체부·행안부·기재부·교육부의 협력과 지원이 절실하다. 둘째, 도서관 운영의 혁신적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기존의 사서 중심, 보존관리 위주의 운영방식에서 대중과 서비스에 방점을 두는 방향으로 조직문화를 혁신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도서관 내 음식물 반입 금지나 대출 책 수와 대출기간 등 모든 규제성 조항을 폐지 내지 재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서관과 독서에 대한 국민 인식 제고를 위한 전략적 노력이 필요하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가 매년 정기적으로 도서관, 독서, 지식문화, 평생학습의 중요성 및 생활화를 위한 가칭 ‘도서관대학, 도서관문화아카데미’ 등을 개설해 제공함으로써 삶과 도서관이 밀착되도록 인식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베이스캠프 돼야”

Q : 시대에 따라 도서관도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을 텐데, 도서관에도 ‘트렌드’가 있나?

A : “물론이다. 초기 도서관은 장서를 수집하고 무료 제공하는 서비스에 주력했다. 종이책에서 시작해 전자신문과 잡지, 데이터베이스 등 점차 매체 품종을 다양하게 갖추게 됐다. 지금은 온라인·디지털 서비스를 확대하고, 문화·평생학습 프로그램까지 자체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최근엔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도서관 시설이나 공간을 개방화해 국민 모두가 도서관을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Q : 도서관 정책 추진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을 꼽는다면?

A : “정책 추진의 방해요소는 무수히 많다. 의회를 포함한 시·도의 도서관 홀대, 파행적 운영, 지원 부족 등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인데, 사실 이런 문제들은 딱 하나가 해결되면 좋아진다. 바로 ‘인식 부족’ 현상이다. 도서관이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베이스캠프라는 인식이 범정부 차원에서 이뤄지면 해결될 문제들이다. 흔히 정치·경제·사회·문화 순으로 얘기한다. 문화가 제일 마지막에 언급되는데, 문화강국이 되려면 이런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현재는 물론 미래세대의 지속가능성을 생각한다면 도서관에 대한 인식도 변해야 한다.”

Q : 위원장 재임 기간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은?

A : “현행 도서관법 일부를 개정 또는 보완해야 한다. 도서관 지적자유 보장과 무료서비스 천명, 사서배치 기준과 사서자격제도 개선 등이다. 또 위원회 위원장의 역할을 강화해가고 싶다. 도서관법 제54조는 위원장이 종합계획, 연도별 시행계획 및 전년도 추진실적을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따라서 도서관 생태계의 건강성을 저해하는 제도와 행위에 대해 위원장이 시정을 권고할 수 있도록 법률이 보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위원회가 도서관의 주요 정책을 수립·심의·조정해야 하는 법적 권한과 책임이 있는 이상, 도서관 생태계를 훼손하고 위축시키는 파행(사서직 관장 미보임, 무분별한 위탁 운영)을 막고 사서자격제도 등과 관련해 제도적 보완에 주력할 예정이다. 위원회와 광역도서관위원회의 견고한 연대·협력시스템 확립을 통한 공공도서관 인프라 충실화, 시·도별, 시·군·구별 도서관 접근성 격차 해소, 지역문화발전 기여도 제고 측면도 위원장으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글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park.sena@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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