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우 유럽진출 인터뷰] ① 처음 작별인사하는 울산, 나의 집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설영우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로컬보이다. 울산광역시 언양읍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울산HD 유소년팀에 들어갔다. 우선지명 후 3년간 대학생활을 한 곳도 울산대였다. 소속팀 전지훈련을 제외하면, 해외에 오래 체류해 본 경험이 올해 초 카타르 아시안컵 한번뿐이다.
이제 설영우는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최근 울산에서 세르비아 강호 츠르베나즈베즈다로 이적한 설영우는 26일 울산 경기를 방문해 팬들과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로 떠났다. 수많은 한국 축구선수들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갈망하는 유럽진출의 길에 막 들어섰다.
'풋볼리스트'는 설영우의 유럽진출이 확정된 직후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눴다. 설영우가 한국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하려면 오히려 그의 집에서 시작해야 했다. 홍명보 감독이 종종 그를 "촌놈"이라고 부른 건 실제로 언양이 시골에 가깝기 때문이다. 설영우는 그 근거로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는 없고 롯데리아는 있다는 점을 든다.
▲ 울산 토박이라서 이 팀에 더 고맙다
"솔직히 실감이 안 나요. 진짜 가는 건지 아직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외국을 나가 본 적이 없거든요. 저의 모든 흔적은 한국에 있잖아요. 이런 것들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면서 비로소 확정됐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실감한 순간은 울산에서 작별 메시지를 인스타그램 등에 올려 주셨을 때요. 팀에서 확실하게 못박아주시니까 이제 소문이 아니고 진짜구나 싶더라고요."
-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의 연락이 많이 왔나요?
"오늘 어깨 재활훈련도 마지막 회차고, 그것 외에도 출국 전에 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폰을 들여다보지 못했어요. 그래도 짬을 내서 홍명보 감독님과 통화는 했는데 메시지를 못 봤어요. 카톡도, (인스타그램) DM도 완전 쌓여 있어요. 울산 내려가면서 하나씩 답장드리려고 하고 팬들이 보내주신 것들도 전부 다 읽으려고요. 다 답해드리려면 시간 잡고 해야 할 것 같아요. 복붙(복사 후 붙여넣기) 할 수도 없잖아요." (설영우가 하루종일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 카카오톡에는 새 메시지 350개가 표시돼 있었다)
- 언제부터 이 팀에서 뛰었죠?
"현대중, 현대고부터 나왔어요. 울산은 중학교 팀부터 클럽하우스에 있잖아요. 총 세월로 치면 중학교 1학년 때부터니까 정말 길죠. 청소해 주시는 어머님, 밥 해주시는 어머님, 경비실에 계신 주임님과 아저씨들, 그분들이 저 중학교 때부터 거의 안 바뀌셨어요. 사실 살면서 집보다 오래 머물렀던 곳이라고 할 수 있죠. 중 1때부터는 집에 거의 못 갔으니까. 대학교 다닌 3년 빼고는 그 클럽하우스에 살았죠. 그러다보니까 너무 편한 곳이예요. 반대로 프로 진출했을 때 새로운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새롭다'가 아니고 '집에 돌아왔다'는 느낌이었죠. 그 정도로 오래 머물렀던 곳을 떠나야 하니 슬프고, 또 감사하기도 하죠."
- 울산에 감사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뭔가요?
"제가 축구를 그렇게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거든요. 어렸을 때는 어느 학교가 좋은지도 몰랐어요. 아버지에게 현대중이라는 곳이 널 원한다고 들었을 때도 그게 울산 프로팀과 무슨 관계인지 명문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집 근처라서 고민 없이 알았다고 했죠. 그런데 그때부터 좋은 환경에서 축구할 수 있게 서포트를 쭉 받았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던 13살 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같은 선수는 될 수 없었을 거예요."
- 가까워서 좋았군요.
"그렇죠. 대회 참가할 때는 멀리 가지만, 리그는 울산에서 홈 경기를 하니까요. 다른 부모님들보다 쉽게 보러 오실 수 있었죠. 가족뿐 아니라 친구들도 올 수 있었어요."
- 말 나온 김에 물어보자면 국가대표가 됐을 때 언양에 플래카드 붙었을 것 같은데요.
"난리 났었죠. 너무 부끄러웠어요. 촌 플래카드 아시죠? "국가대표 설영우"가 아니라 저희 아버님 성함부터 나오고 "설XX 막내아들 영우 국가대표"라고 써 있으니까 더 부끄럽더라고요. 집에 가면 "우리 아파트의 자랑"이라는 문구도 있었어요. 그래서 집에 못 갔어요.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데 막 모자 쓰고 다니고요. 제 체감에는 언양 초입부터 시작해서 50m 간격으로 플래카드가 계속 있었어요. 아버지 친구들이 그렇게 거셨대요. 부끄러워서 진짜."
▲ 유상철, 김도훈, 홍명보 감독과 더불어 생각날 거 같은 '병수 아저씨'
- 제일 고마운 사람은 누군가요? 일단 프로 데뷔를 이끌어 준 김도훈 감독, 최근까지 지도한 홍명보 감독이 떠오르긴 합니다.
"정말 많은 분이 동시에 떠오르지만 세 분 꼽으면 유상철 감독님, 김도훈 감독님, 홍명보 감독님이죠. 이 세 분은 이번에 이적 성사된 게 그분들 덕분이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 유 감독과의 인연은 많이 알려져 있긴 합니다. 울산대 시절 설영우 선수를 지도했고, 포지션을 풀백으로 바꾸게 해 줬죠.
"포지션을 바꿔주신 분이잖아요. 그건 감독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 선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으니까요. 잘하던 선수가 포지션 변환 잘못해서 안 좋아지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저 같은 경우 유 감독님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려주셔서 그 덕을 봤죠. 당시 울산대 사이드백 형들이 다 다쳐서 누군가는 대신 뛰어야 했어요. 감독님 보시기에는 제가 튀지 않고 기본적인 것 위주로 하니까 맞는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래서 처음 권유를 받고 한 경기를 뛰었는데, 그 뒤로 진지하게 사이드백 훈련이 시작됐어요. 일대일 강습을 멍청 많이 해 주셨죠. 유 감독님이 모든 포지션을 다 소화해 본 걸로 유명하시잖아요. 제가 처음에 위치를 전혀 못 잡으니까 팀 훈련 끝난 뒤 따로 불러서 계속 알려주셨어요."
- 가깝게 지내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말 그대로 불현듯, 예상치 못하게 그리워지곤 하잖아요.
"축구를 하면서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생각이 나요. 대표팀 발탁이나, 작년에 K리그1 최우수 오른쪽 수비수로 상을 받았을 때처럼요. 그분이 아니었다면 이런 행복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죠. 근데 이럴 때 직접 연락드려서 감사하다고 말씀 드리고, 얼굴 뵈러 가고, 이젠 돈도 잘 버니까 밥이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잖아요. 그래서 생각이 더 많이 납니다."
- 프로에서는 김도훈 감독과 인연을 맺었죠.
"제가 입단할 즈음 울산은 '22세의 무덤'이었어요. 멤버가 워낙 좋으니까 U22 룰로 뛰어도 돋보이기 어렵고, 유망주들에게 굉장히 어려운 팀이었죠. 그래서 전 겁을 많이 먹었어요. 대학을 3년이나 하고 갔기 때문에 U22에 적용되는 기간이 고작 1년이었거든요. 일단 그냥 열심히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는데 다행히 감독님이 동계훈련 때 좋게 보셨던 것 같아요. 5라운드에 데뷔했는데, 다행히 제가 준비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었죠. 그래도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을 준비는 하고 있었던 게 다행이었어요."
- 국가대표 데뷔와 유럽진출은 홍명보 감독 아래서 이뤘습니다.
"사실 우리 팀에 오시기 전까지 한국축구 레전드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선수 시절 뛰시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감독으로서 활동하시는 모습도 못 봤고요. 근데 일단 인상이 너무 무서웠어요. 엄청 무서운 포스를 뿜고 계신데 말씀도 거의 없으세요. 훈련에서 그냥 가만히 보고만 계신데 너무 눈치가 보이고, 내가 괜히 잘못한 것 같고, 첫 훈련 때 쫄아서 제 플레이를 못 보여드렸던 기억이 나요."
- 홍 감독은 매의 눈으로 훈련을 보면서 선수들의 컨디션과 훈련 집중도를 늘 체크하죠.
"맞아요. 이제 감독님 스타일을 잘 아는데, 첫 훈련을 그렇게 망쳤음에도 불구하고 스타일이 맞았는지 기회도 많이 주시고 믿어주셨던 것 같아요. 양쪽 풀백 자리에서 다 기용하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없으면 안되는 거죠. 그렇게 경기를 더 많이 뛰게 되고, 경험이 늘고, 자신감이 차고, 결국 제 축구 인생에서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뤘죠. 영플레이어상, 국가대표 발탁, 아시안게임 금메달, 유럽 진출."
- 이제까지 누구나 알만한 인연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울산 로컬보이가 진짜 감사드리는 분은 누군가요?
"로비의 병수 아저씨, 정확한 성함이 뭐죠? 아, 김병수 주임님. 전 보통 병수 아저씨라고 불러서. 그분은 제가 중학교 1학년에 처음 들어갔을 때부터 계셨어요. 10년 넘은 인연이죠. 제가 중1 때 완전 빡빡이에 엄청 조그만 애였거든요. 중학교 졸업할 때 158cm였으니까 중1때는 진짜 작았죠. 그래서인지 절 엄청 귀여워하시고 예뻐하셨어요. 그분은 부산분이셔서 우리 둘이 이야기하면 '찐' 경상도 사람의 대화죠. 너무 편해요. 클럽하우스에 아예 살았으니까 1층 맨날 내려가서 주임님과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어요. 울산대 가면서 잠깐 떨어졌다가 프로가 되어 복귀했을 때 누구보다 반겨준 분이셨고요. 지금은 개인적으로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됐어요. 대표팀 뽑히면 축하한다고 전화도 주시고요. 아버지 같은 분이어서 아마 외국 가면 제일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어차피 연락은 해 왔으니까 세르비아에서도 전화를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나중에 아저씨 뵙기 위해서라도 클럽하우스 놀러 와야겠다."
- 한 마디 할 때마다 같은 건물에서 오래 살았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데요. 구단 밥은 중1 때 그대로인가요?
"아, 그건 할 얘기가 있죠. 유소년과 프로 사이에 칸막이가 있고 메뉴가 조금 다르거든요. 유소년 반찬도 영양이나 맛이나 충분하긴 한데 그래도 프로와는 달라요. 저희가 쭈꾸미 반찬으로 맛있다고 밥 먹으려고 하면 칸막이 너머에서 치이이익 하는 소리가 나요. 고기 굽는 소리요. 그 소리와 냄새만 즐기면서 식사할 때마다 꿈을 키웠어요. 내가 꼭 프로가 되겠다. 칸막이 저쪽에서 고기 굽는 사람이 되겠다."
사진= 설영우 제공, 울산HD 제공,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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