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경와인셀라]청정 안데스의 떼루아, 별자리에 담다

구은모 2024. 6. 28.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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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칠레 '산 페드로(San Pedro) GVSP'
20주년 맞은 산 페드로의 프리미엄 브랜드
안데스의 청정자연 담은 칠레 파인 와인
'2021 빈티지' 강렬함과 우아함 모두 품어

편집자주 - 하늘 아래 같은 와인은 없습니다. 매년 같은 땅에서 자란 포도를 이용해 같은 방식으로 양조하고 숙성하더라도 매번 다른 결과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와인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우연의 술'입니다. 단 한 번의 강렬한 기억만 남긴 채 말없이 사라지는 와인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사연을 품고 있습니다. '아경와인셀라'는 저마다 다른 사정에 따라 빚어지고 익어가는 와인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들려 드립니다.

산 페드로는 코레아 알바노(Correa Albano) 형제가 1865년 칠레 쿠리코 밸리(Curico Valley)에 설립한 와이너리다. 국내에선 설립연도를 기념해 만든 '1865' 와인의 생산자로 유명하다. 산 페드로의 프리미엄 와인 브랜드 'GVSP(Grandes Vinos de San Pedro)'는 가볍고 캐주얼한 와인을 넘어 칠레를 대표할 수 있는 고품질의 아이코닉 와인을 목표로 2001년 카차포알 밸리 지역에 새로 문을 연 파인 와인(Fine Wine) 와이너리다.

최근 한국을 찾은 가브리엘 무스타키스(Gabriel Mustakis) GVSP 총괄 와인메이커는 '카차포알 안데스(Cachapoal Andes)'가 보유한 떼루아(Terroir·포도밭을 둘러싼 자연환경의 총체)의 본질을 와인에 담아내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칠레 카차포알 안데스에 위치한 GVSP의 포도밭 전경.

청정 안데스에 가장 가까운 와이너리

칠레 중부의 카차포알 밸리는 동쪽 안데스 산맥과 서쪽 해안 산맥 사이에 위치한 지중해성 기후의 와인산지다. 카차포알 밸리는 해안 산맥이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해풍을 막고 있어 여름철 기온이 30도(℃) 이상 올라가는 무더운 지역인데, 이로 인해 이 지역 내 우수한 포도밭은 더운 기온을 피해 주로 동쪽의 안데스 산맥 경사지에 자리 잡고 있다.

GVSP가 와인에 담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카차포알 안데스가 바로 동쪽 안데스 산맥과 인접한 지역이다. 카차포알 안데스는 높은 고도와 안데스 산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냉각효과를 발생시켜 풍부한 일조량에도 포도가 비교적 서늘한 환경에서 익어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무스타키스 총괄은 "GVSP는 안데스에서 가장 가까운 와이너리"라며 "포도밭이 안데스와 바로 맞닿아 있어 포도와 와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카차포알 밸리보다는 카차포알 안데스라는 표현이 떼루아를 정확히 설명하는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가브리엘 무스타키스(Gabriel Mustakis) GVSP 총괄 와인메이커

GVSP가 처음 출범했을 당시에는 프랑스 보르도의 그랑 크뤼 와이너리 '샤또 다쏘(Chateau Dassault)'와 조인트 벤처 형식으로 운영됐다. 고품질 와인을 목표로 한 만큼 전통적인 프랑스의 양조기법을 담은 칠레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클래식한 캐릭터를 앞세워 프리미엄 와인으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2007년 이후 샤또 다쏘가 지분을 전부 정리하면서 비로소 독자적인 운영에 나선 GVSP는 자신들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찾기 위해 이전보다 혁신적인 양조법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시도가 와인 숙성에 사용하는 새 오크통의 비중을 100%에서 절반으로 줄이고 나머지는 중고 오크통을 사용해 포도 본연의 맛을 더욱 강조하는 모던한 방식으로 스타일에 변화를 준 것이다.

GVSP가 자리잡고 있는 칠레 카차포알 안데스.

이후에는 떼루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구역별 토양에 대한 연구를 강화했고, 카차포알 지역의 지리적 특성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포도 재배 방식과 양조법을 탐구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러한 떼루아에 대한 심화된 이해를 토대로 무스타키스 총괄이 합류한 2018년 이후에는 조기 수확과 부드러운 압착, 저온 발효 등 떼루아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을 와인 생산에 적용하며 혁신을 이어가고 있다.

무스타키스 총괄은 GVSP의 스무 번째 빈티지가 탄생한 2021년을 두고 평년보다 서늘해 포도가 나무에서 오랫동안 충분히 익어 와인이 뛰어난 숙성잠재력을 갖게 된 해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겨울의 강수량은 전년도에 비해 증가했고, 새싹이 돋기 시작할 때 토양이 머금을 수 있는 수분이 증가해 각 계절의 시기에 맞게 균일하게 포도가 성장했다"며 "2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이번 ‘2021 빈티지’는 특히 탁월한 폴리페놀 농도와 뛰어난 과실미의 발현으로 강렬하면서도 엘레강스한 와인이 만들어졌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알타이르, 혁신 와인메이킹 녹여낸 가장 빛나는 별

GVSP가 카차포알 안데스에서 생산하는 와인은 '시데랄(Sideral)'과 '알타이르(Altair)', '카보 데 오르노스(Cabo De Hornos)' 등 총 3종으로 모두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을 베이스로 생산된다. 이 가운데 GVSP의 아이콘 와인인 알타이르는 카베르네 소비뇽 90%,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10%가 혼합된 블렌딩 와인이다. 무스타키스 총괄은 "독수리자리의 주성(主星)인 견우성(알타이르)에서 이름을 따온 와인으로, GVSP의 포도밭 중 가장 일조량이 좋은 밭에서 난 포도로 만든다"고 설명했다.

GVSP가 와인 숙성에 사용하는 다양한 숙성 보조장치.(왼쪽부터)화강암 에그, 갈릴레오, 암포라.

알타이르에는 GVSP의 혁신적인 와인메이킹 기법이 다양하게 녹아들어 있다. GVSP는 와인 양조와 숙성 과정에서 포도의 품종 등에 따라 다양한 재질의 통(vat)을 사용해 최적의 캐릭터를 이끌어낸다. 알타이르의 경우 전체 원액의 70%는 225L와 300L 프렌치 오크통에서, 25%는 푸드르(Foudre·대형 오크통)에서 숙성하고, 나머지 5%는 '갈릴레오(Galileo)'라고 불리는 콘크리트 숙성장치에서 숙성시키는 게 특징이다.

갈릴레오는 콘크리트로 만든 구형(球形) 숙성 보조장치로 칠레에선 GVSP가 가장 먼저 도입했다. 무스타키스 총괄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오크통은 숙성과정에서 산소의 영향을 받지만 갈릴레오에 담긴 와인은 산소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숙성이 진행된다"며 "와인메이커가 갈릴레오를 회전시키는 과정에서 발효 후 와인에 남아있던 앙금(lees, 발효 후 남은 죽은 효모 찌꺼기)이 와인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더욱 부드러운 질감의 와인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각기 다른 통에서 16개월 동안 숙성한 와인은 이후 블렌딩해 6개월의 추가 숙성을 거쳐 완성된다. 와인은 체리 등 붉은 베리류의 강렬한 아로마와 오크통에서 배어난 은은한 뉘앙스가 조화롭고, 20년 이상의 숙성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GVSP의 와인. (왼쪽부터)'시데랄(Sideral)', '알타이르(Altair)', '카보 데 오르노스(Cabo De Hornos)'

알타이르와 더불어 GVSP를 대표하는 시데랄은 와이너리의 가장 기본급 와인이지만 와이너리의 철학과 특징을 가장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와인이기도 하다. 스페인어로 별자리를 뜻하는 시데랄은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축으로 시라(Syrah)와 카르미네르(Carmenere), 프티 베르도(Petit Verdot), 카베르네 프랑까지 GVSP에서 재배하는 모든 품종의 포도가 사용되는 와인이다.

무스타키스 총괄은 "GVSP의 와인을 ‘별자리 와인’이라고 소개하는데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라며 "하늘의 다양한 별들이 모여 하나의 별자리가 되고, 그것이 우주의 균형을 나타내는 것처럼 다양한 포도밭에서 나온 다양한 포도를 블렌딩해 만든 시데랄도 우리가 선보일 수 있는 자연의 균형을 형상화한 와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포도가 와인이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의 수호자로서 그동안의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관리했다"며 "안데스의 떼루아를 오롯이 담아낸 GVSP 와인을 통해 칠레 와인의 우수성을 경험해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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