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균기자가 만난 사람]김민규 “(김)주형이 처럼 독하게 골프하겠다”
제네시스 포인트 1위로 콘페리투어 파이널 ‘파란불’
‘골프 천재’ 김민규(23·CJ)가 지난 23일 충남 천안시 우정힐스CC에 막을 내린 코오롱 한국오픈에서 우승했다. 2022년에 이어 개인 통산 대회 2승째다.
그의 우승을 보면서 최경주(54·SK텔레콤)의 우승 순간이 문득 오버랩됐다. 최경주는 지난 5월 19일 막을 내린 SK텔레콤 오픈에서 KPGA투어 최고령 우승 기록을 갈아 치우면서 정상 등극에 성공했다.
모든 우승 뒤에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어느 정도의 행운이 따르기 마련이다. 최경주와 김민규에게도 그런 행운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찾아온 행운은 그저 그런 행운이 아니었다. 자칫 대참사로 이어질 뻔했던 절체절명의 위기가 외려 기회로 둔갑해 결국에는 우승으로 이어진 ‘기적’에 다름없었다.
혹자는 그 행운은 절대적인 힘의 조화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어쨌든 그 순간을 현장에서, 혹은 TV로 지켜본 골프팬들은 골프판에서 떠도는 이른바 ‘운칠기삼’의 정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즐거웠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자신의 경험인양 골퍼들 사이에서 오래오래 무용담으로 회자할 듯하다.
김민규는 지난 23일 열린 코오롱 한국오픈 마지막 날 13번 홀(파3)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행운 벼락’을 맞았다. 이 홀은 대회 개최지인 우정힐스CC의 시그니처 홀이다. 그린을 연못이 빙 둘러싼 전형적인 우리나라 최초의 아일랜드홀이다. 일본의 ‘골프 영웅’ 이시카와 료가 2012년 대회에 출전해 1라운드부터 사흘 연속 티샷을 물에 빠뜨린 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코오롱 한국오픈 우승자는 이 홀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승부처가 되는 곳이다. 마지막 날 김민규가 날린 티샷이 탄도가 너무 낮아 볼이 해저드로 향했다. 물까지 튀어 오르는 게 보여 의심의 여지 없이 페널티 구역에 빠진 것이었다.
기막힌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캐디의 ‘볼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말에도 ‘설마’하고 현장에 가보았다. 거짓말처럼 볼이 러프에 올려져 있었다. 물수제비샷이 되어 볼이 수장을 면했던 것. 가슴을 쓸어내린 김민규는 두 번째 샷을 핀에 가깝게 붙여 파세이브에 성공해 우승 발판을 마련했다.
우승 뒤 하루가 지나 그에게 전화로 당시 상황을 물었다. 김민규는 “4번 아이언 로우페이드 샷을 시도했는데 너무 낮게 날아갔다. 캐리가 안나와 해저드에 물이 튀는 걸 보고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볼이 운좋게 올라와 있었다”라며 “지난달 최경주 프로님의 SK텔레콤오픈 우승할 때가 생각났다. 공이 너무 낮게 가다보니 튕겨 나왔던 것 같다. 물수제비가 된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최경주는 지난 5월 SK텔레콤 오픈 마지막 날 제주도 서귀포시 핀크스CC 18번 홀(파4)에서 치러진 연장전에서 두 번째 샷이 그린앞 페널티 구역으로 향했지만 거짓말처럼 아주 작은 섬에 안착, 파세이브에 성공해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골프장 측은 이후 겨우 한두 사람 발을 올릴 정도 크기인 그 섬에 ‘최경주 아일랜드’라는 이름을 붙여 내장객들에게 행운을 나눠주고 있다. ‘최경주 아일랜드’는 핀크스CC의 명소로 인기 절정이다.
최경주와 김민규는 사실상 멘토와 멘티 관계다. 김민규가 최경주 프로가 설립한 최경주재단 골프 꿈나무 출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대회 우승도 올 시즌 첫 번째 우승인 데상트코리아 매치플레이 때와 마찬가지로 ‘최경주 퍼터’로 일궈냈다.
그에게 비장의 무기인 최경주 퍼터에 대해 물어 보았다. 김민규는 “정확히 말하자면 최 프로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퍼터는 아니다. 2020년 초반에 스승인 이경훈 프로님 백에서 우연히 발견해 프로님의 허락을 받고 사용하게 된 퍼터”라고 설명했다. 이경훈은 최경주 프로의 절친으로 최경주재단 골프 꿈나무 단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민규도 그때 꿈나무로 발탁한 골프 영재였다.
이 퍼터는 2001년에 출시된 구형 일자형 퍼터로 현재는 단종된 제품이다. 최경주가 친구인 이경훈에게 선물한 것이 제자에게까지 대물림하게 된 것이다. 김민규는 “퍼팅이 안 좋아 2020년 초반에 이 퍼터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했다. 2020년 군산CC 오픈과 KPGA 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을 때 이 퍼터를 사용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한동안 최경주 퍼터는 김민규의 백에서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여러 퍼터를 사용해 보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올 시즌 초반 다시 일자형 퍼터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차 트렁크에 방치돼 있던 ‘최경주 퍼터’를 우연히 발견해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김민규는 “한동안 다른 퍼터를 쓰다가 이 퍼터를 다시 쓰기 시작한 지난달 KB금융 리브챔피언십에서 공동 3위 입상에 이어 이달 초 데상트코리아 매치플레이, 그리고 이번 한국오픈까지 우승하게 됐다. 정말 소중한 퍼터”라고 비밀 병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나타냈다.
김민규의 우승 하루 다음 날 친한 동생인 김주형(21·나이키골프)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특급대회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에서 연장 접전 끝에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에 패해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다.
중계방송을 통해 그 상황을 지켜봤다는 “아쉬웠다. 그러나 졌지만 잘 싸운 경기였다”라며 “주형이가 월클 선수로 성장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다가오는 파리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고 했다.
김민규와 김주형은 어려서부터 해외에서 골프를 했다는 점이 닮았다. 먼저 주목을 받은 건 김민규였다. 그는 지난 2018년에 만 17세 64일의 나이로 유럽프로골프투어(현 DP월드투어) 2부인 챌린지투어 ‘D+D 레알 체코 챌린지’에서 투어 역대 최연소 기록으로 우승했다.
하지만 현재 위상은 김주형이 역전한 양상이다. 김주형은 PGA투어서 벌써 3승을 거두고 있다. 김민규는 “주형이는 골프를 정말 독하게 한다. 국내서 활동했던 짧은 시간에도 오로지 골프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라며 “동생이지만 본받을 만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자잘한 악재들이 있었는데 다 털어내고 최근 상승세를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이어 “현재 제네시스 포인트 1위인 여세를 몰아 목표인 대상을 차지해 PGA 콘페리투어에 나가도록 하겠다”라며 “또 이번이 두 번째인 디오픈에서도 기회를 잘 살리도록 하겠다. 2년 전에는 경험 부족으로 컷 탈락했는데 이번에는 4일 내내 경기를 하고 돌아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 golf5601@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네이버웹툰, 나스닥 첫날 10%↑ 대박…“기업가치 4조”
- 청담동 400억 초고가 주택…“펜트하우스 주인은 손흥민”
- “제조사가 급발진 입증해야” 5만명 동의한 도현이법
- ‘이런 일이’…일행이 친 골프공 머리에 맞은 60대 사망
- 최대 ‘사형’ 위협에…대만 “중국 여행 피해라” 경보 상향
- “개처럼 뛰는 중요”… 40대 ‘쿠팡 기사’ 과로사 의혹
- 스파크 덮친 ‘만취 포르쉐’… 피해자 죽고 가해자는 경상
- 허웅 측 ‘책임 회피’ 논란에… “두 번 결혼하려 했다”
- 애만 안 낳나? 결혼도 안 한다… 미혼율, 20년 새 3배로
- “피멍들게 때린 코치, 손흥민 친형이었다”…父와 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