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시각각] ‘아덴만 영웅’의 소아과 붕괴 경고

주정완 2024. 6. 28.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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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 논설위원

“나는 한국 의료 현실에 경악했다. 중증외상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나의 업인데도 환자들은 자꾸 내 눈앞에서 죽어나갔다. 살려야 했으나 살릴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필요한 것은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아서 더 알 수 없었다.”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이 과거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교수로 근무하면서 쓴 책(『골든아워』)의 일부다.

이 원장은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뒤 총상을 당한 석해균 선장의 수술 성공으로 ‘아덴만 작전의 영웅’이란 별명을 얻었다. 대중은 겉으로 보이는 성공에 박수를 보냈지만 속사정은 처참했다. 이 원장은 환자를 살리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할수록 병원에는 막대한 적자의 ‘원흉’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절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자신과 동료들을 ‘바보 같은 사람들’이라며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 “의대생 늘린다고 소아과 하겠나”
전공의 지원 급감에 암울한 미래
소아 진료 살려야 출산율도 올라

지난 2월 15일 대전시 유성구 국군대전병원 대회의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 뉴시스

이 원장이 최근 의료계 현안에 대해 작심 발언을 했다. 지난 19일 대전교육연수원이 진행한 명사 초청 강연에서다. 이 원장은 “30년 전과 비교해 소아과(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세 배 늘었고 신생아는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지만, 정작 부모들은 병원이 없어 ‘오픈런’을 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의대생을 200만 명 늘린다고 소아과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의료계는 벌집이 터졌고 전문의는 더 이상 배출되지 않아 없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아과 진료 기반의 붕괴는 최근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 이전에도 이미 심각한 상황이었다. 특히 소아과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율 급감은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지표다. 2019년 첫 미달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는 역대 최저인 17%까지 추락했다. 올해는 지원율(26%)이 약간 높아졌지만 실제 현장에서 소아과 전공의를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다. 이들 대부분이 지난 2월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뒤 돌아오지 않아서다. 소아응급의학과 교수 출신인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지난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청문회에서 “전공의들을 억지로 끌어 놓는다고 한들 내년에는 누가 지원하겠는가. 최소 5년에서 10년 가까이 전문의 배출 공백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5월 서울 시내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에 붙은 폐업 관련 안내문. 소아과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율은 2019년 첫 미달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는 역대 최저인 17%까지 추락했다. 연합뉴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오는 30일 긴급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최용재 아동병원협회장은 “대학병원들이 사실상 소아 응급환자 진료를 포기하면서 이런 환자들이 아동병원으로 몰린다. 그런데 아동병원은 장비도, 인력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힘들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아동병원협회는 얼마 전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의 공개적인 모욕에도 집단휴진에 동참하지 않았던 단체다. 최 회장은 “요즘 동물병원에도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 장비를 갖춘 경우가 있는데, 아동병원은 그럴 여력이 없다. 우리 아이들이 개나 고양이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 하나”고 반문했다.

정부는 상황의 심각성을 정말 모르는 건지,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건지 의문이다. 최근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내놓은 보건의료 관련 대책은 실망스러웠다. 제목(‘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은 거창했지만 소아과 진료에 대해선 입원 환자의 본인부담금 감면을 검토한다는 게 고작이었다. 대신 난임부부가 아이를 갖기 쉽게 난임 시술비 지원을 확대한다는 내용을 강조했다.

아이를 가진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아이를 잘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낳은 아이를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첫아이가 아플 때 소아과 전문의를 만나기 어렵다면 둘째나 셋째를 낳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인가. 소아과 붕괴가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안이한 대응으로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낼 순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건강은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좌우할 정도로 중차대한 문제란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주정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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