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초저출산 시대에 주목하는 ‘반반 결혼’ 풍속도

2024. 6. 28.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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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숙미 한반도선진화재단 양성평등위원장·전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는 저서 『욕망의 진화』에서 동물의 짝짓기에 사용하는 각종 전략은 좋은 배우자를 차지하기 위한 진화적 산물임을 연구로 규명했다. 여성은 임신이나 양육 기간 중 생존 능력이 떨어진 자신을 위해 많은 자원을 지원하고 보호해줄 수 있는 높은 경제력과 강한 근육을 가진 남성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학계에서는 여성의 상향혼(Upward marriage) 욕구가 본능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결혼 적령기 여성의 상향혼 욕구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며 남성의 경제력에 대한 기대가 유난히 높다. 실제로 2023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득 동질혼과 가구 구조가 가구 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보고서’에서 부부간 소득 동질혼 경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에서 가장 낮았다.

2023년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득 동질혼과 가구 구조가 가구 소득 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부부간 소득 동질혼 경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국 중에서 가장 낮았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아현 웨딩거리의 한 웨딩드레스 판매점. 연합뉴스

여성의 상향혼 욕구는 20·30세대 여성이 추구하는 높은 물질주의(서울대 행복연구센터 2019년)와 관련지어 설명된다. 20·30세대 여성들은 과시하기 위해 SNS에 올린 다른 사람들의 게시물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특유의 상향 평준화 욕망을 갖는다고 한다. 이외에도 전통적 가족주의와 가부장제에 갇힌 부모가 자녀의 결혼에 깊이 개입하고, 특히 딸의 배우자에게 주거 마련 같은 높은 경제적 안정성을 요구하는 것도 상향혼을 촉진한다.

「 신혼집 등 비용 남녀 절반씩 부담
사회 변화로 결혼 관념도 달라져
소득·환경 고려해 공정한 분담을

결혼 적령기 여성의 남성에 대한 높은 기대치는 여성 수가 부족한 인구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통계청의 ‘인구동태 통계연보’에 따르면 1986년도부터 초음파 기술이 도입되면서 뿌리 깊은 아들 선호 전통으로 인해 여아 낙태가 증가했다. 백말띠였던 1990년생의 경우 남녀성비가 116.5대 100으로 극에 달했다. 그 후 1999년까지 태어난 여성이 남성보다 약 40만 명이 적다.

반반 결혼은 결혼식·혼수·신혼집 마련 비용 등 결혼 생활에 필요한 돈을 절반씩 부담해야 한다는 새로운 유행으로 결혼정보업체 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녀의 62.6%가 반반 결혼을 긍정적으로 봤다. 셔터스톡

2015년부터 국내에 불기 시작한 급진적 페미니즘에 당시 남성들은 반발했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나비효과는 지난 2022년 대선에서 보듯 뜻밖에도 20·30세대 남성이 양성평등에 눈을 뜨는 계기를 만들었다. 최근엔 여성의 상향혼 풍토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면서 ‘반반(半半) 결혼’이라는 동질혼 트렌드가 두드러진다. 반반 결혼은 결혼식·혼수·신혼집 마련 비용 등 결혼 생활에 필요한 돈을 절반씩 부담해야 한다는 새로운 유행이다. 결혼정보업체 조사에 따르면 미혼 남녀의 62.6%가 반반 결혼을 긍정적으로 봤다.

실제로 결혼 1~2년 차 신혼부부의 결혼비용 부담률을 보면 남녀가 60 대 40으로 나타났다(듀오 2023). 그보다 11년 전인 2012년의 신혼부부 결혼비용 비율(75 대 25)과 비교하면 여성의 부담률이 크게 올랐다. 정확히 50 대 50은 아니지만 반반 결혼에 빠르게 근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여성의 결혼비용 부담률이 대폭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양성평등 트렌드 이외도 집값 폭등이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영끌’이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집값이 폭등하자 남성이 혼자 힘으로 신혼집을 마련하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2023년 기준 결혼 1~2년 차 신혼부부의 결혼비용 부담률을 보면 남녀가 60 대 40으로 2012년의 신혼부부 결혼비용 비율(75 대 25)과 비교하면 여성의 부담률이 크게 올랐다(듀오 2023). 여성의 결혼비용 부담률이 대폭 높아진 이유에는 양성평등 트렌드 이외에도 집값 폭등의 영향이 있다. 연합뉴스


남녀 결혼비용은 점점 반반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20~49세 중에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미혼 비율은 남성이 47.1%, 여성이 32.9%(통계청 2023)로 남성이 여성보다 훨씬 높다. 이런 현상은 신규 일자리 부족과 가치관의 변화 외에도 폭등한 집값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남성의 결혼 포기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여성이 결혼비용의 상당 부분을 감당하지 않으면 결혼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다행히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혼인 건수가 1만8039건으로 1년 전보다 24.6% 늘었다. 초저출산 시대에 참 반가운 소식이다.

양성평등에서 성 형평성은 남녀의 책임을 기계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다.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라는 오랜 결혼 풍습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동시에 사회 구조적 문제 때문에 여성의 평균임금이 남성의 70%일 정도로 남녀 임금 격차가 큰 한국사회에서 반반 결혼이 과연 공정한지 논란도 제기된다. 결혼은 남녀가 만나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함께 이루는 법률적 계약이다. 각자의 소득과 환경을 고려한 유연하고 조화로운 결혼비용 부담이 진정한 양성평등 아니겠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손숙미 한반도선진화재단·양성평등위원장·전 인구보건복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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