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애니싱 벗 K팝
“솔직히 기대했는데 많이 허탈하긴 하네요.” 베이징 공연 취소 소식을 들은 뒤 록밴드 세이수미의 보컬 최수미가 전화통화로 기자에게 밝힌 심경이다. 세이수미는 지난 2014년부터 활동해온 혼성 4인조 록밴드다. 데뷔 5년 만에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모던록 앨범과 노래 부문에서 수상했다. 지난달 베이징문화여유국이 세이수미의 공연을 허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을 때 큰 기대를 모았다. 2015년 그룹 빅뱅의 중국 투어 이후로 무려 9년 만에 베이징에서 열리는 한국 대중가수의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남기고 공연이 무산됐다. 최수미는 “중국 여러 도시에서 공연을 추진했다가 베이징만 겨우 허가받았다”면서 “그마저도 취소되니 기운이 빠진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한한령(限韓令·한국 문화 콘텐트 금지령)’을 중국 정부는 문화계의 자발적 행동이라며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2016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중국 내 한국 영화, 드라마 등 콘텐트는 사라졌고 한국 연예인 활동도 막혔다. 그러다 2020년부터 영화와 드라마, 게임 등 분야는 점차 풀렸지만 한국 대중음악엔 여전히 이상하리만큼 박하다.
영국 그룹 웨스트라이프, 일본 밴드 킹누 등 다른 나라 가수는 중국서 자유롭게 공연을 연다. 박재범·헨리 등 외국 국적 K팝 가수들도 활동에 제약이 없다. 소프라노 조수미와 재즈 뮤지션 마리아 킴 등도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무대에 섰다. 그런데도 유독 한국 대중 가수에게만 문을 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 콘텐트 업계 관계자는 “애니메이션·게임 등 국적이 애매한 작품에 대해선 덜하지만 한국 것이라는 게 명확하고 중국 청년들이 크게 열광할 만한 K팝은 규제가 강한 듯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K팝 봉쇄’에도 중국 팬들의 사랑은 여전하다. 중국 음원 차트 절반은 K팝 차지다. 노래 한 곡 못 듣는 팬 사인회도 팬들이 가득 메운다. 아이돌 멤버 생일이 되면 중국 팬클럽이 자체 생일 파티를 연다. 커버댄스 등 ‘가수’만 뺀 K팝 공연은 이미 진행 중이다.
콘텐트 업계는 K팝에 묶인 사슬이 머지않아 풀릴 것으로 본다. 이미 홍콩·마카오에선 K팝 가수가 포함된 대형 공연이 열린다. 다른 지역도 K팝 공연에 열의를 보인다고 한다. 다만 중국 정부의 ‘윤허’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국내 K팝 공연 재개야 말로 한한령이 사라졌다는 확실한 신호가 될 것 같다.
이도성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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