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오늘도 낚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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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일요일이던 2009년 9월 6일 새벽 2시쯤부터 임진강 상류 황강댐 수문을 열어 4000만t가량을 방류했다.
그날 아침 6시쯤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수위는 군사분계선 인근 필승교 기준 약 4.7m로 단숨에 2.4m 가까이 치솟았다.
나는 후배 기자와 현장으로 파견됐다.
후배 기자가 연천군 보건의료원 응급실 안팎에서 기록한 장면을 전화로 읊었고, 나는 사고수습대책본부가 설치된 왕징면사무소에서 기사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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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일요일이던 2009년 9월 6일 새벽 2시쯤부터 임진강 상류 황강댐 수문을 열어 4000만t가량을 방류했다. 그날 아침 6시쯤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수위는 군사분계선 인근 필승교 기준 약 4.7m로 단숨에 2.4m 가까이 치솟았다. 강 언저리에서 야영 중이거나 낚시하던 이들 중 6명이 강물에 휩쓸려 사라졌다. 나는 후배 기자와 현장으로 파견됐다. 실종자 중 3명이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됐다. 후배 기자가 연천군 보건의료원 응급실 안팎에서 기록한 장면을 전화로 읊었고, 나는 사고수습대책본부가 설치된 왕징면사무소에서 기사로 옮겼다. 하루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이들 앞에서 유족들은 흐느끼거나 울부짖었다. 혼절하는 이도 있었다. 들것에 실려 온 40대 남성의 시신 앞에서 한 가족은 각자 “여보” “아빠” “아들아” 부르며 오열했다. 이런 현장에서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숨죽여 그 모습을 담는 것뿐이다.
기사를 써 보낸 뒤 후배에게서 다급해 보이는 전화가 걸려왔다. 기사에서 40대 남성 사망자의 아내와 딸로 언급한 이들을 두고 유족인 부모·형제가 “고인의 처자식이 아니다. 우린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고 후배는 전했다. 이런 곳에서 죽은 사람을 붙들고 “여보” “아빠” 부르며 울던 그들이 처자식이 아니라면 누구란 말인가. 서둘러 기사를 고쳐 보냈다. 처자식처럼 행동한 이들이 사기꾼인지, 이 가족에게 어떤 사정이 있어 서로 선을 긋고 싶어 한 것인지 내막은 확인할 수 없었다. 거기서 파고들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불어난 강물에 쓸려간 사람들이 비명횡사한 채 하나둘 실려 오는 중이었다. 불확실해진 내용은 들어내는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던 사실관계가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거나, 확실하다고 판단했던 내용이 불명확해지는 사례를 그 후로도 밥 먹듯 겪었다. 아직 확인 단계라면 기사 방향을 틀거나 취재를 접기도 했다. 주요 사실관계가 엉터리이거나 엉터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이 ‘기사를 이렇게 쓰겠습니다’ 하고 회사에 보고한 뒤나 이미 그렇게 기사를 쓰고 있는 중일 때는 등골이 서늘해진다. 기사를 다 써서 내보낸 뒤라면 말할 것도 없다.
내가 한 달 전부터 일하고 있는 온라인뉴스부는 어느 취재 부서보다 팩트체크가 절실하면서도 어려운 곳이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 국내외 모든 분야 주요 이슈를 신속하게 전달하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정보를 상대해야 한다. 가짜 정보에 낚이지 않고, 터무니없는 기사로 독자를 낚지 않아야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다.
일주일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일본에서 유행 중인 골판지 관’이란 제목의 글이 올라오자 언론사들이 받아쓰듯 기사화했다. 작성자 불상, 출처 불명의 게시물은 엉성하게 생긴 종이상자를 소각로에 집어넣는 듯한 사진을 앞세우고 있었다. 확인해 보니 필리핀 거주자가 반년 전 올린 유튜브 영상을 누군가가 캡처한 뒤 전혀 무관한 일본어 자막을 입힌 조작 사진이었다.
하지만 많은 매체가 이 기사로 조회수 장사를 했다. 상자에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이름이 부자연스럽게 합성돼 있었지만 의심도 확인도 하지 않았다. 그 기사들은 지금도 네이버 뉴스 등에 걸려 있는데 어떤 언론사는 주요 기사라며 당당하게 ‘픽(PICK)’으로 선정했다. 가짜 정보에 낚인 언론(기자들)이 가짜뉴스로 독자를 낚는 악순환이었다.
다 잘 알겠지만 온라인은 자유분방한 만큼 혼탁하다. 이곳에서 정확한 기사를 쓰려면 아무래도 속도가 더뎌진다. 핸디캡을 감수하고 그 마땅한 작업을 시도 중인 온라인뉴스부 기자들은 요즘 고민이 깊다.
강창욱 온라인뉴스부 차장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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