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늘어난다…쿠팡식 성장 전략의 이면
쿠팡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4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쿠팡이 PB 상품과 직매입 상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쿠팡 랭킹’ 검색 순위를 조작했다는 혐의다. 공정위가 단일 유통 업체에 부과한 역대 과징금 중 최대 액수다.
쿠팡은 수차례 반박 입장문을 내는 등 전면전에 나서는 모습이다. “시대착오적인 조치”라며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는 한편 “정부 명령을 이행할 경우 로켓배송을 유지할 수 없다”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공정위와 행정소송도 예고한 상태다.
기업 입장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이슈마다 ‘강경 대응’만을 고수해온 쿠팡을 두고 “적을 너무 많이 만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업계 안팎에서 터져 나온다.
실제 정부만 쿠팡에 날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경쟁사·입점 업체와 연이은 갈등에 이어 요즘에는 믿었던 소비자 여론까지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쿠팡 랭킹’ 조작…쿠팡은 “억울해”
최근 유통업계 가장 뜨거운 화두는 ‘쿠팡 과징금 관련 이슈’다.
공정위는 쿠팡이 PB 상품과 직매입 상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쿠팡 랭킹’ 검색 순위를 조작했다는 혐의로 과징금 1400억원을 부과하고 검찰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쿠팡은 실제 검색 결과와 무관하게 자기 상품을 검색 순위 상위에 고정 노출해왔다. 소비자에게 PB 상품 구매를 유도해 공정 경쟁을 저해했고 다른 쿠팡 입점 중개 업체에 간접적으로 피해를 줬다며 과징금 처분을 내렸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부분은 ‘검색 순위 조작’이다.
크게 2가지다. 첫째는 검색 알고리즘 조작이다. 자기 상품 검색에 가중치를 두는 등 방식으로 그간 PB 상품 약 5500개와 직매입 상품 약 5만8000개를 검색 순위 상위에 고정 노출했다는 혐의다. 둘째는 임직원을 동원한 구매 후기 작성이다. 무료로 제품을 받아보고 구매 후기를 작성하는 ‘쿠팡 임직원 체험단’이 쿠팡 PB 상품 리뷰를 써온 것을 문제 삼았다. 판매가 부진하거나 후기가 없는 PB 상품 위주로 리뷰를 달았는데 후기가 7만건이 넘는다. 공정위는 이를 소비자 구매 유도를 위한 조직적인 허위 리뷰 작성으로 봤다.
공정위는 “쿠팡은 온라인 쇼핑 1위 사업자로 상품 거래 중개자와 판매자 지위를 겸하고 있는 거대 플랫폼이다. 자기 상품 판매와 입점 업체 중개 상품 판매에서 이해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소비자의 합리적 구매 선택과 입점 업체와 공정 경쟁을 저해했다”고 설명했다.
쿠팡은 공정위 처분이 부당하다는 입장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다.
먼저 검색 순위는 ‘조작’이 아닌 ‘상품 배치’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상품이 잘 보이는 매대에 PB 상품을 진열하는 오프라인 채널과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며 ‘역차별’이라고 항변한다. 쿠팡 관계자는 “유통 업체는 차별화된 상품을 선보여야 경쟁할 수 있다. 상품을 노출·배치하는 디스플레이 전략까지 일률적 기준을 따르라고 강제한다면 기업 간 경쟁은 위축되고 소비자 편익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쿠팡 PB 상품 비중은 전체 매출 5% 정도로 20~30%에 이르는 국내 오프라인 유통 업체와 비교해 미미한 수준이다.
임직원 리뷰 역시 “조작이 없는 솔직 후기였다”고 답변했다. 임직원 체험단 평균 평점이 일반인 체험단보다 오히려 낮을 뿐 아니라 공정위가 문제 삼은 리뷰 개수 역시 전체 0.3%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쿠팡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값싸고 질 좋은 상품을 구입할 기회가 더 늘었고 쿠팡 내 다른 입점 업체 매출은 오히려 성장했다”며 “피해를 본 이가 누구인지, 피해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과징금 처분은 과도하다”고 설명했다.
강경 대응…공정위와 갈등 확대
업계에서는 공정위와 쿠팡, 양측 논리가 모두 허술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공정위는 실제 피해 사실과 규모를 입증하지 못한 상황에서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점에서, 쿠팡은 검색 순위 조작에 대한 지적을 ‘업계 관행’이라는 식으로 뭉뚱그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의견이 모이는 지점도 있다. 정부를 향한 쿠팡의 대처가 다소 과하다는 지적이다. 쿠팡은 이례적으로 수차례 입장문을 발표하며 공정위 처분에 연이은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공정위 과징금 처분 발표가 있던 6월 13일 하루에만 세 차례 입장문을 냈고 공정위가 Q&A로 정리했던 쟁점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자료를 추가 배포하기도 했다. “시대착오적” “거래 관행을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아” “퇴행적 규제” 같은 다소 감정적인 표현도 여럿 됐다.
공정위와 쿠팡이 맞부딪힌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1년 공정위는 쿠팡이 LG생활건강 등 납품 업체를 상대로 할인 비용 떠넘기기 등 ‘갑질’을 했다며 과징금 약 33억원을 부과했다. 쿠팡은 여기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쿠팡의 승리. 올해 2월 서울고등법원은 공정위가 쿠팡에 내린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모두 취소하라며 쿠팡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가 판결에 불복해 상고하면서 사건은 대법원 심리를 앞두고 있다. 비슷한 시기 공정위는 쿠팡과 자회사에 하도급 단가를 허위 기재했다는 이유로 1억7800만원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공정위 입장에선 불편한 지점은 또 있다. 바로 쿠팡 동일인(대기업집단 총수) 이슈다. 2021년 대기업집단이 된 쿠팡은 창업주인 미국 국적 김범석 쿠팡lnc 이사회 의장이 아닌 ‘쿠팡 법인’이 동일인이다. 법인이 동일인인 대기업집단은 공정위 규제 강도가 여타 기업집단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다. 지난해 외국인도 동일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바꾸고 한기정 공정위원장이 직접 나서 “김 의장이 동일인으로 볼 만한 실체를 갖추고 있다”고 말하는 등 힘을 실었지만, 올해도 김 의장은 동일인 지정에서 제외됐다.
가뜩이나 공정위가 쿠팡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던 터. 최근 과도한 항변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공정위와 쿠팡 사이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비단 이번 과징금 처분뿐 아니다. 쿠팡은 현재 멤버십 가격 인상 관련 눈속임 의혹, 하도급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공정위에 미운털이 박힌 모습이다. 이번 쿠팡을 겨냥한 듯한 과징금 처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며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리스크가 산재한 상황에서 지금 같은 강경 대응만이 과연 정답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2. 기업도 ‘反쿠팡 연대’
타사 사례 끌어들여 “억울해”
쿠팡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건 정부뿐 아니다. 경쟁사나 입점 기업 등 유통 생태계 내 여러 기업 역시 쿠팡에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다. 플랫폼 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다른 기업과 마찰이 발생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쿠팡처럼 적이 많은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CJ그룹과 갈등이 대표적이다. CJ제일제당은 쿠팡과 납품 단가를 두고 갈등을 빚었다. 2022년 말부터 햇반과 비비고 등 주요 상품을 쿠팡에 납품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쿠팡이 CJ올리브영을 공정위에 신고하기도 했다. CJ올리브영이 쿠팡 뷰티 시장 진출을 막기 위해 중소 납품 업체와 쿠팡 사이 거래를 막았다는 주장. 지난해 8월에는 ‘택배 없는 날’ 참여를 두고 CJ대한통운과 쿠팡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공정위 처분과 관련해 쿠팡이 발표한 입장문을 놓고도 말이 많다. 마켓컬리, 배달의민족, 쓱닷컴, 롯데 등 경쟁 기업 이름과 PB 상품 진열 사례를 직접 언급하며 쿠팡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주장을 펼친 탓이다. 대형마트의 매대 진열과 이커머스 검색창 사진을 자료에 첨부하기도 했다. 쿠팡 PB 상품인 탐사수와 곰곰 된장 가격 비교군으로 제주 삼다수와 청정원 된장 가격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 대형마트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유통 채널과 이커머스는 고객 쇼핑 행태가 완전히 다른데도 불구하고 다른 기업 사례를 무리하게 끌어들여 자기방어 논리로 썼다”며 “경쟁사를 직접 언급해 자료를 작성하는 건 정말 이례적이다. 상도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쿠팡은 주요 오픈마켓 최대 판매 수수료를 비교하며 11번가와 G마켓·옥션 등을 언급했다. 쿠팡 최대 판매 수수료는 10.9%지만 11번가는 20%, G마켓·옥션은 15% 수준이라며 타 이커머스 업체 판매 수수료를 명시했다. 11번가는 즉각 반발했다. 쿠팡에 유리한 ‘최대 판매 수수료’를 비교 대상으로 내세운 것이 고객에게 오해 소지를 줄 수 있다며 공정위에 쿠팡을 신고하기까지 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국내 유통 시장에서 갖는 영향력이 워낙 강한 만큼 견제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은 맞다”면서도 “다만 자사 해명 자료에 타사 사례를 활용하는 등 불필요한 분쟁거리를 만들고 있다. ‘반쿠팡 연대’ 같은 유통업계 전례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 데는 쿠팡이 스스로 자초한 부분도 많다”고 꼬집었다.
3. 믿었던 소비자, 너마저
“로켓배송 중단, 협박이냐” 비판
쿠팡은 ‘친(親)소비자’ 정책으로 유명한 플랫폼이다. 초저가 제품, 빠른 무료 배송, 쉬운 결제 시스템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반송까지. 정부와 여러 기업이 쿠팡을 비난할 때도 소비자 여론만은 쿠팡 편에 섰던 때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 된다. 올해 4월 유료 멤버십 요금을 4990원에서 7890원으로 대폭 인상하면서 불씨가 지펴졌다. 멤버십 해지를 고민하는 소비자 중심으로 불만도 터져나왔다. 와우 멤버십 중도해지를 방해하는 단계가 너무 많고 중도해지 시 남은 요금이 환불되지 않는다는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여기에 최근 공정위 과징금 처분과 관련된 잇따른 입장문 발표도 피로감을 늘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공정위가 상품 추천을 금지한다면 더 이상 지금 같은 로켓배송 서비스는 불가능하다”라는 대목이 여론 악화에 기름을 끼얹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댓글창에서는 “로켓배송과 소비자를 인질로 삼느냐” “쿠팡 없으면 대한민국이 안 돌아가는 줄 아는 것 같다” 등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를 이룬다.
쿠팡 관계자는 “소비자 여론을 인식하고는 있지만 그만큼 쿠팡도 절실하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상품 추천은 쿠팡 사업을 지탱하는 핵심”이라며 “지금처럼 양질의 저가 제품을 소비자에게 계속 선보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5호 (2024.06.26~2024.07.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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