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160엔' 38년만에 최저…수퍼달러·수퍼엔저에 원화 비상
엔화가치가 심리적 저항선인 ‘1달러=160엔’을 뚫었다. 38년여 만에 최저치다. 시장에선 일본 정부가 미국 국채를 팔아 ‘환율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다는 우려에 미국 국채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채권값 하락). 수퍼엔저와 수퍼달러(달러 강세) 쌍두마차에 원화값은 달러당 1400원대를 위협한다.
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한국시간으로 이날 오후 3시 30분 기준 엔화값은 달러당 160.35엔에 거래됐다. 전날 밤 달러당 160엔선을 뚫더니 160.81엔까지 곤두박질쳤다. 1986년 12월 이후 달러대비 엔화값이 가장 낮다.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은 27일 오전 “엔화 약세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필요하면 적절하게 조치하겠다”고 했다. 일부 정부가 재차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엔화가치는 160엔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때 160엔까지 밀려났다가 일본 당국의 개입으로 곧바로 156엔대로 회복한 지난 4월 말과 상황이 다르다.
수퍼달러와 수퍼엔저 협공에 아시아 통화가치도 맥을 못춘다. 27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달러대비 원화를 비롯해 중국 위안, 인도 루피 등 아시아 9개 통화가치를 반영한 아시아 달러 인덱스는 89.98로 2022년 11월 3일(89.09) 이후 1년 7개월 만에 가장 낮다. 원화값은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장 초반 달러당 1394원으로 밀렸다가 달러 차익실현 움직임에 전날보다 2.9원 오른(환율 하락) 1385.8원에 장을 마감했다. 연초와 비교하면 종가기준으로 반년 새 6.6% 하락했다.
엔화가치가 달러대비 추락하는 건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차별화가 원인이다. 미국은 ‘탄탄한 경제’에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지연되면서 금리가 1년째 5%대다. 일본은 지난 3월 17년 만에 마이너스 금리에서 벗어났지만, 추가 긴축엔 신중하다. 자금줄을 과도하게 죄었다간 어렵게 살려낸 경기 회복의 불씨(성장률)가 꺼질 수 있어서다. 최근 투자자들이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움직임이 거세진 이유다.
일본 정부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통화정책 변화를 꾀하거나 미국 국채 매각 등으로 환율 방어선을 견고하게 구축하는 방법이다. 상당수 시장 전문가는 일본은행(BOJ)이 오는 7월 조기 긴축에 나서는 방법을 택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일본 외환 당국의 시장개입 효과가 제한적이어서다. 일본은 지난 4월 26일부터 5월 29일까지 약 한 달간 9조7885억엔(약 85조원) 규모의 시장 개입을 했다. 일본이 보유한 미국 국채 등 달러화 자산 매각으로 엔화값은 150엔 초반대로 진정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 효과는 두 달 만에 사라졌다. 블룸버그는 25일(현지시간) “(엔화를 팔고 달러에 베팅하는) 투자자는 현재 일본 정부의 개입 가능성에 동요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또 일본 정부도 미국의 환율조작국(환율심층대상국) 지정 우려에 보다 적극적인 개입도 쉽지 않다. 미국 재무부는 이달 환율보고서에 일본을 환율 관찰대상국 목록에 추가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 BOJ가 오는 7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 긴축조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고 예상했다.
몸집을 키우는 수퍼엔저와 수퍼달러에 국내외 투자자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수퍼엔저가 미국 국채금리 상승(채권값 하락)을 자극하는 요인 중 하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불씨는 세계에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한 일본이 환율 방어를 위해 미국 국채를 매도할 수 있다는 우려다. WSJ에 따르면 글로벌 국채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는 26일(현지시간) 연 4.334%로 전 거래일 대비 0.082%포인트 올랐다.
원화값이 다시 달러당 1400원대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전망도 국내 경제에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 지속적인 수입 물가 상승은 국내 소비자 물가를 밀어 올릴 수 있다. 연초이후 누적된 고환율(원화대비 달러 강세)은 건설자재 등 원자재 수입하는 중견ㆍ중소기업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진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추가적으로 엔화 약세가 나타나면 원화값은 달러당 1400원에 안착할 수 있다”며 “특히 일본 정부가 엔화 방어를 위해 공격적인 긴축 조치에 나서면 (엔화를 빌려 투자한) 엔 캐리트레이드 청산 등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도 “미국의 피벗(통화정책 변화)이 지연될수록 (금리 격차에)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이동할 우려가 있다”며 “한국은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박도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직업 7번 바꿔서 부자 됐다…수백억 모은 그의 전략 | 중앙일보
- 골프공에 머리 맞은 60대, 결국 숨졌다…이천 골프장 발칵 | 중앙일보
- 연평도 소나무에 박힌 채…해병대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 중앙일보
- "사망 확률 4% 더 높다"…'현대인 필수품' 종합비타민 충격 결과 | 중앙일보
- 엉덩이 만지자 사타구니 '퍽'…日 여행 중 봉변당한 대만 미녀 결국 | 중앙일보
- 손웅정 "손흥민 이미지 값이라며 수억원 요구…돈 아깝냐더라" | 중앙일보
- "형, 이럴려고 5선 했어?"…86 푸시에도 불출마 기운 이인영, 왜 [who&why] | 중앙일보
- 원희룡 "배신의 정치 성공 못해" 한동훈 언급 땐 어조 세졌다 [여당 당권주자 인터뷰②] | 중앙
- [단독] 화성 아리셀 거짓말 정황…불법파견 의심공고 13번 냈다 | 중앙일보
- 300만원 든 지갑 주웠다 인생역전…'돈쭐' 맞은 네덜란드 노숙인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