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빼돌린 가족 처벌된다’…헌재, 71년 만 친족상도례 중단
가족 간에는 재산을 훔치거나 빼돌리더라도 처벌을 면제해줬던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가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27일 나왔다. 1953년 제정 형법 이래 71년간 유지됐던 친족상도례 조항은 이날 곧바로 적용이 중단됐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서울 종로 헌재 대심판정에서 형법 328조 1항에 대한 위헌 확인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법 조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사이의 재산범죄(절도·사기·공갈·횡령·배임·장물죄)에 대해 형을 면제한다는 내용이다.
헌재는 “2025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국회가 개정할 때까지 이 조항 적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결정하면서 이날 곧바로 친족상도례 적용을 중단시켰다. 2025년 말까지 국회가 헌재 결정 취지에 따라 개정 입법을 하지 않으면 2026년 1월 1일부로 조항은 폐지된다. 헌재는 2012년 같은 친족상도례에 대해 5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렸는데 12년 만에 다른 판단을 내렸다.
헌재는 헌법불합치 결정의 이유로 “심판 대상 조항은 형사 피해자가 법관에게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다”며 “입법재량을 명백히 일탈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것으로서 형사 피해자의 재판절차 진술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먼저 지나치게 넓은 친족에게 법을 일률 적용하는 게 문제라고 봤다. 헌재는 “직계혈족이나 배우자는 실질적 유대나 동거 여부와 관계없이 적용되고, 8촌 이내의 혈족이나 4촌 이내 인척은 동거를 요건으로 적용된다. 이처럼 넓은 친족간 관계는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 피해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 된다”고 지적했다.
형법 제정 때만 해도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인적 범위는 지금처럼 넓진 않았다. 1990년 민법 개정으로 친족의 범위가 부계 8촌 이내, 모계 4촌 이내에서 부계·모계 모두 8촌 이내의 혈족과 4촌 이내의 인척으로 확대됐는데 친족상도례에도 그대로 준용됐다. 또 2011년 판례를 통해 ‘배우자’의 의미도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모두의 배우자’로 확대됐다.
아울러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모든 재산범죄에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등 법의 적용 범위가 넓다는 점도 헌법불합치 판단의 근거가 됐다. 이 조항은 사기·공갈, 횡령·배임, 장물죄 등 일반적인 재산 범죄는 물론, 판례를 통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각종 특별법에까지 적용되고 있다. 특정경제범죄법상 이득액이 50억원 넘는 업무상 횡령은 최대 무기징역에 처하는 중범죄임에도 친족이란 이유로 처벌을 받지 않는 셈이다.
헌재는 이런 적용 범위를 외국과도 비교했다. “로마법 전통에 따라 친족상도례 규정을 둔 대륙법계 국가들의 입법례를 살펴보더라도 광범위한 친족의 재산범죄에 대해 필요적으로 형을 면제한 경우는 많지 않으며 그 경우에도 대상 친족 및 재산범죄의 범위 등이 우리 형법이 규정한 것보다 훨씬 좁다”는 설명이다.
헌재는 아울러 “가족과 친족 사회 내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다”는 점도 헌법불합치 이유로 밝혔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도 유산을 가로챈 삼촌을 고소(준사기·횡령 혐의)한 장애인 A씨와 파킨슨병을 앓는 부친을 대리해 형제·자매를 고소(횡령 혐의)한 B씨 등이었다. 헌재는 “현행 조항은 위와 같은 사정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법관으로 하여금 형면제 판결을 선고하도록 획일적으로 규정한다”며 “이에 따라 ‘형의 면제’라는 결론이 정해져 있는 재판에서는 형사 피해자의 법원에 대한 적절한 형벌권 행사 요구는 실질적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밝혔다.
헌재는 국회에 2025년 말까지 대체 입법을 요구한 데 데 대해 “위헌성을 제거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선택 가능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란 의견을 냈다. 현행 조항은 위헌이라 당장 적용하면 안 되지만 그 기간 내에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라는 취지다.
헌재는 “경제적 이해를 같이하거나 정서적으로 친밀한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발생하는 용인 가능한 수준의 재산범죄에 대한 형사소추 내지 처벌에 관한 특례의 필요성은 수긍할 수 있다”며 “입법자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헌재는 친족상도례를 구성하는 또 다른 조항인 323조 2항(그외 친족간 재산범죄의 친고죄 조항)에 대해선 합헌 결정을 내렸다. 직계혈족·배우자·동거친족·동거가족을 제외한 친족이 저지른 재산 범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헌재는 “고소를 소추 조건으로 규정하여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국가형벌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한 해당 조항은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 진술권 침해 여부가 문제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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