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갈망과 상실에 정통한 기업들…교회, 구글과 픽사에서 배워라

양민경 2024. 6. 2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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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하는 교회/스콧 코모드 지음/윤종석 옮김/두란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글로벌 빅테크 기업 구글의 핵심 지침은 매출이 아닌 ‘사용자에 늘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이를 충실히 수행한 사례가 스타트업 ‘키홀’ 인수다. 전 구글 임원인 에릭 슈미트와 조너선 로젠버그는 “사용자가 좋아할 기술”이란 이유로 위성사진 업체인 키홀을 인수했다. 인수 8개월 뒤 구글이 출시한 새로운 지도 서비스는 전 세계인의 생활에 혁명을 가져왔다. 구글에 수백만 달러의 수익을 안긴 ‘구글맵’과 ‘구글 어스’ 탄생 배경이다.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 역시 매출을 핵심 가치로 추구하지 않는다. ‘대중의 공감을 자아내는 좋은 영화 제작’을 추구하는 이 회사의 핵심 가치는 ‘솔직함’이다. “좋은 영화를 위해서라면 주저함 없이 진실을 말하는” 이 가치 덕에 픽사는 ‘토이스토리’ ‘인사이드 아웃’ 등의 흥행작을 배출했다.

미국 유명 기업의 혁신과 핵심 가치를 논한 위의 내용은 경영학 교본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풀러신학교 스콧 코모드 교수가 쓴 ‘혁신하는 교회’(두란노)에 등장하는 예화다. 대학에서 ‘휴 디 프리 리더십 개발 석좌교수’란 직함으로 실천신학과 리더십을 강의하는 저자는 급변하는 현실 속 목회 패러다임 전환을 고민하는 목회자를 위해 이 책을 썼다.

독특한 건 교회 혁신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구글 IDEO 픽사 등의 기업 사례를 다수 인용했다는 점이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연구진 등이 이들 기업에서 도출한 ‘혁신 공식’을 교회가 적용할 수 있도록 ‘기독교적 혁신’ 방안으로 가공했다. 구글의 혁신 시도에서 교회가 배울 점(이미지)을 정리해 제시하는 식이다.

교회는 IT기업도 아닌데 왜 자꾸 혁신을 강조할까. “지금의 교회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맞게 조정돼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예배·교육·교제 등 현 교회의 기본 요소에 대해 기독교인이 품고 있는 ‘사고 모델’(세상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쓰이는 범주)은 20세기에 형성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세상의 필요에 동떨어지지 않기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불변의 진리를 유지하되 관례에 얽매이지 않는 ‘기독교적 혁신’을 일구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혁신하는 교회’(두란노) 저자 스콧 코모드 미국 풀러신학교 교수는 수강생에게 픽사의 애니메이션 ‘업’의 일부분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일생을 축약한 4분 분량의 영상에서 인간의 갈망과 상실을 찾아보라는 과제를 주기 위해서다. 사진은 해당 영상 속 주인공 부부의 노년 모습. 업 공식 트레일러 영상 캡처

이때 중요한 건 ‘교회’가 아닌 ‘교회가 섬기는 사람’을 위해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적 혁신의 목적은 “당대 사람의 갈망과 상실을 경청해 이들이 겪는 현실 속 영적 의미를 해석하고 복음이 희망인 이유를 전하는 데” 있다. 저자는 미국 교회가 고전하는 이유도 이런 혁신을 하지 않는 데서 온다고 본다. 교인들은 성과의 압박과 실직, 자녀 교육과 건강 등 현실적 문제로 잠 못 이루는 데 목회자들은 그저 “교리나 영적 문제만 다룰 뿐 일상의 제반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교회가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는 ‘의미 창출의 혁신’에 힘쓸 것을 권한다. 랄프 윈터 박사가 1974년 스위스 로잔대회에서 보여준 발상의 전환은 기독교계에서 손꼽히는 ‘의미 창출의 혁신’ 사례다. 당시 로잔대회에 참석한 적잖은 선교사는 “그리스도의 선교 명령은 완수됐으니 세계 선교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윈터 박사는 “‘타문화 선교’는 완수되지 않았다”며 국경 너머 미전도종족을 바라보라고 촉구했다.

2015년 원고를 완성한 저자는 4년 여간 풀러청소년연구소와 함께 교회 100여곳에 이 혁신 모델을 제공했다. IT기업이 하는 일종의 ‘소프트 론칭’(제한적 출시)를 시도한 셈이다. 이들 사례를 수집해 다시 원고를 손본 뒤 책은 미국에서 2020년 출간됐다.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이 책 속 마지막 혁신 과제는 ‘스마트폰 세대’를 대상으로 한 ‘다음세대 사역’이다. 저자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활성화된 각 대학 온라인 교육에서 교회가 혁신의 단초를 찾을 것을 제안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몸으로 참석하는 것만 예배’라는 기존 인식을 과감히 버릴 것도 주문한다. 다음세대 사역의 혁신을 고민하는 한국교회 역시 숙고해볼 만한 과제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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