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미친여자라 했죠"…수준 미달 배틀, 요즘 국회가 이렇다 [현장에서]
“왜 저한테 미친 여자라고 그러셨어요?”(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난데없는 ‘미친 여자’ 논쟁이 벌어졌다. 강 의원이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에게 “제가 21대 국회에서 대변인으로 활동할 때 저한테 미친 여자라고 그러셨죠”라고 운을 떼면서다.
3년 전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강 의원은 ‘수면 내시경 받으러 온 여성 환자를 전신 마취하고 수차례 성폭행했던 의사 역시 평생 의사여야 한다는 것이냐’는 내용의 논평을 냈고, 임 회장은 “이 ‘미친’ 여자가 전 의사를 지금 ‘살인자, 강도, 성범죄자’로 취급했다”고 비난해 논란을 빚었다. 3년 전 ‘악연’을 끄집어 낸 강 의원은 그 외 임 회장의 과거 막말 사례를 거론한 뒤 “사과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따져 물었고, “헌법상 표현의 자유 영역”이란 임 회장의 답에 어이없단 듯 실소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욕설과 막말을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의협회장의 국회 증언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표현의 자유는 욕설의 자유도 아니고 막말의 자유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날 복지위 회의는 ‘의료계 비상상황 관련 청문회’로 열렸지만, 두 사람의 날선 신경전에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졌다.
한 달여 간의 협상 끝에 22대 국회가 어렵사리 열렸지만 막말과 고성이 오가는 극한 신경전 등으로 얼룩지고 있다. 상임위 활동은 국정 감시와 법안 심사를 진행하는 의정활동의 기본 단위다. 하지만 정작 문을 연 상임위에서는 이와 무관한 튀는 발언과 행동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다.
본래 상임위장에서는 국회의원-정부 관계자가 공수(攻守) 관계지만, 최근에는 여야 입씨름을 바라보며 정작 부처 관계자들은 허공을 쳐다보는 일이 부지기수다.
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이훈기 민주당 의원은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이 MBC를 상대로 민사 소송이 진행 중”이라며 과방위원 사임을 요구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이훈기 의원은) 전과 2범, 노종면 3범, 이정헌 선거법 위반, 이재명은 이미 4범에 재판 중”이라고 민주당 소속 과방위원의 전과를 줄줄이 읊으며 맞받아쳤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현안질의 대상은 동료 의원이 아니다. 마이크 끄세요”라며 제지하자, 김 의원은 “민주당이 이재명을 아버지라 부르던데, 조금 있으면 최 위원장님이 어머니로 등장하겠다”고 비꼬는 장면도 포착됐다.
국회 상원이라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선 ‘봉숭아 학당’ 같은 모습이 연출됐다. 25일 민주당 소속 정청래 법사위원장과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학벌 배틀’ ‘이름 맞히기’ 등의 신경전을 벌여서다. 여당 간사 선임을 요구하며 위원장석에서 항의하는 유 의원에게 정 위원장이 “국회법이 그렇다. 공부를 좀 하라”고 하자, 유 의원은 “공부는 내가 더 잘했을 거 같은데”라며 실랑이를 이어갔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고등학교 때 공부 잘했던 걸 환갑이 넘어서 자랑하냐, 한심하다”며 조롱을 보탰다. 이어 정 위원장과 유 의원이 “의원님 성함이 어떻게 되느냐 전 정청래” “전 유상범”이라며 유치한 기싸움을 이어가자 장내에선 여야 할 것 없이 킥킥대는 소리가 울렸다.
21일 열린 채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도 정 위원장이 정부 고위관계자에 퇴장을 지시하자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퇴장하면 더 좋은 거 아냐? 쉬고”라며 “한 발 들고, 두 손 들고 서 있으라고 해요 하하하”라고 웃기도 했다. 그러면서 정 위원장은 이날 정부 관계자들에게 눈 부릅뜨고 “그렇게 국회가 우스워요? 그렇게 국민이 우스워요?”라고 다그쳤다.
여야는 최근 “민생을 살리겠다”는 말을 기계처럼 반복하고 있다. 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27일 회의에서 “본회의에서 원 구성 절차가 마무리되는 만큼, 이제라도 민생 입법에 매진해야 한다”고 밝혔고, 비슷한 시각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도 당 회의에서 “총선 민심을 받들어 제대로, 똑바로 일해야 할 시간이다. 국민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지도나 높여 보려고 수준 떨어지는 행태만 보이는데, 일하는 국회라는 구호에 누가 공감하겠나”(민주당 재선 의원)라는 한탄이 나오는 게 지금 국회 현주소다.
강보현 기자 kang.bo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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