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편에 서지 않도록 정부와 진화위 혼쭐 내야"

장재완 2024. 6. 27.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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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제25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

[장재완 기자]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제25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27일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개최됐다. 사진은 헌화 분향을 하며 제단에 봉투를 올리고 있는 정정애(84)씨.
ⓒ 오마이뉴스 장재완
 
"아버지가 여기서 돌아가셨다고 자식들에게 말도 못 했어요. 혹여나 피해가 갈까 봐."

팔순의 노모는 아버지의 제사상에 봉투 하나를 올려놓았다. '과일이라도 하나 올려야 한다'며 정성스레 아버지의 이름과 '장녀 정정애'라고 자신의 이름을 적어 올렸다.

정정애(84)씨는 1948년 7살 나이에 아버지와 헤어졌다. 여수에 살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는 여순사건 관련자라며 경찰에 끌려가 1950년 6월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대전형무소 재소자들과 함께 처형됐다.

그 뒤 그녀는 자식들이 빨갱이 새끼라는 오명으로 피해를 입을까 봐 아버지의 이름조차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어디 묻혀 계시는지 알기만 하면 내 죽기 전에 찾아가서 술 한 잔 올리고 싶다'던 그녀는 70여 년이 지나서야 아버지가 묻혀있는 골짜기를 찾아냈다.

'아버지가 많이 그리우셨느냐'는 질문에 "아버지 없이 산 고생은 정말 말로 다 못해요"라고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억울함과 그리움을 가슴에 묻고 산 70여 년. 이제야 아들, 딸과 함께 위령제를 찾아 아버지 이름 앞에 엎드려 눈물로써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정씨의 아버지와 같이 여순사건 또는 제주 4·3사건 관련자, 정치범 등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등이 1950년 6월 28일부터 20여 일 동안 이승만 정부의 군·경에 의해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처형됐다. 그 규모는 최소 3000명에서 최대 7000명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무고하게 학살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제25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27일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개최됐다.

대전기독교회협의회 사회선교위원회와 천주교대전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원불교 대전충남교구 등 3대 종단의 종교 제례 이후 시작된 이날 위령제는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묵념과 유족대표 인사, 헌작, 추도사, 추모공연, 퍼포먼스,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정부와 진실화해위, 혼쭐 내 제정신 차리게 해야"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제25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27일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개최됐다. 사진은 유족대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전미경 (사)대전산내골령골피학살자유족회장.
ⓒ 오마이뉴스 장재완
 
유족대표 인사에 나선 전미경 (사)대전산내골령골피학살자유족회장은 "일 년 만에 다시 뵙게 되어 반갑다"고 인사를 건넨 뒤, "지난해 위령제에서 저는 '내년이면 골령골 평화공원이 착공이 되기를 바란다'로 말씀드렸는데, 여전히 일 년 전과 같은 모습이다. 게다가 올해 착공도 미지수다"라고 늦어지고 있는 평화공원 조성 사업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골령골 평화공원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가 전국의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시설 조성을 위해 추진한 사업이다. 공모를 통해 대전 낭월동 골령골 부지가 대상지로 선정됐으며, 2020년까지 추모관과 인권전시관, 상징물, 조형물 등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하면서 건축비 상승 등으로 사업비가 401억 원에서 591억 원으로 뛰어 500억 원 이상 타당성 재검토 대상 사업이 됐고, 지난해 3월부터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용역을 진행 중이다.

전 회장은 또 "유가족에게 모욕과 상처를 주는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를 혼쭐 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 조사 기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지만, 진실 규명 신청자들에 대한 사건 처리율은 60%에 불과하고, 그 중 진실규명율도 31%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위원장이 유족들에게 '전시에는 재판 없이 죽일 수 있다'는 막말을 내뱉어 유가족에게 모욕과 상처를 줬다고 비판하면서 "정부와 진실화해위원회가 살인마 이승만의 편이 아닌 피학살자와 유가족 편에서 일할 수 있도록 혼쭐을 내 제정신을 차리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추도사가 이어졌다. 김복영 (사)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전국유족회장은 "부모 형제를 잃은 지 74년이란 많은 세월이 흘렀어도 늘 슬픔과 분노가 우리의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며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은 과거에 잘못된 사건에 대하여 한 점의 오점 없이 샅샅이 밝혀 유족들이 여생을 조금이라도 편안히 살 수 있게 해주셔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장우 대전시장, 올해는 추도사 보내... "산내평화공원, 정성 다해 조성하겠다"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제25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27일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개최됐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해외일정으로 이날 위령제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이장우 대전시장도 추도사를 보내 마음을 전했다. 지난해에는 추도사 보내기를 거부했던 이 시장은 "현재 조성중인 산내평화공원은 과거의 과오에 대한 성찰과 다짐을 미래 세대로까지 지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될 것"이라며 "평화와 인권의 지고한 가치가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는 골령골의 가슴 아픈 별칭 그 위에 놓일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조성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위령제에 직접 참석해 추도사에 나선 박희조 동구청장은 "평화공원 조성과 관련, 지역주민과 단체 등 각계에서 협조하여 주신 덕에 토지 및 지장물 보상을 100% 완료한 상태"라며 "현재는 사업비 증액에 따른 타당성재조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어 내년부터는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곳이 화해와 상생을 위한 역사공원으로 조성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추도사에 이어 배우 민윤경, 김윤아 씨의 특별공연이 펼쳐졌다. 긴장된 음악 속에서 두 배우는 춤을 추듯 쓰러졌다가 일어나고, 다시 서로를 감싸 안았다. 이들의 이날 공연은 학살당한 이들의 억울한 넋들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받고 영면에 이르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위령제의 마지막은 참석자 모두가 제단 위에 흰국화 한송이씩을 올리고 분향을 하는 추모의 시간으로 진행됐다. 제단 앞에 쓰여 있는 아버지의 이름을 찾아 확인하고 눈물을 터트리는 유족, 제단에 큰 절로 예를 갖추는 유족, 정성스럽게 싸 온 음식을 올려놓는 유족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가슴에 품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민간인 희생자 발굴 유해, 화장 반대 서명 운동도 진행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제25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27일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개최됐다. 사진은 헌화 분향을 하며 오열하고 있는 산내학살사건 희생자 유족.
ⓒ 오마이뉴스 장재완
 
한편, 이날 위령제에서는 '민간인 학살 희생자 발굴 유해 화장 반대 서명 운동'도 진행됐다. 현재 전국 각지에서 발굴된 민간인 희생자 유해 4000여 구가 세종 추모의집에 임시 안치되어 있다. 산내 골령골 평화공원이 조성되면 이곳으로 그 유해들을 이전할 계획인데, 윤석열 정부는 유해들을 이전할 때 화장하여 지역별로 합동 안장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유족들은 유해 화장은 민간인 학살의 증거를 지우는 일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또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자 하는 유족들의 희망을 꺾는 것이라며 반드시 모든 유해가 발굴된 상태 그대로 골령골 평화공원에 안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제25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27일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개최됐다. 사진은 배우 민윤경, 김윤아 씨의 추모공연 장면.
ⓒ 오마이뉴스 장재완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제25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27일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개최됐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대전산내골령골학살사건 제74주기 제25차 피학살자 합동위령제'가 27일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개최됐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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