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가로막은 ‘법’… 고양이 폐사, 원인 규명 어려운 이유 [멍멍냥냥]

이해림 기자 2024. 6. 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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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폐사를 둘러싼 의문]③·끝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4월 11일 대한수의사회에서 원인불명의 신경근육병증으로 고양이들이 폐사하고 있다고 밝힌지 어언 두 달째다. 수의학 전문가, 동물보호단체, 정부 관계자, 산업 관계자로 꾸려진 위원회가 조사를 이어나가고 있으나 원인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현대과학의 한계’라는 불가피한 요인 말고,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요인 중 원인 규명을 가로막은 것들이 있을까. 취재원들은 피해 현황 파악 미비, 법에 가로막힌 조사, 역학조사 가이드라인 부재 등을 꼽았다.

①피해 사례 집계 주체 분산
피해 현황이 파악되고는 있으나 그 주체가 분산돼있다. 피해 규모가 과소평가됐는지 과대평가됐는지 정확한 규모 산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피해 사례를 수집하는 주체는 크게 ▲대한수의사회 ▲사단법인 묘연, 동물보호단체 라이프다. 대한수의사회 측은 자체 집계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묘연과 라이프는 라이프가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매주 피해 고양이와 사망 고양이 수를 공개하고 있다. 대한수의사회는 일선 동물병원에서, 라이프·묘연 측은 보호자들에게서 제보를 받는다.

피해 고양이 수 비교를 위해 수치 공유를 부탁했더니, 대한수의사회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집계한 자료를 농림축산식품부에 공유하고 있으나 이를 공개하기는 어렵다”며 “대한수의사회와 동물보호단체가 각자 조사하는 것이다 보니 라이프 측의 자료와 비교하기 용이한 자료는 아니다”라며 거절했다. 라이프 측 역시 공개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치 집계 기준에 대해 문의한 결과, 라이프 관계자는 “보호자가 의심 사례를 제보한다고 무조건 집계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다”며 “동물병원 수의사가 고양이 집단 신경병증 사태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추정한 사례만 가려 받는다. 이를 위해 피해 고양이를 진료한 동물병원에 전화해 크로스체크를 하고, 수의사 소견서를 요청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각자가 상황 파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은 맞다. 동물보호단체·수의학회·사료협회·정부 관계자들이 구성한 피해대책위원회에서 정보가 공유되고도 있다. 그러나 더 체계적인 집계가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피해 의심 사례가 실제 피해 사례인지 아닌지 전문가로서도 명확하게 구분하기가 어려운데다, 이 자료가 현재 국내 사료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충북대 수의대학 민경덕 교수(수의역학)는 “역학적 관점에서는 개별 고양이들이 각각 피해사례라서 그 증상이 나타난 것인지, 아니면 기저질환으로 피해 의심 증상이 나타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물보호단체와 보호자들이 이번 사태 원인으로 지목한 사료를 제조한 A사는 12일 언론사 호소문을 배포해 “파트너사들이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영업상의 유·무형적 손해가 발생해 특정 판매사는 매출의 90% 이상이 감소하는 등 생존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중앙대 동물생명공학과 허선진 교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피해 고양이 현황에 관한 정확한 데이터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②법에 가로막힌 조사
수의사들은 이번 사태를 책임지고 해결해 나갈 컨트롤타워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동물병원협회 오원석 정책연구위원장(오원석황금동물병원 원장)은 지난 5월 ‘펫푸드 제도 개선 및 선진화 모색을 위한 정책포럼’에서​ “이번 원인불명의 고양이 신경·근육병증 사례와 같은 이상 사례는 간헐적으로 계속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사료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 검사하고 조치를 취할 컨트롤타워가 아직 없다”며 “과거에 사료 속 멜라민으로 반려동물 다수가 사망했을 때도 원인이 공식적으로 밝혀지기까지 수년이 걸렸다. 원인을 규명하고 대처를 주도하기 위한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로서도 적극적 대응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 사료관리법 제24조는 사료 시장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경우를 다음과 같이 한정한다. ▲인체 또는 동물 등에 해로운 유해물질이 허용기준 이상으로 포함되거나 잔류한 경우 ▲동물용의약품이 허용기준 이상으로 잔류하는 경우 ▲인체 또는 동물 등의 질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에 오염되었거나 현저히 부패 또는 변질돼 사료로 사용될 수 없는 경우 ▲동물등의 건강유지나 성장에 지장을 초래해 축산물의 생산을 현저하게 저해하는 성분이 든 경우 ▲성분등록을 하지 않고 제조 또는 수입된 경우 ▲수입신고를 하지 않고 수입된 경우 ▲인체 또는 동물 등의 질병 원인이 우려돼 사료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농림축산식품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한 성분이 든 경우 ▲사료의 성분이 성분등록된 사항과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상으로 차이가 나는 경우 등이다. 이 조건 중 하나라도 만족해야 정부가 사료 제조업자에게 사료를 회수·폐기하도록 하고, 그 사실을 국민에 공표할 수 있다.

이번에 도마 위에 오른 사료들은 이 기준을 하나도 충족하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고양이 사망과 관련해 검사를 의뢰받은 사료 총 30건과 유통 중인 관련 사료 20여 건에 ▲유해물질(78종) ▲바이러스(7종) ▲기생충(2종) ▲세균(2종)에 대한 검사를 수행한 결과 기준치 적합·음성·불검출 등으로 판정됐다고 밝혔다. 사료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는 유해물질 910종과 사망 간 인과관계가 피해 고양이 부검에서 확인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동물보호단체와 보호자들은 정부가 문제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사료를 회수하거나 판매 중지할 것을 요구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라고 법을 어길 순 없어서다. 헬스조선 취재 결과, 일부 사료 업체가 의혹 제기 이후 사료 판매를 중단했으나 이는 정부의 요청이 아닌 자발적 결정에 의한 것이었다.

정부가 나서서 피해 사례를 적극 조사하기도 어렵다. 부검부터가 난관이다. 피해가 의심된 폐사 고양이의 사체를 정부가 강제로 회수할 수 없다. 현행 민법 제98조는 유체물,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물건’이라 정의한다. 동물도 여기 속한다. 동물이 누군가의 ‘재산’이자 ‘소유물’이라면 동물 학대자에게서 피학대 동물을 제대로 격리할 수조차 없다. 5일간의 지방자치단체 보호 격리 기간이 지난 후, 학대자(소유자)가 사육계획서를 제출하며 반환을 요구하면 동물을 되돌려줘야 한다. 살아있는 동물에서조차 보호자 소유권이 강하니, 죽은 동물은 부검을 위해 회수를 의무화할 명분이 더더욱 없다. 죽음으로써 물건에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보호자가 자발적으로 의뢰한 건에 대해서만 부검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가 부검을 완료한 고양이는 10두에 불과하다.

③역학조사 가이드라인 부재
이런 사태가 또 발생했을 때 정부가 적극적 해결에 나설 수 있으려면 민법이 개정돼야 한다. 동물이 민법상 물건인 이상, 동물보호법이 있어도 ‘학대 방지 등 특별 취급이 필요한 물건’ 정도의 지위에 머무른다.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국회의원은 이와 관련해 민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법 제98조의2(동물의 법적 지위)를 신설해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 골자다. 수의사 면허를 보유한 동물과법 법률사무소 안소영 변호사는 “민법이 개정안대로 바뀐다면, 동물 집단 폐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생명 보호라는 명목으로 적극적인 조치에 나설 길이 열린다”며 “공공복리와 연계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 발생했을 때도 정부가 더 원활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근거 없는 의혹 발생을 경계하고 소비자 불안을 불식시키려면 투명한 정보 공개도 필요하다. 민경덕 교수는 “메르스 사태에서 확인했듯이, 낯선 질병에서 오는 국민의 의심과 불안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와 산업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는 투명한 정보공개”라며 “인과성이 입증되지 않았으나 피해 의심 동물들이 있을 땐, 조사 진행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을 낱낱이 공개해 불안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질병에 치중된 동물 역학조사 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민경덕 교수는 “현재 동물에 대한 역학조사는 구제역, 조류 인플루엔자, 아프리카 돼지열병 등 재난형 질병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며 “그러나 이번 사태와 같이 사료에 문제가 제기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므로 관련 사례가 발생했을 때의 역학조사 주체, 가이드라인 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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