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여기가 천국” 경증치매노인 보금자리 ‘기억학교’ 가보니

김동규 2024. 6. 2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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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기억의 안식처를 찾아서]
<중> 국내 최초 ‘기억학교’ 탐방기
삼덕기억학교 어르신들이 지난 17일 대구 중구 시설에서 칠교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날마다 우리에게 양식을 주시는 은혜로우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아멘.”

지난 17일 방문한 대구 중구 삼덕기억학교(원장 이은주).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머니와 할아버지 40여명이 식판을 챙기곤 저마다 식사 기도를 따라 불렀다. 기도가 끝나자 어르신들은 밥 한술을 크게 떠 입에 넣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노인장기요양등급을 받지 못한 경도인지장애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다.

식사 시간이 얼추 흘렀을까. 저마다 식기를 반납한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었다. 몇몇 어르신들은 물리치료실에 들어가 공기압 마사지와 안마의자 등에 몸을 맡기기도 했다.

2014년 정식으로 문을 연 삼덕기억학교는 국내 최초 대구시에서 특화사업으로 운영 중인 ‘기억학교’ 중 1곳으로 삼덕교회(강영롱 목사)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한국장로교복지재단(대표이사 김정호 목사)이 함께 개원한 사회복지시설이다. 기억학교는 경증치매를 앓고 있는 60세 이상 노인을 돌보고 있다. 평일 주간 보호를 비롯해 치매 예방 교육 프로그램, 병원 동행 등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경제 상황이 여의치 않은 어르신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학교는 경도인지장애 어르신들의 특성에 맞춰 정규교과과정을 개발해 매달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구성한다. 어르신들은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조리사 등 전문가의 강의와 함께 음악·미술·원예·요리교실·건강체조 등 다양한 인지 재활 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다.

여느 사회복지시설과 달리 눈길을 끄는 건 예배를 드린다는 점이다. 기억학교는 매주 금요일마다 삼덕교회 목회자와 함께 짧게나마 예배를 드리고 있다.이은주 삼덕기억학교 원장은 “가족이 가장 돌보기 힘들어하는 질병 1위가 치매”라면서 “하지만 어르신들의 삶은 여전히 아름답다. 어르신들이 여생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기 위해 교회와 손잡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비신자인 어르신들도 적지 않게 있어 짤막하게 예배를 드리는데, 되레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삼덕기억학교 관계자와 어르신들이 지난 5월 야외활동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삼덕기억학교 제공

경도인지장애 어르신을 돌본단 취지에 맞게 학교 곳곳엔 세심한 배려가 묻어 있었다. 공간 한가운데에 혈압측정기계를 설치해 건강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고, 자리마다 어르신들의 이름을 적어 인지능력 향상을 돕고 있다. 또 옥상에는 어르신들이 직접 재배할 수 있는 상추와 토마토 등 텃밭을 마련했다.

기자가 방문했던 이 날은 한 달에 한 번씩 진행되는 생일잔치가 있던 날이기도 했다. 5월생인 어르신 4명은 고운 한복을 입고는 기억학교 친우들과 사회복지사의 생일 축하를 받았다. 축하를 받은 어르신들은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어르신들은 “생일이 이렇게 좋은 날인 줄 몰랐다” “학교 열심히 다녀야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진 순서에선 ‘칠교교육’이 진행됐다. 이는 7개의 종잇조각을 남김없이 모두 사용해서 일정 모양을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어르신들은 색종이를 오려 모양에 맞춰 붙이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5분도 채 안 돼 포기하려는 어르신들도 있었지만, 사회복지사들의 응원에 힘입어 모양을 맞췄다.

삼덕기억학교 어르신들이 인지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삼덕기억학교 제공

올해로 10년을 맞이한 기억학교는 어느덧 어르신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정지혜(가명·89) 할머니는 “이곳에 온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주말엔 기억학교가 문을 열지 않기에 항상 평일만 오길 기다린다”며 “심신이 좋아지는 걸 느끼고 있다. 아이들도 좋아하니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지난 4월에 기억학교에 왔다는 박정현(가명·83) 할머니는 “이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하니 외롭지 않고 행복하다”며 “또 매주 금요일마다 목사님이 기도해주는데, 영적인 보살핌을 받는 기분이 들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고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하다”며 “어르신들의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대구=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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