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가혹행위 사망자 1명? 군 사망자 통계의 허점

김도균 2024. 6. 2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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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사망 건수 및 내역' 자료 분석...자살, 원인 따로 분류 안해... 박주민 "시대착오적 통계"

[김도균 기자]

지난 23일 오전 5시께 경기도 화성시 육군 제51사단 영외직할대 소속 A일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 5월말 이 부대에 배치 받은 A일병은 초병 근무 중이었으며, 사망현장에서는 타살 혐의점은 식별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타살 혐의점이 식별되지 않았다"는 표현은 대부분 "자살 사망했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육군 관계자는 "군사경찰이 해당 부대에서 암기 강요 등 내부 부조리를 일부 식별했다"면서 "식별된 사안과 사망의 연관성 여부에 대해서 제반사항과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면밀히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육군에 따르면 암기 강요 같은 병영 부조리와 사망과의 연관성이 명확하지 않아 군사경찰은 해당 사건을 아직 민간 경찰에 이첩하지는 않았다. A일병의 사망에 범죄 혐의가 있다고 판단되면, 개정 군사법원법에 따라 경찰에서 관련 기록을 넘겨받아 수사를 진행하게 된다. 만약 A일병이 '병영 부조리'나 '복무 부적응', '구타 및 사적 제재', '집단 따돌림'에 시달리다 자살 사망했다고 하면 그 죽음은 어떻게 기록될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주민 위원장이 지난 24일 각 군으로부터 제출 받은 '최근 10년간 부대관리훈령 통계기준 각 구분에 따른 사망 건수 및 내역'에서 그 해답을 미리 찾을 수 있다.

이 자료를 <오마이뉴스>가 입수해 들여다 본 결과, 군 당국은 사망에 이르도록 한 원인에 대해서는 따로 분류하지 않고 자살 사망사건은 모두 자살자 통계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 당국, 사망에 이르게 한 원인 따로 분류 안 해
 
 현행 부대관리훈령에 따른 군 사망사고 통계기준
ⓒ 국방부
 
  군 당국은 현행 부대관리훈령에 따라 'I형 사망사고'와 'II형 사망사고'로 구분하고 있는데, I형에는 군기사고(총기강력·폭행치사·일반강력·자살·음주운전)와 안전사고(음주운전 외 교통사고·항공기·화재사고·폭발물·총기오발·추락충격·익사·기타)가 포함된다. 고의성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는 '안전사고'로, 징계나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사건은 '군기사고'로 분류된다.

최근 3년간 군내 I형 사망사고는 2021년 97명, 2022년 90명, 2023년 69명(채 상병 미포함)으로 점차 감소 추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원인 중에는 여전히 자살 사망의 경우가 가장 많았다. 2021년 78명, 2022년 66명, 2023년 58명의 군인이 복무 중 자살 사망으로 삶을 마감했다. 전체 I형 사망 사고에서 자살자 비율은 2021년 80%, 2022년 73%, 2023년 84%로 나타났다.

군기사고 중 군기교육 또는 가혹행위가 사망의 원인이 된 경우는 지난 2014년 육군에서 발생한 1건을 제외하면 지난 10년간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각 군은 밝혔다. 이 1건은 2014년 4월 7일 발생한 육군 28사단 고 윤승주 일병 사건으로, 육군은 사망유형을 '일반강력'으로 분류했다.

군 당국의 통계에 따르면, 윤 일병 사건 이후에는 적어도 구타나 가혹행위가 직접적인 사망으로 이어진 사례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군과 국방부 조사본부는 박주민 위원장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윤 일병 사건 1건을 제외하고는 지난 10년간 군기교육 및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 건수 및 내역은 없다'고 밝혔다. 통계만 놓고 보면 윤 일병 사건이 발생한 2014년 이후 병영문화가 크게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
  
 공군 수사단이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에게 제출한 지난 10년간 I형 사망사고 통계. 2021년 발생한 고 이예람 중사는 자살자 통계로만 잡혀있다.
ⓒ 공군 수사단
지난 2021년 5월 21일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이었던 이예람 중사가 선임 부사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여러 차례 신고했지만, 모두 묵살 당했다. 이후 부대 관계자와 가해자가 신고를 무마하고 회유하려는 시도를 했고, 전출된 부대에선 피해사실이 유포되는 2차 가해까지 일어나자 이 중사는 자살 사망했다.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은 군사법원법 개정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중사는 2021년 한 해 공군에서 자살 사망한 14명 중 한 명으로만 기록됐다.

2021년 8월 12일 해군 제2함대사령부 소속 A중사가 부대 내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지기 전 A중사는 선임 B상사로부터 원치 않는 신체접촉 등 성추행을 당했다고 군사경찰에 신고한 상태였다. 유족들의 증언과 A중사가 남긴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B상사는 성추행 이후에도 A중사를 식사자리에서 불러내 "술을 따르라"고 요구하고, 고의적으로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 2차 가해를 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A중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성추행과 괴롭힘이 있었지만, 그 역시 2021년 해군 자살자 통계 11명에만 포함됐다.

2022년 11월 28일 오후 강원도 인제군 육군 12사단 GOP에서 경계근무를 하던 김아무개 이병이 가슴에 총상을 입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김 이병은 부대전입 10일 만에 GOP 근무에 조기 투입됐지만, 갑자기 투입된 탓에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김 이병에게 선임병들은 "너는 폐급 중의 폐급이다" 등의 폭언을 일삼고, '암기 강요', '협박' 등을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 이병은 스스로를 향해 소총의 방아쇠를 당겨 세상을 떠났다. 김 이병은 그해 육군에서 자살 사망한 47명 중 한 명이었다.

박주민 위원장은 "여전히 군에서는 가혹행위 또는 그와 다를 바 없는 가혹한 군기훈련 등으로 장병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면서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모두 '자살'로 집계하는 군의 시대착오적인 통계를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대로 된 사망 원인을 알아야 비극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만큼 관련 제도 개선에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상미 전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단순히 사망 유형만으로 분류하는 것은 한 군인이 왜 사망에 이르렀는지 그 원인은 드러내지 않는 전근대적 분류방식"라고 지적했다. 한 전 조사관은 "지금처럼 단순 구분되어 있는 자살자 유형을 보다 세분화해야 범죄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한 해 동안 육·해·공군 및 해병대에서 군기사고나 안전사고로 모두 69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각 군 별로는 육군에서 43명, 공군은 16명, 해군이 10명, 해병대 0명(지난해 7월 19일 실종자 수색작전 중 순직한 고 채 상병의 경우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아 통계에 미포함)이 군기사고나 안전사고로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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