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폭발했는데 北 "다탄두시험 성공"…軍 "기만·과장일 뿐"
군 당국이 북한의 사상 첫 다탄두 시험 발사 주장에 대해 “기만과 과장에 불과하다”고 정면 반박했다. 치적 쌓기에 급급한 나머지 고체연료 기반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발사를 무리하게 진행한 뒤 실패로 이어지자 다탄두 시험으로 포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 보도대로라면 ICBM 고도화 해석 가능
북한의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27일 “미사일총국이 26일 미사일 기술력 고도화 목표 달성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개별기동 전투부(탄두) 분리 및 유도조종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며 “중장거리 고체 탄도미사일 1계단 발동기(엔진)를 이용해 최대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개별기동 전투부의 비행특성 측정에 유리한 170∼200㎞ 반경 범위 내에서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분리된 기동전투부들은 설정된 3개의 목표 좌표점들로 정확히 유도됐다”며 “개별기동전투부분리 및 유도조종시험의 목적은 다탄두에 의한 각개표적격파능력을 확보하는데 있다”고 덧붙였다. “미사일에서 분리된 기만체의 효과성도 반항공 목표 발견 탐지기들을 동원하여 검증됐다”고도 강조했다.
전날 오전 동해 상으로 발사했다 공중폭발한 극초음속중거리탄도미사일 추정 발사체가 실은 다탄두(MIRV) 실험이었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다탄두, 그리고 분리된 다탄두의 자세를 제어하고 유도하는 후추진체(PBV) 기술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마지막 단계로 꼽힐 정도로 높은 단계로 볼 수 있다. 하나의 미사일에 여러 핵탄두 또는 위장용 탄두를 실어 목표물 근처까지 보낸 뒤 탄두들을 분리·비행시키는 게 핵심이다. 이 중 하나라도 막지 못하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와 관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21년 1월 다탄두 개별유도 기술과 관련 “연구사업의 마감 단계”라고 주장했지만, 이날 전까지 실제 관련 시험을 공개한 적은 없었다.
軍 “고체연료 극초음속 미사일 두 번째 발사 나섰다가 실패한 듯”
하지만 군 당국은 북한의 보도 내용이 터무니없다는 입장이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어제(26일) 발사한 미사일은 비행 초기 단계에서 폭발했다”며 “북한이 이날 공개한 내용은 기만과 과장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고체연료 기반 극초음속 미사일 성능개량 시험 발사에 나섰다가 실패했다는 게 군 당국의 평가다. 앞서 북한은 지난 4월 김정은 참관 하에 '화성포-16나'형으로 이름 붙인 해당 미사일을 처음 시험발사한 뒤 “고체연료화, 탄두조종화, 핵무기화 실현”을 주장했다. 장기간 보관 및 즉각 발사가 가능한 고체연료 적용, 핵탄두 카트리지인 화산-31형 탑재 등에 성공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군 당국은 당시에도 북한의 관련 기술이 초보적이라는 판단을 고수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두 번째 시험 발사로 성능 개선을 알아보려다 사고가 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낮은 고도·짧은 비행거리, 사진 조작 가능성 등 다탄두 의심 정황 충분
군 당국은 근거로 미사일 궤적을 들었다. 당국자는 “발사 초기 단계부터 레이더와 그 외 탐지자산으로 추적한 결과 미사일의 공중 폭발 형태가 명확했다”며 “파편 분산 형태가 다탄두로 전혀 판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탄두 분리라면 분리 항적이 깔끔해야 하지만, 수십개 구불구불한 항적이 포착된 점도 의구심을 키운다.
비교적 낮은 고도에서 초기 단계에 폭발한 점도 다탄두 시험이 아닐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다탄두 효과성을 검증하려면 미사일이 대기권을 넘어 일정 속도를 확보한 환경이어야 하는데 이번에 이런 특성은 포착되지 않았다.
정상적인 다탄두 시험이라면 엔진 연소를 마치고 최고 고도 600㎞ 이상을 넘긴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방위성은 이번 미사일의 최고 고도를 약 100㎞로 평가했다. 200㎞ 안팎인 비행거리도 다탄두 시험으로 보기엔 지나치게 짧다.
군 당국은 북한이 공개 사진을 조작하면서까지 왜곡에 나섰을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있다. 발사 순간을 담은 사진을 보면 화염 모양은 고체연료이지만, 미사일 동체는 액체연료 기반 ICBM ‘화성-17형’의 모습이다. 고체연료 기반 극초음속 미사일을 쏘는 원본 사진에 화성-17형을 합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오늘 북한이 공개한 것(사진)은 2023년 3월 16일 발사한 화성-17형 액체연료형 ICBM과 유사한 형태”라고 말했다.
치적 쌓기 부담감에 거짓말 했나
군 안팎에선 북한이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조작 행보에 나섰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지난 5월 정찰위성에 이어 이번 공중폭발로 대내외에 망신살이 뻗치자 급히 ‘다탄두 카드’로 만회를 노렸다는 얘기다. 이번 주 예정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앞두고 치적을 부각하려다 계획이 틀어졌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다탄두 기술이나 극초음속 미사일 분야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을 우려는 여전하다. 북한이 “유도조종시험 성공”이라고 주장한 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러 정상회담 후 “북한에 초정밀 무기 지원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한 것과 무관치 않을 수 있다. 이미 관련 기술 협력이 이뤄지고 있는 듯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을 가능성이다. 미사일 전문가인 권용수 국방대 명예교수는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 기술적 조언을 하고 있다는 추정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미·일 첫 정례 다영역 훈련 ‘프리덤 에지’ 실시
합참은 이날 미국, 일본과 27∼29일 제주 남방 공해상에서 3국의 첫 다영역 연합훈련인 '프리덤 에지(Freedom Edge)'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해상 미사일방어, 대잠수함전, 방공전, 수색구조, 해양차단, 사이버방어 등이 훈련 영역이다.
이번 프리덤 에지에는 지난주 주말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한 미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즈벨트함을 비롯해 한국 해군의 이지스구축함인 서애류성룡함, 구축함인 강감찬함, 일본 해상자위대의 이즈스구축함인 아타고함, 구축함 이세함 등이 참가한다. 북·러의 군사 공조 행보에 한·미·일의 대응 태세를 본격 시험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합참 관계자는 "프리덤 에지는 한·미·일이 3국간 상호 운용성을 증진시켜 나가고 한반도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안정을 위해 자유를 수호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은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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