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하면 180보마다 감시카메라…국가정원 망친 '비양심 도둑들'
국가정원·문화재 등 외부에 노출된 공공장소 곳곳이 절도, 시설물 훼손 등 '비양심'에 신음하고 있다. 지자체 등은 폐쇄회로TV(CCTV) 설치 같은 방범 대책을 내놓으면서 비양심 행위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21일 찾은 울산 태화강국가정원. 태화강변을 따라 정원 안으로 들어가자 곳곳에 '훼손 및 채취 금합니다' 'CCTV 확인 후 형사고발 조치예정'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국가정원 만남의광장 인근 자연주의정원(1만8000㎡) 주변에는 180걸음, 약 100m에 한 대꼴로 폐쇄회로(CC)TV 15대가 정원 일대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국가정원 관계자는 "식물 도난 같은 비양심행위로부터국가정원을 지키기 위해 관리자 순찰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린기움에 튤립, 죽순까지 표적
2019년 정부가 지정한 국내 국가정원 두 곳 중 한 곳인 태화강국가정원은 식물 도난 문제가 심각하다. 국가정원 내 아시아 최초 네덜란드 출신 세계적인 정원 디자이너 피트 아우돌프가 2022년 꾸민 자연주의정원 희귀 식물까지 비양심의 표적이다.
지난달 자연주의정원에서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운 색상의 식물 '에린기움' 6점을 누군가 뿌리째 뽑아갔다. 다음날 관리자들이 정원 내에 텅 비어있는 에린기움 구덩이를 발견, 주변 CCTV를 확인했지만 범인을 찾지 못했다. 앞서 4월에는 자연주의정원에 있던 희귀 색상의 튤립 수십 포기가 일주일간 거의 매일 꺾인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국가정원 십리대숲 맹종죽 군락지에선 지난달 죽순 15개가 날카로운 도구로 잘려나간 채 발견됐다. 죽순은 고급 식재료로도 쓰인다고 한다. 태화강국가정원 측은 "지난해 7월 자연주의정원에서 꽃이 한창 피던 풀협죽 7점이 사라졌고, 보라색 꽃을 피우는 여름 국화 스케토시아도 사라졌다. 같은 해 5월엔 누군가가 죽순 3개를 정원에서 잘라 가져 가다가 행인 신고로 붙잡히기도 했다"고 전했다.
시설물 훼손 사례도 있었는데, 2021년 9월 국가정원에 우물 형태 설치 작품에서 도르래가 도난당했다. 비슷한 시기 국가정원 곳곳에 설치된 조명 수십 개가 설치된 지 한 달여 만에 파손돼 울산시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했다.
태화강국가정원은 개방된 구조여서 비양심 행위의 표적이 되기 쉽다고 한다. 태화강국가정원은 순천만국가정원처럼 매표소를 통한 출입구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강변을 따라 사방이 뚫린 개방형이다. 그렇다 보니 CCTV나 관리자 순찰만으로 모든 곳을 감시하기 어렵다. 국가정원 면적은 축구장 117배 크기인 84ha다.
울산시는 다음 달 태화강국가정원 주변에 총 6200만원을 들여 CCTV 12대를 추가 설치하기로 했다. CCTV 한대 값은 120만원 정도라고 한다. 울산시 관계자는 "사각지대 없이 촘촘하게 국가정원을 감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나무에 '낙서금지'
국가정원 등에서 불법으로 식물을 채취하거나 훼손하는 행위는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서 금지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366조(재물 손괴 등) 및 제329조(공공재 절도)에 따라 강력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딸기 도둑에 꿀 도둑까지
지자체들은 농작물 도둑을 막기 위해 CCTV를 늘리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경남 김해시다. 최근 김해시는 수출용 딸기 390㎏(780만원 상당)이 사라진 한림면 등 지역 딸기농장 5곳에 CCTV를 여러 대 설치했다. 충북 제천시에선 야산 잣나무 열매나 밭작물을 지키기 위해 경찰이 직접 이동형 CCTV를 운영한다. 강원 홍천군 한 농민은 꿀 수확철 벌통 절도가 기승을 부리자, 위치 추적 장치인 GPS를 설치해 꿀 도둑을 붙잡기도 했다.
방수진 전남 순천시 정원운영과장은 "관람객 등이 건전한 양심에 따라 관련 법규를 지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꺾지 마시오' 등 상투적인 팻말보다는 '예쁜 꽃을 눈으로만 봐주세요' 같은 감성을 자극하는 팻말을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윤호·황희규·김민주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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