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 들은 北 20대, 공개처형"…'아빠·오빠·쌤' 말투도 처벌

박현주 2024. 6. 2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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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황해남도의 한 광산에서 공개처형을 봤습니다. 처형장에서 재판관으로 추측되는 사람이 '괴뢰(남한) 놈들의 노래 70곡과 영화 3편을 보다가 체포됐다'고 읊었습니다. '심문 과정에서 7명에게 유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으로 건너온 한 탈북민은 북한 당국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 제정)을 근거로 22세 농장원을 처형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법 시행 이후로는 (남한 드라마·영화를) 시청만 해도 교화소에 가고 이를 최초로 들여온 사람은 무조건 총살"이라면서다. 통일부는 이처럼 북한이 한국 문화를 비롯한 외부 문물을 접한 주민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실태를 27일 발간한 '2024 북한 인권보고서'를 통해 공개했다.
27일 통일부가 발간한 2024 북한인권보고서. 통일부.


흰색 드레스·선글라스도 '반동사상'


북한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을 통해 주민의 외부 문물 접촉과 한류 확산을 통제하려 하는 것은 이미 알려졌지만, 이로 인해 실제 공개 처형까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 정부 보고서를 통해 드러난 건 처음이다.

통일부 조사에 응한 또 다른 탈북민은 "(북한의) 방송 같은 곳에서도 불순 녹화물 유포, 괴뢰말 찌꺼기(남한 말), (청바지 등) 괴뢰 문화 옷차림, 정치적 발언 등 사유로 적발돼 총살형, 노동교화형 등에 처한다고 공개한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보고서에 다 싣지 않았지만 반동문화사상배격법에 의해 처형이 이뤄졌다는 증언은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태원 클래스', '김 비서가 왜 그럴까', '사랑의 불시착' 등 한국 드라마를 북한에서 봤다는 증언이 수집됐다"고 덧붙였다.

통일부에 따르면 탈북민들은 북한 당국에 의해 '반동사상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 경우로 ▶결혼식에서 신랑이 신부를 업거나 신부가 흰색 드레스를 입는 행위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행위 ▶와인 잔에 와인을 마시는 행위 ▶여성이 장신구를 여러 개 하는 행위 ▶성(姓)을 ‘리(李)’가 아닌 ‘이’로 표기 등을 꼽았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본인이 공개 석상에서 선글라스를 자주 착용하면서 주민들에게만 이를 '반동 사상'으로 처벌하는 것도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은은 지난 19일 방북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환영 연회에서 레드 와인을 와인잔에 따라 건배하기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딸 김주애와 함께 항공절을 맞아 공군사령부 등을 방문한 모습. 김정은과 김주애는 모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지난 19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을 환영하며 개최한 연회. 김정은과 푸틴이 레드와인을 와인잔에 따라 건배하는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북한은 이와 함께 지난해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해 주민들의 말투도 엄격히 통제하기 시작했다. 한 탈북민은 "단속원들이 손전화기(휴대전화)를 다 뒤져봤다"며 "주소록에 ‘아빠’라고 쓰면 우리식(북한식)이 아니라고 단속하고 선생님도 ‘쌤’이라고 쓰면 단속을 한다"고 전했다. 통일부는 "혈육 관계가 아닌 사이에 ‘오빠’라고 부르는 것, 직무 뒤에 ‘님’을 붙여 부르는 것 등은 남한식 표현으로 처벌될 수 있다고 법령에 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과 함께 주민 인권을 옥죄는 '3대 악법'으로 꼽히는 '청년교양보장법' 또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외부 정보에 대한 공유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 2021년 제정됐다. 한 탈북민은 "(2021년부터 2023년까지) 길거리에서도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작위로 세우고 몸수색을 했다"며 "주로 대상이 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24 통일부 북한인권홍보대사 위촉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모습. 뉴스1.


"南 드라마 보면 총살"


이날 보고서 발간 언론설명회에는 지난해 10월 목선을 타고 동해 상으로 귀순한 탈북민 A 씨도 자리했다. A 씨는 기자들과 만나 "남북 사이가 급격하게 나빠지니까 기본적으로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면 무조건 총살"이라며 "가망 없는 나라에서 굳이 이렇게 통제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A 씨는 "코로나 19 이후 (북한) 경제가 바닥인 게 다 알려졌고 핵을 생산한다고 하지만 우리 일상생활에서 쓸 수 있는 용품도 생산 안 하고 무엇을 했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민들은) 겉으로는 '김정은 만세' 하지만 집 안에서는 (우상화 물품을) 뭉개고 그런다"고도 전했다.

김선진 북한인권기록센터장이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4 통일부 북한인권보고서 발간 브리핑을 하는 모습. 뉴스1.


A 씨는 김정은의 딸 주애에 대해서도 "핵 개발 (현장) 이런 데 자꾸 나오길래 '왜 어린애가 저런 데 막 나오지'라는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주애 후계자설과 관련해선 "'여자는 이해 못 하지'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북한 수도 평양의 북쪽에 새로운 거리인 '전위거리'가 완공돼 지난달 1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주애가 준공식에 참석한 모습. 조선중앙TV. 연합뉴스.


외화 벌려다 퍼진 마약…"당국 손 놓아"


이날 공개된 보고서에는 북한 주민들의 일상화된 마약 사용 실태도 담겨 눈길을 끌었다. 한 탈북민은 "(2017년에는) '함흥에는 코 달린 사람은 얼음(빙두, 필로폰)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북한에서는 마약을 많이 한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탈북민은 "(2017년에는) 치료 약을 구하기 어려워서 모든 병 치료에 아편이나 빙두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통일부는 "북한 사회에 마약이 널리 퍼지게 만든 근본 원인은 2000년대 중반부터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생산된 빙두 등 북한 당국의 수출용 마약제조였다"며 "다만 이후 주민 인식 개선과 치료를 위한 당국의 노력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27일 통일부가 유튜브 등을 통해 공개한 2024북한인권영상보고서. 유튜브 캡처.


유지태 "한국인이라면 생각해봐야"


이날 공개된 북한 인권보고서는 지난해 보고서에 포함됐던 탈북민 508명의 증언에 141명의 증언이 추가됐다. 북한 인권보고서는 2016년 3월 북한인권법 제정 후 이듬해부터 매년 비공개로 발간됐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지난해부터는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통일부 북한인권홍보대사에 위촉된 배우 유지태가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위촉식을 마친 뒤 소감을 밝히는 모습. 연합뉴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발간사에서 "지난해에 이어 북한 인권보고서를 지속 발간하는 건 북한 주민 인권 개선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며 "전 세계가 북한 주민 인권 실상에 대해 정확히 알고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북한 인권 홍보대사로 위촉된 배우 유지태도 "한국 사람이라면 북한 인권에 대해 한 번씩은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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