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두고 출근한 싱글맘, 크리스마스 악몽이 시작됐다
[김성호 기자]
▲ 타로 포스터 |
ⓒ LG유플러스 STUDIO X+U |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무엇을 고른다는 건 다른 무엇을 택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갈림길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그럼에 다른 무엇의 상실이기도 하다. 상실된 무엇이 이룰 수 있었을 가능성보다 택한 길이 더 낫기를 바라며, 우리는 앞에 놓인 길을 묵묵히 걸을 뿐이다.
영화를 만드는 일도 그렇다. 창작자, 즉 감독과 작가는 수많은 선택을 한다.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낼지가 모두 선택으로 꾸려진다. 장르며 구체적 접근법까지가 모두 선택으로 정해진다.
옴니버스는 그 역사가 70여 년이나 된 영화의 한 형식이다. 독립된 에피소드를 마치 단편소설처럼 묶어 상영하는 것으로, 때로는 한 가지 주제를, 또 때로는 여러 주제를 한 작품 아래 묶어낸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전쟁의 피안>,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부터 옴니버스 영화 가운데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리차드 커티스의 <러브 액츄얼리>, 한국에서 제작된 것으로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여섯 개의 시선> <신체모음.zip>, 또 최근 개봉한 <원더랜드> 등이 옴니버스 영화라 할 수 있겠다.
▲ 타로 스틸컷 |
ⓒ LG유플러스 STUDIO X+U |
장단 명확한 옴니버스, 택한 이유는?
다른 많은 형식과 장르, 접근법이 그러하듯 옴니버스에도 장단이 있다. 영화를 책임지는 제작자는 장점이 크고 단점이 작은 방법을 택해 작품을 풀어가게 마련이니, 옴니버스를 택하는 데도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옴니버스의 장점은 무엇인가.
옴니버스의 가장 큰 매력은 가벼움이다. 이는 단편소설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현대인들은 긴 호흡의 글을 잘 읽지 못한다. 바쁜 일상 가운데 길고 무거운 글을 끈기 있게 읽기가 어려운 탓이다. 그리하여 아침이며 잠들기 전, 또 대중교통에서 짧은 호흡으로 한 편의 이야기를 몰아 읽기를 선호하는 이가 적잖다. 단편소설이 인기가 있는 이유다. 집중력이 분산되지 않을 정도의 길이, 가벼운 주제, 적당한 재미, 무엇보다 같은 시간에 여러 가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데 뭐 하러 긴 소설을 읽는다는 말인가.
옴니버스의 매력이 꼭 그와 같다. 다채로운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니 지루하지 않게 영화를 볼 수가 있다. 기발한 소재와 접근법, 다양한 결말까지를 짧은 시간 안에 즐길 수 있다. 이것이 옴니버스가 지닌 힘이다.
▲ 타로 스틸컷 |
ⓒ LG유플러스 STUDIO X+U |
칸영화제 단편경쟁 공식초청작의 위엄
첫 이야기는 '산타의 방문'. 올해 칸영화제 단편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기대작이다. 주인공인 중년 여성(조여정 분)은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생활이 어려워 마트에 취업한 그녀는 당장 며칠 뒤인 크리스마스이브부터 출근하라는 얘기를 듣는다. 마트가 바쁘니 당장 일손이 귀하다는 이야기다.
바로 출근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딸을 맡길 곳을 찾지 못한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딸을 홀로 집에 둔 채 마트로 나간다. 이야기는 그로부터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몰아치듯 나아간다. <기생충>으로 일약 세계적 배우가 된 조여정의 연기가 명성에 어울린다는 걸 이 짧은 단편이 증명한다.
▲ 타포 스틸컷 |
ⓒ LG유플러스 STUDIO X+U |
준비되지 않은 배우의 어수선한 뒷맛
영화의 끝맛을 결정하는 마지막 작품은 덱스가 주연한 '버려주세요'다. 배달일을 하는 청년과 그 청년에게만 배달을 시키려는 어느 여성의 이야기가 짤막한 단편 가운데 인상적으로 담겼다. 연기를 수련하지 않은 듯 보이는 덱스는 그간 예능을 통해 보인 그대로의 모습으로 극 중 캐릭터를 연기한다. 내면 연기가 부족한 탓인지 계속 혼잣말을 통해 제 심경과 생각을 드러내는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안타깝게도 너무 노골적이고 어수선해 영화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아쉬운 대사 소화력, 또 굳어 있는 표정과 끊이지 않고 뱉어지는 혼잣말의 향연이 촬영 현장에서 있었을 제작진의 고민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옴니버스 영화의 한계, 즉 짧은 시간 안에 캐릭터를 구축하고 관객을 설득해야 한다는 제약은 앞선 두 편과 달리 세 번째 작품에 이르러 독으로 작용한다. 왜 '버려주세요'를 세 작품 중 마지막으로 배치했는지, 가장 출중한 연기로 관객을 단박에 이야기 속에 빠뜨리는 '산타의 방문'을 처음에 두었는지가 고스란히 읽힌다고 하겠다.
옴니버스 영화는 장점만큼 단점 또한 명확하다. 어떤 이야기도 깊이 다뤄질 수 없다. 특기할 만한 설정과 반전, 연출이 없다면 고만고만한 이야기 가운데 배우의 연기력과 존재감으로 풀어갈 수밖에 없다. <타로>가 꼭 그러한 영화다. 감독인 최병길의 평범한 연출과 색깔이 있긴 하지만 기발하다고는 할 수 없는 극본 위에 배우의 기량이 한껏 발휘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어느 배우는 걸출한 역량을, 또 어느 배우는 막막하며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연기를 보이니, 뒤따르는 후배 창작자들이 귀한 가르침으로 삼을 수가 있겠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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