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도, 정치가도, 누구도 닿지 않는 현장 이야기

김성호 2024. 6. 27.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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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231] 천현우 <쇳밥일지>

[김성호 기자]

또 죽었다. 지난 24일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리튬1차전지 업체 아리셀 공장 화재로 23명의 노동자가 질식 사망했다. 한국 국적은 5명, 나머지 18명은 이주노동자라고 했다. 이주노동자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한국에 가족을 두고 삶의 터전을 꾸리고 있는 이들이다.

18명의 이주노동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불법파견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이 실제로는 아리셀에서 근무했지만 서류상 소속은 메이셀이란 것이다. 불법파견 외에도 산재보험 의무가입도 하지 않았다 한다. 장례조차 끝나지 않았건만 파견된 노동자의 실제 업무 지시를 누가 했느냐를 두고 진실공방이 지속되는 건 참담한 일이다. 사후보상과 법적 책임을 두고 지난한 싸움이 예상된다.

한국언론은 이 같은 문제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큰 사건이 터질 때를 제외하곤 노동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취재가, 집요한 보도가 얼마 이뤄지지 않는다. 공공연한 불법파견과 유명무실한 법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조지 오웰의 르포르타주,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와 같이 눈에 띄지 않던 이들의 세계를 모두 앞에 꺼내놓는 치열하고 처절한 글을 한국에선 찾기 어렵다. 프랑스 시민사회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플로랑스 오브나의 <위스트르앙 부두>와 같은 르포르타주가 어째서 한국 사회엔 보이지 않는가를 생각한다.

일회적 잠입취재며 위장취업 취재가 몇몇 언론사에서 없었던 게 아니지만 그 밀도며 무게가 독자의 기대에 현격히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자연히 사회적 파급 또한 얼마 일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그 결과가 노동에 무관심한 한국사회다. 충분히 바뀌지 못한 제도다. 현장에서 무력화 되는 법규들이다.
 
▲ 쇳밥일지 책 표지
ⓒ 문학동네
 
한국언론이 외면한 자리에서 피어난 목소리

천현우는 2020년대 들어 일약 스타가 된 글쟁이다. 용접공으로 일하던 중 만난 양승훈 경남대 교수의 책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감명 깊게 읽었고, 양 교수를 직접 찾아 노동 현실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게 그의 오늘을 있게 했다.

양 교수가 그와의 만남을 정리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은 그야말로 대단한 관심을 모았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이를 공유하기까지 했으니 파도는 더 큰 파도에 업혀 천현우라는 존재를 비로소 세상에 알렸다.

그는 용접공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떤 이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배움이며 방황조차 사치로 여기며 쉬지 않고 일해 다다른 길이었다. 물려받은 빚이 다리를 옭아맸고 매일의 노동은 눈 돌릴 힘조차 앗아가던 나날이었다.

공장 노동자로, 다시 용접공으로 현장을 전전하던 그에게 그나마 취미랄 것이 글쓰기였다. 소설가를 꿈꾸며 이런저런 글을 끼적여서는 크고 작은 공모전에도 내보았지만 번번이 낙방. 노동 강도에 전혀 못 미치는 박한 월급에 어둡기만 한 미래가 연애 같은 일을 감히 바라볼 수도 없도록 했다.

그런 그에게 유명세가 찾아왔다. 유명해진 그는 매체에 글을 싣고 인터뷰로 얼굴을 알릴 기회를 잡았다. 방송이며 신문, 잡지에 등장하는 용접하는 이, 또 글을 쓰는 이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큰 관심을 모았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무엇보다 그와 같은 이가 없다는 희소성, 다음은 그가 하는 이야기가 한국사회에 분명한 가치를 지녔다는 필요성이었다.

급기야 그의 책 <쇳밥일지>가 내로라하는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출간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이 책을 페이스북에서 추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불운했던 그의 삶에 성공에의 골든로드가 촤르륵 깔리는 순간이었다.

천현우의 화제성 이면엔 불행히도 한국 언론의 그늘이 자리한다. 그가 대변하는 지방 육체노동자의 세계는 한국의 언론과 기자들이 가까이 가기를 꺼려왔던 곳이다. 오웰과 오브나의 시각으로 보자면, 험하고 지저분하며 보잘것없는 세계라서, 귀찮고 고되고 피곤하여서, 무엇보다 굳이 찾지 않아도 세상은 똑같이 돌아가기 때문에 한국의 언론이 그를 조명하지 않았던 걸까.

언론이 소외된 현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한 명의 노동자가 추락하여 숨지고, 깔려서 죽은 뒤에도 단 몇 줄의 단신조차 찾기가 어려운 시대였다. 부동산 시황을 전하는 수많은 보도 아래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비명들이 있었다.

김용균의 죽음 이후엔 제법 취재가 이뤄졌다지만 일회적인 보도를 넘어 꾸준하고 열의 있는 목소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도시에 사는, 돈 있고 잘 배운 이들의 시선에 좀처럼 닿지 않는 지방 노동자의 현실은 그렇게 더더욱 멀어져 갔다. 결코 다가서 취재하기 어렵지 않은 분야임에도 조명되지 않았던 목소리들은 그렇게 작아져만 갔다.

<쇳밥일지>는 작가 천현우의 첫 책이다. 불행했던 저의 가정사를 털어놓으며 시작하는 글은 그와 같은 삶을 사는 이가 택할 수 있는 부족한 선택지를, 그 선택의 결과로 도달한 삶의 현장이 얼마나 고통스런 것인지를 독자 일반에게 알도록 한다. 그로부터 제 앞에 놓인 잘 닦인 길 밖으로는 눈 돌릴 필요 없던 이들에게, 그리하여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할 필요조차 없던 이들에게 그들이 이제껏 알지 못했으나 알아 마땅한 것들이 있음을 알린다.

이를 테면 이런 것. 책이 한창 쓰일 무렵이었을 2020년 초, 어느 사교육 수학강사가 유튜브 방송을 켜고 이야기하던 중 실언을 해 논란을 산 일이 있다. 수학 가형 7등급 학생들이 나형을 선택하면 1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 나형을 선택한 학생들의 노력을 무시하는 것이라 발끈한 과정에 나온 말이다. 그녀는 용접공 흉내까지 내가며 '(가형이라도 7등급을 받았다면) 용접 배워가지고 저기 호주가야 돼' 하고 말했던 것이다.

다른 누구의 노력을 쉬이 비하해선 안 된다고 발끈한 이 강사가 도리어 용접공을 비하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단 건 대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그녀가 살아온 세상에선 용접이란, 또 그것이 대표하는 소위 블루칼라 노동이란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이 선택하는 직업에 불과했을 테니 말이다.

그녀가 몹쓸 인성을 가져서가 아니다. 그저 어느 길 위에 선 이에겐 보이지 않는 세상이, 그리하여 그를 알지 못해 쉬이 오해하고 무시하게 되는 세상이 있다는 이야기다. 오웰과 오브나가 그러했듯 언론이, 매체가 그를 비춰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고.

몸으로 쓴 글이 지닌 저력, 그 질김이 좋다

<쇳밥일지>는 천현우가 불행한 가정사를 딛고 사회인이 되고, 다시 용접을 배워 용접공이 되며, 여러 계기를 거쳐 작가이자 기자가 되기까지의 기록이다. 일기라 해도 좋을 개인적 기록으로 내밀한 경험과 그에 따른 감상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게 특징적이다.

무엇보다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던 노동자, 또 지방 노동현장에 투입된 청년의 목소리를 개별적 경험과 버무려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지방과 공장, 청년이란 현장에 먼저 접근하는 데 실패했던 한국사회가 천현우를 발탁한 데는 지방인이며 공장노동자, 불안한 청년으로서의 제 삶을 당당히 꺼내놓은 용기가 한몫을 했다고 보아야 할 테다.

솔직함, 또 그를 가능케 한 용기는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무기다. 저를 학대한 친어머니, 거듭 다른 여자를 데려오고 아들을 돌보지 않았던 아버지, 생모는 아니지만 부모의 역할을 대신한 심여사, 그 심여사가 제게 안긴 빚더미 따위의 일을 저자는 소상히 책에 적어두고 있다.

생모를 따라가 함께 살았던 시절, 어린 제가 보는 앞에서 성교하던 이들의 모습이며 제 어미가 제게 가한 구체적 폭력들, 맞고 사는 것이 당연한 줄만 알았던 어린 시절의 모습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독자에게도 안쓰러움을 불러일으킨다.

그와 같이 자란 청년이 어떻게든 제 삶을 지탱하려 발버둥치는 과정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독자 앞에 생생히 다가선다. 그 과정 가운데선 그저 천현우 개인의 삶을 넘어 가난을 업고 어떻게든 걸어나가는 이 시대 불행한 이들의 삶 또한 얼마쯤 함께 읽힌다.

이 시대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제가 딛고 선 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에너지 수급과는 관계없이 전기를 쓰고, 돼지축사의 환경을 모른 채 고기를 먹는 이들의 세상이다. 쓰레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쓰레기를 버리고, 지속된 정전상태 아래서도 평화가 지속되리라 믿는 사람들의 세상인 것이다.

<쇳밥일지>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자도, 정치가도, 누구도 닿지 않는 현장의 이야기가 스스로 표면 위로 올라와 전해지는 귀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견한가. 그 목소리를 우리가 그저 흘려보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탁월한 시선이나 걸출한 문장이 깃든 책이라고는 차마 못하겠다. 그러나 몸으로 쓴 글이 지닌 저력만큼은 분명히 지니고 있다. 이건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수없이 꺾이고 이지러진 뒤에도 어떻게든 살아남은 질긴 힘이다. 나는 그 질김이 좋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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