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로치 회장 “유럽정치, 구멍 뚫린 ‘도넛’꼴...EU 경제 타격”

조슬기나 2024. 6. 2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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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로치 인디펜던트 스트래티지 회장
월가서 아시아 외환위기 첫 경고한 인물, 韓언론과 최초 인터뷰
극으로 치닫는 유럽 정치, 최대 리스크로 '포퓰리즘' 꼽아
"프랑스 총선서 극우 승리, 정치적 마비 우려"
"EU 개혁 쉽지 않아 결국 경제 해칠 것...유로화 패리티 전망"

"정치 포퓰리즘으로 결국 유럽연합(EU) 자산이 대가를 치를 것이다. 유로화는 강달러에 약세를 보이면서 ‘패리티(1유로=1달러)’ 이하에서 1~2년 머물 수 있다."

세계적인 투자전략가인 데이비드 로치 인디펜던트 스트래티지 회장이 정치리스크가 급격히 높아진 최근 유럽의 상황을 ‘구멍 뚫린 도넛’에 비유하며 경제 전반에 여파가 불가피하다는 진단을 내놨다.

로치 회장은 지난 25일 진행된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현시점에서 유럽의 가장 큰 리스크는 정치 포퓰리즘과 EU 차원의 마비"라며 이같이 밝혔다. 모건스탠리 출신의 저명 투자전략가인 그는 월가에서 가장 먼저 1997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외환위기를 경고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전개 상황을 예측했던 인물이다. 로치 회장이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최초다.

데이비드 로치 인디펜던트 스트래티지 회장 [이미지 제공=데이비드 로치]

먼저 로치 회장은 극우 세력의 약진이 두드러졌던 이달 초 유럽의회 선거에 대해 "의회에서 (극우 정당의) 정치적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 있으나 프랑스, 독일 등 국가 차원의 결과가 나빴다"며 "극단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프랑스 조기총선의 블랙홀, 독일의 정치적 마비로 인해 EU 집행부의 안정성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러한 유럽의 정치지형을 "‘수플레(부풀어 오른 모양의 프랑스 빵)’가 아닌 ‘도넛’"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대중들은 민주주의의 가장자리로 이동했고 중도층에 대한 지지가 약해지는 현상은 새롭지 않다"면서 "특히 (유럽의회 선거 직후 조기총선을 발표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빵) 가운데 ‘거대한 블랙홀’을 뚫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는 유럽 전체에 중요한 함의가 있다"면서 " 이 구멍은 극단주의자들이 메우게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다가오는 프랑스 총선은 최근 부각된 유럽 내 정치리스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예시로 손꼽힌다. 로치 회장은 오는 30일과 7월7일에 걸쳐 치러지는 이번 총선에서 "마린 르펜이 이끄는 극우정당(국민연합·RN)이 승리할 것"이라며 "마크롱 대통령과 극우 총리 간 건설적 동거는 어렵다. 프랑스에서 정치적 마비 상황이 확인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극단주의 단체들은 좌우 어느 쪽이든 미친 듯이 돈을 쓰겠다고 경쟁하고, EU 차원의 안정 및 성장협약, 재정건전성 관련 절차들을 무시할 것"이라며 "프랑스가 EU 부채 규정을 따르지 않을 가능성은 50% 이상"이라고 내다봤다. 이미 공공부채가 과도한 상황에서 돈을 퍼붓는 포퓰리즘 정책이 난무하고, EU 차원의 정책 진전도 한층 어려워질 것이란 관측이다.

이러한 정치적 혼란은 시장에도 확산할 전망이다. 로치 회장은 이로 인해 프랑스 국채와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 간 금리 스프레드(10년물)가 최근 70bp(1bp=0.01%포인트) 수준에서 두 배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프랑스의 재정 및 경제 상황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그만큼 높아지고 부채 이자 등 재정부담도 더 커짐을 시사한다. 또한 그는 이 과정에서 유럽중앙은행(ECB)이 특정 국가의 국채 금리 급상승을 막는 채권매입 프로그램인 전달보호기구(TPI)로 개입할 경우 "유로화가 ECB의 신뢰 상실에 따른 대가를 치르고, 다른 EU 회원국 자산도 여파를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조기총선 발표 직후부터 증시가 급락하고 국채 금리 변동성이 높아진 상태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프랑스 총선을 주시하고 있는 또 다른 EU 주요국 독일의 상황도 불안정하긴 마찬가지다. 로치 회장은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독일 집권당이 극우정당(독일을 위한 대안·AfD)에 밀린 점을 언급하면서 "조만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프랑스와 독일의 상황은 다르지만 이를 초래하는 정치적 문제는 동일하다"면서 "중도층은 극단으로 이동하고 있고, 기성정당들은 포퓰리즘 확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EU 쇠퇴를 막기 위해서는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EU 확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보완을 비롯한 유럽방위 능력 강화 등 7가지 개혁이 필요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로치 회장은 이러한 유럽의 정치적 상황이 "모두에게 중요하지만 특히 투자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면서 "경제성장이라는 공동의 희생자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정치발 혼란 속에서 독일 국채는 안전자산으로 주목받으며 미국 국채 금리에 수렴하는 수준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결국 EU 자산이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로치 회장은 "유럽의 정치적 혼란이 금융시장에 미칠 여파를 막기 위해 ECB가 TPI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쓰면서 유로화가 ‘희생양’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미 달러화는 강세를 지속할 것이고, 유로화는 패리티 아래로 평가 절하돼 1~2년간 그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로화는 최근 ECB의 금리 인하로 미국과의 금리 차가 커진 가운데 유럽발 정치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1.06달러 선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로치 회장은 연내 ECB가 금리를 0.25%포인트 추가로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증시 전망도 부정적이다. 로치 회장은 "최근 유럽증시의 성과가 좋지만 이는 지속 불가능하다. 미국 증시에 비해 부진할 것"이라며 "미국 증시의 거품이 깨질 때 우리는 회복될 것을 알지만, 유럽은 그렇지 않다"고 평가했다. 범유럽 주가지수인 스톡스유럽600지수는 인터뷰일 기준 연초 대비 5%가량 오른 상태다. 현재 로치 회장 측은 유럽주식 비중도 축소하고 있다.

이밖에 로치 회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리스크도 경계했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리스크는 러시아가 북부 하르키우와 수미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의 방어선을 돌파하며 현재의 소모전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이 경우 우크라이나의 패배 가능성이 커지고 유럽에선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는 중국이 대만에서 (무력전쟁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리스크를 고조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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