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 [데스크칼럼]

민수미 2024. 6. 27.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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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나는 경기도 외곽에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살았다.

그럴수록 사업체의 산업안전보건 교육이나 당국의 감독이 중요한데, 현장은 안전대책과 동떨어져 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근무 일정, 불안정한 고용 형태, 안전불감증 등이 합쳐져 산업재해 무방비 상태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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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경기 화성시 서신면 소재 일차전지 제조 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망자는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나는 경기도 외곽에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살았다. 주변에는 저수지, 몇 가구 안 되는 이웃, 작은 공장들이 있었다. 인제 생각해 보면 한적하다보다는 외지다에 더 가까운 곳이었다. 가족이 살던 본채 옆에는 작은 별채가 있었다. 기억 속 어느 시점부터 그곳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세를 들어 살았다. 부모님은 그들을 방글라데시에서 온 삼촌들이라고 소개했다.

삼촌들은 한국어에 서툴렀다. 몇 개 안 되는 표현을 반복해서 그리고 어눌하게 뱉던 기억이 난다. 자주 들은 말은 ‘배고프다’와 ‘아프다’였다. 허기는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했다. 음식을 조금 더 만들어서 나누면 되는 일이었다. 아픈 건 달랐다. 그건 우리 가족이 도울 수 없는 영역이었다. 일터에서 자주 다쳐서 돌아오는 삼촌들.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미숫가루가 가득 든 그릇을 들고 갔던 삼촌들의 방, 그 안에 가득했던 파스와 소독약 냄새는 지금도 선명하다.

한 삼촌이 발을 절뚝이며 퇴근한 날이 있었다. 다른 이들의 부축을 받은 상태였다. 얼마 후 삼촌들은 몰래 짐을 싸서 아무도 모르게 동네를 떠났다. 세를 내지 않고 간 탓에 부모님은 간간이 언짢은 심기를 드러냈지만, 나는 삼촌들이 도망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수십 년이 지났고,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24일 오전 10시30분 경기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아리셀 공장에서 난 불로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사망자는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다.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 한국인 5명이 이번 참사로 숨졌다. 인력 공급 업체에서 파견한 일용직이 다수다.

외국인 근로자는 주로 위험 요인이 많고, 작업환경이 열악한 사업장에서 근무한다. 늘 산업재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2023 고용노동백서를 보면 2013년 5586명이었던 외국인 근로자 산업 재해자 수는 매년 증가해 2022년 8286명을 기록했다. 부상을 입거나 질병을 얻은 이는 매년 늘고 있다. 사망자는 2016년 이후로 100명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고용부의 2023년 유족급여 승인 기준 사고·사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812명 중 외국인 근로자는 85명으로 10.4%를 차지했다.

낯선 환경, 언어 장벽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재해 예방 지식을 얻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그럴수록 사업체의 산업안전보건 교육이나 당국의 감독이 중요한데, 현장은 안전대책과 동떨어져 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근무 일정, 불안정한 고용 형태, 안전불감증 등이 합쳐져 산업재해 무방비 상태를 만든다.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심각도가 더욱 높아진다.

3D 업종 기피로 인한 인력난을 외국인 근로자 유입으로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납작한 문제 해결 의식이, 기업들의 형식적인 안전 교육과 소홀한 안전 관리가, 값싼 노동을 지향하는 우리 사회 분위기가 화성 화재 참사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앞으로 더 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위험한 업무에 투입될 것이다.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노동 환경을 재검토하고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다시는, 누구도 이렇게 죽어선 안 된다.

민수미 편집부장 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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