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두번째 아메리카노"…아침 7시에 문 여는 술집의 정체 [비크닉]

서혜빈 2024. 6.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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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플레이스

「 “거기 가봤어?” 요즘 공간은 브랜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를 설명하고, 태도와 세계관을 녹여내니까요. 온라인 홍수 시대에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은 좋은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하죠. 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합니다.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

오전 7시부터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서 문을 여는 와인바가 있다. 수시로 손님이 드나들어 아침에 술 마시는 유행이라도 생겼나 싶지만 실제는 다르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 커피를 판다. 이곳에 커피를 사러 가서 수백 종류의 와인을 구경하는 건 덤이다. 물론 ‘모닝 술’도 가능하다.

탭샵바 여의도점 와인 디스펜서 공간에선 50여 종의 와인과 위스키를 맛볼 수 있다. 사진 탭샵바

저녁 장사에 집중하는 여느 와인바와 다른 운영을 고수하는 이곳은 ‘탭샵바’ 여의도점이다. 서울 동대문∙청계천∙도산대로에 이어 지난 17일 문을 열었다. 보통 와인바라 하면 연상되는 우아함과 고급스러움과 달리 격식 없는 펍의 분위기가 난다. 통유리 외관에다 내부엔 기둥을 둘러싼 유리 거울, 조명, 소품들을 곳곳에 자리한다. 와인바에서 흔치 않은 빨간 컬러 포인트도 눈에 띈다. 파크원부터 더 현대 백화점까지 여의도 랜드마크 빌딩 외관에 빨간색이 있는 것에 착안, 주변 상권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택했다. 탭샵바는 지점별로 상권에 맞춰 인테리어를 달리해 도장찍기 하듯 매장마다 색다른 재미를 유도한다.


저렴한 가격에 와인바가 직장인 회식 장소로


탭샵바가 남다른 건 영업 시간만이 아니다. 핵심은 셀프 디스펜서 시스템이다. 와인∙위스키 등 50여 종의 술이 담긴 '탭'을 열어 스스로 골라 잔 단위로 내려 마실 수 있다. 여기서 맛본 와인을 ‘샵’에서 구매하고 ‘바’에서 안줏거리를 사서 먹을 수도 있다.
탭샵바 청계천점의 셀프 와인 디스펜서 공간에서 80여 종의 와인과 위스키를 맛 볼 수 있다. 사진 탭샵바

MZ 직장인이 주요 고객층인 데는 가격도 한몫한다. 대중적인 화이트 와인 ‘클라우디 베이 소비뇽블랑’의 탭샵바 가격은 할인마트보다 같거나 15% 정도 저렴한 수준이다. 보통 와인바가 마트보다 약 2~3배 비싸다는 상식을 깨는 데다, 추가 금액 없이 매장에 앉아 마실 수도 있다는 이점이 있다. 와인에 대한 진입 장벽을 낮추다 보니 직장인들 회식 장소로도 인기다. 실제로 여의도점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문 연 세 곳 중 유일한 직장인 상권인 청계천점의 매출이 다른 지점보다 2배가량 높다.


된장찌개에 와인 페어링…영국 유학 중 낸 논문으로 사업 시작


남다른 와인바를 만든 사람은 나기정(44) 대표다. 그는 2013년 홍대 앞에서 ‘와인주막차차’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치즈나 스테이크가 아닌 떡볶이∙순대∙된장찌개 등 한식과 와인을 페어링 해서 파는 식당으로, 당시 파격적인 조합으로 눈길을 끌었다. 소비자 취향을 제대로 파고들었고, 한 달 매출 1억원을 찍었다.
나기정 대표. 사진 탭샵바
사실 한식과 와인 조합 아이디어는 나 대표의 논문을 현실화한 것이다. ‘영국 왕립 농업대학교’에서 와인 MBA 과정을 밟은 그는 한국에서도 와인이 쉬운 술로 여겨지길 바랐다. 한식이 와인을 격식 없이 만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한국 와인 시장 성장의 열쇠로 한식을 꼽은 나 대표는 신선한 연구 주제로 당시 학교에서 최고 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지난 10년간 그가 낸 브랜드만 탭샵바를 포함해 10개가 넘는다. 주류 매장부터 브런치, 일식, 국밥집까지 경험해보지 않은 외식 분야가 없다. 대부분 와인을 곁들인 외식 브랜드였다. 두 번이나 크게 망하기도 했다. 그는 “매장 수십 개를 닫은 원인은 결국 나의 조급함과 경영 미숙 때문이었다”라고 고백했지만, 20여년의 와인 공부와 10여개 브랜드 사업 경험은 탭샵바 사업에 밑거름이 됐다.


30분 내 와인 배달 목표…일본∙미국 등 해외 진출 계획도


나 대표가 이렇게까지 와인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궁극적 목표가 와인의 대중화이기 때문이다. 매일 스타벅스에 가듯 와인도 커피처럼 하루에 한 잔 챙겨 먹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다. 탭샵바의 모토가 ‘와인은 두 번째 아메리카노’인 이유다. 그는 “이미 변화가 느껴진다”면서 “노트북으로 일하는 20대부터 책 읽는 80대 노인까지 탭샵바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붉은색 벽돌로 인테리어를 한 탭샵바 도산대로점. 기자가 방문했을 때 이곳에 앉아 노트북으로 일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사진 탭샵바
와인 대중화를 위해 몇 가지 목표도 있다. 와인 ‘탭’으로 소비자 데이터를 모으는 것. 사용자 2만 5000명을 모았고, 이들의 재방문율은 50%에 달한다. 소비자 취향은 데이터로 기록되고, 이를 통해 맞춤형 큐레이션 서비스를 기획 중이다.

장기적으로 배송과 픽업 서비스도 할 예정이다. 탭샵바 매장을 거점 창고로 활용하면서 30분~1시간 내 배달을 목표로 한다. 나 대표는 “서울시 자치구별로 매장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혜빈 기자 seo.hye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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