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한국 8주면 만든다"는데…北처럼 가혹한 제재 당할 수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미 하버드대 연설에서 “한국은 마음을 먹으면 1년 이내에도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이 있다”고 한 건 허세가 아니다. 국내 전문가 대다수가 “일단 결심하면 기술적으로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복잡하지 않다”는 데 공감한다. 국제 비확산 체제에서 공공연히 한국과 일본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분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균렬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미국의 핵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집중적으로 개발한다면 150명 정도의 정예 요원이 8주 가량이면 플루토늄 기반 시제품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기술력과 경제력에서 북한을 압도하는 한국이 본격적으로 핵무장을 결심한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겐 체제 경쟁의 난이도 자체가 달라진다. 그 자체로 북핵 억제 효과는 강해질 수 있다. 아무리 튼튼한 핵우산도 언제든 누를 수 있는 핵 버튼의 위력을 따라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능력보다는 다양한 직·간접적 비용이다.
천문학적 핵무기 유지 비용
미·중 간 전략 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 정세 변화는 비용을 가파르게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미국의 핵 전력 유지 비용은 2014년 국방 예산의 3.6%에서 2031년 약 8.5%로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한국의 핵 무장 비용을 ‘핵 대국’ 미국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핵 전력 보유 및 유지에 필요한 기본적 요소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CBO는 “미국의 핵전력은 핵잠수함(SSBN), 지상발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거리 폭격기, 폭탄을 탑재한 단거리 전술 항공기, 이러한 운반 시스템이 탑재하는 핵탄두로 구성된다”고 소개했다.
접점 없는 국론 분열, 주변국 핵도미노 우려
한국의 핵무장에서 핵심 변수는 한·미 동맹이다. 양국 간 원자력협정만 해도 한국의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재처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우라늄은 20% 미만까지만 협의 하에 농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갑’인 미국과 합의 없이는 핵 개발 시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미국은 물론,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승인을 받지 못하는 ‘불법적 핵무장 시나리오’는 심각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일각에선 인도나 이스라엘, 파키스탄 등 ‘사실상 핵보유국’ 모델도 언급하지만, 이들은 애초에 모두 NPT 미가입국이다. 한국은 NPT 체제 내에서 평화적 핵 이용의 권리를 십분 누려온 만큼 승인 없는 핵 개발에 나설 경우 ‘죄질’ 자체가 매우 나빠진다.
인도나 이스라엘에 대해선 미국이 예외를 인정하는 식으로 세계가 묵인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극체제였던 당시와는 정세 자체가 다르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이 치열하고,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체제를 흔들고 있다. 중·러의 묵인을 기대하기 어려운 가운데 불법적 핵 개발국으로 낙인찍히면 북한이나 이란처럼 가혹한 국제 제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더해 다른 비핵국가들 역시 반발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 도미노’를 촉발할 수도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주변국의 반발이나 도미노 핵무장 등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국제적인 비용을 세세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론 분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당장 여당 당권 주자들이 핵 무장을 의제로 띄우자 야당은 비판에 나섰다. 26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선 "'자체 핵무장론'은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주장"(정청래 최고위원), "핵무장론은 남북한 모두 공멸을 부를 '치킨게임'"(박찬대 원내대표) 등의 비판이 나왔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정책위의장도 "과거 냉전체제로 돌아가는 듯한 낡은 정치 선동"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국내의 핵 무장 지지도 전술핵 재배치, 자체 핵개발 등 스펙트럼이 다양한 만큼 구분해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비핵 평화’ 담론 포기, 김정은 ‘핵군축’ 구상에 말려들 수도
시종 비핵화 협상이 아닌 핵 군축 협상을 노려온 김정은이 한국의 핵 무장을 유리하게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핵무기를 통해 북한의 핵 보유도 정당화하면서 ‘비핵 평화’라는 틀 자체를 바꾸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남 및 대미 적대정책을 국가 운용의 대기조로 삼는 김정은에 ‘공포의 핵 균형’은 오히려 체제 유지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이유정·이근평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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