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강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열매

장창일 2024. 6. 27.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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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 실린 역사 속 14개 에피소드는 무척 흥미롭다.

우연처럼 다가온 운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1927년 발간된 후 100년 가까이 사랑받고 있다.

우연한 행운이라도 잡아야 보배가 된다.

오늘, 우연을 가장해 우리 곁에 다가오는 운명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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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일 종교부 차장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 실린 역사 속 14개 에피소드는 무척 흥미롭다. 우연처럼 다가온 운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1927년 발간된 후 100년 가까이 사랑받고 있다. 책의 한 대목이다.

‘인간의 삶에 아주 드물게 찾아오는 이런 위대한 순간은 잘못 불려 나와 그 운명의 순간을 장악하지 못한 인간에게는 모질게 복수하는 법이다. 조심성, 복종, 노력, 신중함 같은 미시적인 미덕들은 저 위대한 순간의 불길 속에 아무런 힘도 없이 녹아내리고 만다. 위대한 운명의 순간은 언제나 천재를 원하고 그에게는 또 불멸의 모범이라는 명예를 안겨주지만 유순한 자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경멸하며 밀쳐버린다. 지상의 다른 신이기도 한 위대한 운명의 순간은 불같은 팔로 대담한 자들만 들어 올려 영웅들의 하늘로 보내주는 것이다.’

초저녁 콧등을 스치는 바람처럼, 가을 하늘 눈부심을 담지 못해 순간 찡긋거리는 것처럼 우연은 불현듯 찾아온다. 저자는 이걸 잡아야 운명이 된다고 조언한다. 우연한 행운이라도 잡아야 보배가 된다. ‘계획된 우연 이론’은 존 크롬볼츠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했다. 1999년 발표한 이 이론은 개인의 경력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하는 우연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게 골자다. 크롬볼츠 교수는 그 우연을 기회로 활용하는 능력에 따라 경력 발달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계획된 우연을 잘 활용하기 위해 타고난 강점과 관심사에 맞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의 80%는 현재의 성공을 목표하거나 계획했다기보다 주어진 현실 속에서 성실히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우연히 만난 사람이나 우연히 겪은 일을 통해 성공의 길을 열었다는 것이다. 결국 성공을 위해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데 이에 앞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걸 꼬집는다. 아무리 우연이 성공의 길을 열어준다 해도 아무것도 준비돼 있지 않은 사람에겐 깃들 게 없다는 점이다.

조선말의 어느 날,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열매’가 맺혔다. 1884년 12월 4일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킨다. 일본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후대의 평가는 늘 엇갈린다. 더욱이 믿었던 일본의 배신으로 삼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봉건체제의 악습을 버리고 자본주의를 통한 근대화로 나가겠다는 취지는 좋았으나 방법이 틀렸다.

정변의 날, 서울 종로구 견지동 우정총국에선 낙성식 연회가 열렸다. 연회에는 미국·영국 공사와 독일 출신 파울 게오르크 폰 묄렌도르프 외교고문, 청국 영사, 일본공사관 서기관 등 외빈과 권력 실세들이 대거 참석했다. 급진개화파는 우정총국 밖에서 불길이 오르면 즉시 수구파를 척살하고 궁궐로 들어가기로 했다. 밤 10시가 되자 불길이 치솟았다. 왕후의 외척이던 세도가 민영익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 밖으로 나가자 자객이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다. 여러 군데 자상을 입은 그는 쓰려져 사경을 헤맸다.

때는 조선, 외과수술이 필요한 그에게 진맥을 짚으며 전전긍긍하던 어의들은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의사였던 호러스 알렌 선교사가 이 소식을 들은 건 우연이었다. 그는 묄렌도르프를 통해 병상의 민영익에게 갔고 우리나라 최초의 외과수술을 통해 꺼져가던 생명을 살려냈다. 선교사였던 알렌은 이후 조금의 핍박도 받지 않고 궁궐을 드나들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을 선물로 받았다. 우연에서 출발한 이 병원은 전국의 수많은 교회와 학교, 병원이 문을 여는 출발점이 됐다.

오늘, 우연을 가장해 우리 곁에 다가오는 운명은 뭘까.

장창일 종교부 차장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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