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가져오는 나비효과
앞세운 극우정당 약진
720석 중 최소 166석에 달해
차기 집행부는 눈치볼 수밖에
EU 자유무역 기조 퇴조하고
중국이 친환경 앞장서는데
서방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난 6월 6~9일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치러진 10대 유럽의회 선거 결과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로 놓고 볼 때 극우정당의 약진, 중도자유주의와 녹색당의 몰락, 중도우파의 선전으로 요약된다. 극우로 분류되는 유럽보수개혁당(ECR)과 정체성과민주주의(ID)는 각각 14석과 9석을 더 늘려 83석과 58석을 차지하게 됐다.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가 중심인 유럽보수개혁당은 중도파 두 정당에 이어 제3당으로 우뚝 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정당이 속한 중도파 새로운유럽당(RE)과 녹색당계열은 각각 28석과 18석이 줄어들어 네 번째와 여섯 번째 정당으로 몰락했다. 중도우파 유럽국민당(EPP)은 13석이 증가한 189석 내외를 확보, 굳건하게 제1당을 지켰다.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 조정된 유럽의회 의석수가 9대 유럽의회보다 15석 늘어난 720석이라는 점을 놓고 볼 때, 정파별로 1~3석 정도 더하면 과거 의석비율을 유지하는 셈이다. 이 정도 증가를 보인 정당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서 이번 유럽의회 선거는 모두에게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하다. 여전히 제2당을 지켰으나 3석이 감소한 중도좌파 사민계열은 참패가 예상되는 어려움 속에서도 선방했고, 39석에 불과하지만 오히려 2석을 늘린 좌파당은 훗날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다.
극우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차기 EU집행부의 리더십은 9대 유럽의회와 같이 중도계열이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도 좌·우파와 중도자유주의정당의 의석수가 399석 내외로 예상됨에 따라 과반수인 360석을 넘기 때문이다. 중도우파 유럽국민당 소속의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다시 위원장직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중도파 세 정당 의원들이 다 라이엔 위원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민과 난민 수용을 거부하고 자유무역과 탄소중립 정책을 피곤해하며,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극우계열은 유럽보수개혁당과 정체성과민주주의 두 당을 합쳐 141석이다. 게다가 무소속의 헝가리 피데스와 정체성과민주주의에서도 쫓겨난 독일대안당을 합하면 극우계열은 최소 166석에 달한다. 차기 EU집행부는 어떤 경우든지 이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 결과는 유럽과 국제질서의 앞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먼저 극우가 크게 약진한 것은 맞지만 이것은 단일시장 수호, 그린정책 추진, 이민 및 난민 문제 등 극우계열이 그동안 선명하게 대립각을 세웠던 분야가 개별 회원국이 아닌 EU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극우는 항상 유럽의회 선거에서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거두어 왔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의 의석 비율이 그대로 개별 국가의 총선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유럽이 이념의 스펙트럼에서 양극화가 더 심화됐다는 점이다. 좌파와 극우는 더 전투적으로 됐고, 온건 우파는 기회주의적이 돼 양편을 기웃거린다. 리더십의 위기다.
지난 EU집행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유럽그린딜은 추진력이 약화될 것이다. 당장 2035년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금지 계획은 중도우파 지도부에 의해 재검토되고 있다. 중도연합은 향후 정책추진 과정에서 멜로니의 유럽보수개혁당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몇 가지 탄소중립정책은 계속 추진될 것이다. 이미 지난해 10월에 전환기를 시작한 탄소국경조정제도를 보자. 일종의 탄소관세라고 볼 수 있는 이 제도는 유럽 소재 기업들이 역외 기업들과 동일한 탄소중립 규제를 적용받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환경규제에 관한 공평한 대우를 보장하자는 취지를 극우가 반대하기는 어렵다.
미국이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간 다자간 무역자유화라는 빛바랜 대의를 지키기 위해 그동안 유럽은 국제사회에서 중국과 함께 목소리를 높여 왔다. 극우가 힘을 얻는 EU는 자유무역의 기치를 더 이상 이어갈 수 없을지 모른다. 지금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고율의 추가관세를 부과하려 한다. 실상이 어떻든지 간에 중국은 친환경과 자유무역의 수호자로 글로벌사우스에 각인되고 있다. 실리와 함께 명분도 얻어가는 중국을 서방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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