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선] 영끌 없는 나라 만들기

김동호 2024. 6. 2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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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경제에디터

가계부채가 끝없이 쌓이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의 새로운 국민계정 통계를 적용했을 때 지난해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3.5%에 달한다. 주요국 중에서 최상위권 수준이다. 가계부채 급증의 근본 원인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있다. 왜 부동산이 가계부채 상승의 배경인지 다시 점검해보자.

23일 부동산R114가 전국 아파트를 표본으로 가구당 평균 가격(호가, 시세, 지역별 평균 등을 반영해 산정)을 조사한 결과, 14일 기준 서울 아파트의 평균가는 12억9천967만원이었다. 이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전체 아파트 평균가(3억5천460만원)보다 9억4천507만원 높다. 사진은 23일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에 게시된 부동산 매물 정보. 연합뉴스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아 늘 부동산 수요가 넘친다. 신혼부부의 보금자리 수요에 최근 1000만을 돌파한 1인 가구 수요까지 더해졌다. 버는 걸 다 저축해도 아파트값은 저만치 앞서간다. 서울에선 평균 10억원이 넘는다. 자녀가 물려받아도 증여·상속세율이 높아 손에 쥐는 건 많지 않다. 고령화가 겹치면서 증여·상속 시기도 늦춰진다. 결국 부모에 이어 자식 세대도 집 마련에 청춘을 보낸다. 가계 자산의 70%가 부동산이다. 영원히 돌을 산 위로 올리는 시시포스 같은 일생이 대를 이어 되풀이된다.

「 집값 뛰자 수도권 주택 원정구매
기업·대학 지방 분산만이 해결책
이대로는 각자도생 영끌 못 막아

문재인 정부 4년간 서울의 강남 아파트는 30평형 기준 10억9000만원(84%), 비강남 아파트는 5억원(96%)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

한국 가계의 부동산 딜레마는 갈수록 꼬이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에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부동산 정책은 주로 공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종합부동산세는 시장원리에서 크게 벗어나 수요 억제에 힘을 실었다. 2017년 문재인 정부에서는 더 강력한 방법으로 종부세를 강화했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집값은 수직 상승했다. 전국적 영끌 열풍과 가계부채 급증이 뒤따랐다.

‘집값 잡아주겠다’는 정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끝없이 치솟는 집값만 잡아준다면 희망 고문도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신기루가 될 수밖에 없다. 통계가 현실을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에서 급등한 탓에, 그리고 근래 경험하지 못했던 고금리 충격 때문에 한동안 잠잠하던 부동산 시장이 최근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복합적 이유가 있지만, 직접적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최근 2년간 극심했던 고금리 완화 조짐이고, 둘째는 서울 아파트가 공급 절벽에 부닥쳤다는 현실이다. 윤석열 정부는 5년 내 수도권에 16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고금리·고물가로 공사비가 치솟고 택지 확보가 어려워 진척이 없다. 수요는 끝없는데 공급이 부족하니 집값이 불안해진다.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이 지난해 5월부터 57주 연속 상승한 것도 집값 불안을 자극한다.

이 여파로 영끌이 고개를 들며 가계부채가 올해 들어 다시 증가세를 보인다. 지난 4월과 5월의 은행 대출 순증액이 29조8000억원으로 1분기 순증액(28조6000억원)을 넘어섰다. 이중 상당액이 주택담보대출이다. 5월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109조6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주택 거래가 늘면서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지난달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난 12일 서울 시내의 한 은행 앞에 대출과 금리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 잔액은 1천109조6천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조원 많았다. 연합뉴스

정부는 가계대출 억제에 나섰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9월부터 한층 강화한다. 소득에서 빚을 갚을 능력은 물론 금리변동 위험까지 반영해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더 깐깐하게 본다. 연봉 5000만원인 MZ세대 대출자가 40년 만기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경우 연초에는 3억9880만원을 대출받았으나 지난 2월에 3억7700만원으로 이미 2180만원 줄었고 9월부터 또 2000만원 줄어들게 된다. 내년 1월부터는 한층 더 줄어든다.

대출 문턱이 높아져도 영끌 할 사람은 다 한다. 특히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수월해진다. 빈익빈 부익부의 부작용도 커진다. 끝이 안 보이는 악순환이다.

탈출구가 없는 건 아니다. 서울 집중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물론 강제로 막을 순 없다. 기업과 대학이 지방으로 옮기면 과감한 인센티브를 줘서 서울 집중을 분산해야 한다. 빠르게 효과를 보려면 특별법을 통해 효과가 손에 잡히게 해야 한다. 추가적 주택 공급이 어려운 서울 대신 부산·대구·광주·전주 같은 지방 거점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대안이다. 공허한 소리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 외엔 해법이 없다.

서울에 오지 않아도 괜찮은 직장을 구하고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이 있으면 굳이 서울에 가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서 서울 집중은 심해진다. 지방 거주자의 서울 원정 주택 구매가 월 1000건을 넘었다. 지방엔 청년을 보기도 어렵고 빈집만 계속 늘어난다.

주택 시장의 안정 없이 영끌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정치권이 근본적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국민은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영끌도 그중 하나다. 이런 집값 불안은 저출생과 함께 한국 경제의 구조적 불안 요인이다. 이 문제를 그대로 둔 채로는 한국 경제의 침하를 막기 어렵다.

김동호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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