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록의 은퇴와 투자] 주식 종목 투자의 귀결

2024. 6. 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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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필자는 추첨에 트라우마가 있다. 중학교 때 창원을 발전시킨다고 마산에 있는 초등학생을 창원에 있는 중학교까지 보냈다. 왕복 두 시간을 버스 타고 가는 거리다. 남자 300명에서 2명만 선택되는 희박한 확률에 필자가 당첨된 것이다. 이후 복권이나 로또 근처도 가지 않았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무작위 추첨인데 나는 유독 운이 없다는 생각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계속 잘못된 생각을 갖고 산다. 이를 ‘편향(bias)’이라 한다.

편향은 어림으로 판단할 때 발생한다. 엄지손가락 법칙(rule of thumb)이란 말이 있다. 길이를 잴 때 엄지손가락 한마디를 사용하는 것이다. 자가 없을 때 간편하게 쓰지만 가구를 짤 때 이렇게 했다가는 대형사고가 난다. 우리의 뇌는 편한 길을 찾아 결정을 내리려 하다 보니 서둘러 결론 내리기 좋아하고, 대충의 만족을 추구하며,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쉬운 질문으로 만들어 이해하려 하고, 가까운 경험에 근거해서 의사결정을 한다. 필자도 한 번의 불운한 추첨이라는 경험이 편향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 미국 주식 종목의 기대수익은
단기국채 수익률 정도에 그쳐
수퍼종목 4%만이 수익에 기여
충분히 분산된 지수 투자해야

편향은 일상생활에서 큰 지장을 초래하지 않지만 투자시장에서는 돈의 수익과 직결된다. 투자는 계산과 확률이 지배하고 있어서 어림법이 아닌 합리적 판단이 중요하다.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부를 쌓는 원리인 ‘복리(複利)’만 해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1억원의 돈을 각각 3%와 5%의 수익률로 50년 운용하면 얼마가 될지 어림셈으로 계산해보시라. 답은 4억4000만원과 11억5000만원이다. 투자는 계산을 해보거나 통계를 보아야지 대충 어림잡아 직관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그중 하나가 주식 종목 투자이다.

주식 종목에 오래 투자하면 많은 부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실제 미디어에 보면 그런 사람들이 나온다. 하지만 손쉽게 바로 얻는 정보가 아니라 많은 데이터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의 베셈빈더(Bessembinder) 교수는 1926년부터 90년 동안 미국에 상장된 주식을 조사했다. 이에 따르면 90년 동안 주식이 창출한 부는 전체 종목 중 4%가 이룬 성과였고 나머지 96%의 종목은 수익이 단기국채금리 정도에 그쳤다.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최근 30년의 데이터를 보면 세계적으로 6만 3785개의 주식 종목 중 2.4%만이 부를 창출할 수 있었다. 나머지 97.6% 주식 종목들은 단기국채 수익 정도였고, 이 중 60%는 단기국채보다 못했다.

이유는 주식 종목의 수익률이 오른쪽으로 크게 치우쳐(skewed)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면 소수의 수퍼 종목 수익이 시장 전체의 주식 수익을 결정하게 되며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는 종목이 절반 정도가 된다. 상장 주식 투자가 벤처 투자에 가까워지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충분히’ 분산하지 못하면 주식 시장의 평균적인 수익률도 따라가지 못한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결과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은 둘로 나뉜다. 첫째, 4%의 수퍼 종목을 선택하기 어려우니 충분히 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전적으로 수퍼 종목을 알 수 없으니 이를 보유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모든 종목을 보유하는 전략이다. S&P500이나 나스닥과 같은 시장 지수를 사는 방법이다. 둘째, 96%의 쓸데없는 종목은 버리고 4%의 종목을 보유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종목 찾아 삼만리’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수퍼 종목’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많은 돈을 소수 종목에 투자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편향이 개입된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객관적으로 낮은 확률이지만 내가 할 때는 높은 확률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당첨 확률이 희박한 복권을 사는 이유도 내가 사면 당첨 확률이 높다고 주관적으로 가중치를 두기 때문이다. 주식 종목 투자도 객관적으로 낮은 성공 확률이지만 자신은 높은 확률로 수퍼 종목을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일종의 자기 과신으로 사람이 가진 인지적 편향이다. 이러다 보니 주식 종목 투자는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고위험·저수익의 비효율적인 투자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상가상으로 종목 투자는 행복에도 영향을 준다.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주식 가격이 크게 떨어질 때 자살률이 높아진다(불행해진다)고 한다. 종목 투자의 비경제적 귀결인 셈이다.

의외로 많은 돈을 소수의 주식 종목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나는 수퍼 종목을 뽑을 수 있다’는 관점은 자기 과신에서 비롯된 편향된 생각이다. 객관적 통계를 믿어야 한다. 수익률 분포가 한쪽으로 크게 치우친 주식 시장은 ‘충분히’ 분산해서 갖는 게 답이다. 충분히 분산해야 수익과 행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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