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국민의힘 전당대회, ‘미스터 트롯’ 벗어나려면
7·23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한 나경원·원희룡·한동훈 후보가 지난 23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1시간 간격으로 출마 선언을 할 때 재밌는 풍경이 펼쳐졌다. 저마다 사람을 모아 기 싸움 하는 건 늘 있던 일이지만 이번엔 좀 독특했다. 대세 후보라 불리는 한동훈 후보를 응원하는 숫자가 많았는데, 그 대부분이 장년(長年) 여성이었다. 원희룡 후보 지지자는 종이에 수기로 후보 이름을 써오는 등 급조한 티가 났지만 한 후보 지지자는 준비성도 남달랐다. 흰색 상의로 맞춰 입고 ‘기다렸다 한동훈’ ‘보고팠다 한동훈’과 같은 문구가 쓰인 미니 현수막을 준비해 흔드는 등 일사불란하게 세를 과시했다. 연호 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질 정도로 응원도 열성적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그동안 야권의 전유물이었던 정치인 팬덤이 국민의힘에도 퍼졌다는 걸 눈과 귀로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일부 국민의힘 인사와 취재진의 반응도 흥미로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거 완전 ‘미스터 트롯’이네”라는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다. 유사성이 많은 만큼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장년층과 노년층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 트롯’의 단점도 고스란히 닮았다. 임영웅·영탁·이찬원 등의 출연으로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즌1은 시청률 30%를 넘기며 고공행진했다. 하지만 광고주가 중시하는 타깃 시청층인 2049(20~49세) 시청률은 대부분 10%를 밑돌았다. 트롯 열풍이 사그라진 뒤의 2049 시청률이야 당연히 더 초라하다.
대권·당권 여론조사에서 여권 선두인 한동훈 후보도 미스터 트롯 시청률과 비슷하다. 지난 11~13일 한국갤럽 차기 대권 주자 조사에서 한 후보는 지지율 15%를 기록해 22%를 얻은 이재명 전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문제는 연령대별 지지율 양극화다. 60대(29%)와 70대 이상(31%)에선 선두였다. 그러나 20대는 5%여서 각각 6%인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에도 밀린 4위였다. 30대는 5%로 홍 시장(6%)에 이은 3위였지만 1위 이 전 대표(24%)와의 격차가 컸다.
4·10 총선에서 대패한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명확하다. 미스터 트롯이 낳은 불세출의 스타 임영웅처럼 장년층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청년층에 극호감을 주면야 좋겠지만, 그건 지금으로선 너무 큰 욕심이다. 대신 윤석열 대통령이 승리할 때처럼 2030세대 지지세 회복이 급선무다. 하지만 지금 국민의힘 당권 경쟁은 어떤가. 시즌이 더할수록 인기가 식어가는 미스터 트롯을 따라가는 건 아닐까.
허진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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