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필향만리’] 有若無 實若虛(유약무 실약허)
2024. 6. 27. 00:12
공자 제자 증자는 일찍 죽은 선배 안연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능하면서 능하지 못한 이에게도 묻고, 아는 게 많으면서도 적은 이에게도 물으며, 있어도 없는 듯, 꽉 찼으면서도 빈 듯, 남이 자신에게 잘못을 범해도 지나치게 따지지 않는 것 등을 참 잘하는 친구였다.” 평소 안연은 실속 없이 떠벌이기보다는 속이 꽉 찬 실천을 하면서도 항상 부족한 듯이 겸손했기 때문에 이런 칭송을 들었다.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덩샤오핑(鄧小平)이 1980~90년 무렵에 내건 외교방침은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감출 도, 빛 광, 기를 양, 어두울 회. ‘빛을 감춘 채 어둠 속에서 기른다’는 뜻이다. 드러나지 않게 힘을 기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게 ‘도광양회’한 중국은 후진타오(胡錦濤) 집권 초기부터 ‘화평굴기(和平崛起)’, 즉 ‘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대외전략을 선포했다. 안연처럼 ‘있어도 없는 듯이, 꽉 찼으면서도 빈 듯이’ 겸손하게 실력을 쌓은 후에 무서운 저력으로 G2로 등장한 것이다.
동해에서 석유가 솟으면 좋지! 그런데, 산유국이 될 때 되더라도 아직은 ‘유약무 실약허(有若無 實若虛)’로 도광양회해야 하지 않을까? 미리 들떠서 설레발 칠 일은 아닌 것 같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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