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들이 군침 흘리는 곳, 한남뉴타운 대해부 [스페셜리포트]
경의중앙선 서빙고역 1번 출구에서 나와 반포대교 북단을 지나 10여분을 걸었을까. 낡은 단독주택 밀집지가 눈에 들어온다. 한남뉴타운5구역이다. 사람 여러 명이 다니기도 벅찬 좁은 골목골목 사이로 허름한 공인중개사사무소마다 ‘뉴타운 급매물 투자 상담 환영’ ‘한남5구역 투자 매물 보유’ 등 각종 간판이 걸려 있다. 용산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한남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매물 시세를 문의하는 수요가 꾸준하다. 다만 가격이 워낙 많이 뛰어 거래가 쉽게 성사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로 불리는 서울 용산구 한남뉴타운 개발 사업이 후끈 달아올랐다. 공사비 인상 여파로 대형 건설사들이 재개발, 재건축 정비사업에서 속속 발을 빼고 있지만 이곳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워낙 입지가 좋아 ‘강북 신흥 부촌’으로 손색이 없다 보니 건설사마다 고급 브랜드를 내걸고 시공권 경쟁에 속속 뛰어드는 모습이다. 덩달아 한남뉴타운 일대 부동산이 들썩이면서 강남 못지않은 고급 주거지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건설사 시공권 경쟁 치열해져
건설업계에 따르면 한남뉴타운4구역은 국내 시공능력 1, 2위 건설사인 삼성물산, 현대건설이 시공권을 가져가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최근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포스코이앤씨까지 뛰어들어 3파전 양상이 됐다.
한남4구역은 앞서 5월 말 서울시 건축심의를 통과하며 사업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조합은 7월 중 입찰 공고를 내고 10월경 시공사를 최종 선정할 예정이다.
한남뉴타운5구역은 4구역보다 시공권 경쟁이 더 치열하다. 지난 5월 말 조합이 진행한 시공사 선정 현장설명회에는 무려 10여개 건설사가 참여했다. 삼성물산, 현대건설,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GS건설, HDC현대산업개발을 포함해 호반건설, 우미건설, 금호건설, 한양 등 중견 건설사까지 경쟁에 뛰어들었다. 당초 시공권 확보에 공을 들여온 DL이앤씨 수주가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국내 건설사들의 최대 격전지로 떠올랐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 공사비 인상 여파로 건설사들이 서울 강남권 정비사업조차 수주를 꺼리지만 한남뉴타운은 예외다. 워낙 입지가 좋은 분양 흥행 보증 수표 지역이라 건설사 수주 경쟁이 볼 만해졌다”고 귀띔했다.
한남뉴타운은 서울 용산구 한남·보광·이태원·동빙고동 일대 111만205㎡를 재개발하는 사업이다. 2003년 뉴타운으로 지정됐다. 5개 구역 중 재개발 구역에서 해제된 한남1구역을 제외한 한남2~5구역에서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워낙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사업지다 보니 20여년간 개발 속도가 지지부진하다 최근 들어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한남2~5구역 개발이 순조롭게 마무리되면 총 1만3000여가구 미니 신도시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전체 공사비만 7조원 안팎으로 추정돼 국내 최대 재건축 사업장인 둔촌주공아파트(올림픽파크포레온, 4조3677억원)보다 많다.
입지 좋은 4·5구역 투자 눈길
한남뉴타운 중 사업 속도가 가장 빠른 곳은 3구역이다. 한남동 일대 38만6400㎡ 부지에 최고 22층 높이 아파트 총 6006가구를 신축하는 사업이다. 일찌감치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를 앞세운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정하고 사업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2009년 정비구역 지정, 2012년 조합설립 이후 지난해 6월 관리처분인가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됐다. 참고로 재개발 사업은 ‘정비구역 지정 → 조합설립인가 → 건축심의 → 사업시행인가 → 관리처분인가 → 이주·착공’ 순으로 이뤄진다. 현재 이주 대상인 8700여가구 중 7900여가구가 이주를 마쳤다는 후문이다. 어느새 90%를 넘어섰다.
3구역은 현대백화점을 유치하기로 한 점도 차별화 포인트다. 연내 일반분양을 진행하고 2029년 입주한다는 청사진이다.
한남3구역은 워낙 입지가 좋다 보니 일반분양가가 얼마로 책정될지도 부동산업계 초미의 관심사다. 반포 등 강남권 핵심 입지 아파트 분양가가 3.3㎡당 6000만원대에 달하는 만큼 7000만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앞서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펜타스(신반포15차)’의 일반분양가가 3.3㎡당 6736만원으로 확정됐다.
3구역에 이어 개발 속도가 빠른 곳은 관리처분인가를 준비 중인 2구역이다. 용산구 보광동 일대 11만5005㎡ 부지에 아파트 31개동, 1537가구가 들어선다. 다른 구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합원 수가 적어 일반분양 비율이 45%로 높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만큼 사업성도 높다. 대우건설은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한 ‘한남써밋’을 단지명으로 정했다.
다만 변수는 있다. 대우건설은 2022년 시공사 선정 당시 고도 제한 완화를 통해 3구역 아파트 단지 층수를 14층에서 21층(118m)으로 높이는 이른바 ‘118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재정비촉진지구로 묶인 한남뉴타운은 남산 경관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해발 고도 90m 이하 높이 제한을 받는다. 하지만 서울시가 고도 제한 완화에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대우건설이 ‘프로젝트 이행이 미흡할 경우 공사비에서 물가 인상률을 차감하고 착공 기준일을 유예하겠다’는 보상안을 발표해 당장은 시공사 해지 위기에서 벗어난 상태다. ‘118프로젝트’ 가능 여부는 오는 8월 말까지 판단하기로 했다.
시공사 선정 경쟁이 뜨거운 한남5구역은 한남뉴타운에서 입지가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남뉴타운 내 다른 구역이 대부분 언덕 지형인 것과 달리 평지인 데다 한강과 맞붙어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5구역은 동빙고동 일대 18만3707㎡ 부지에 지하 6층~지상 23층, 총 51개동, 2592가구 대단지가 들어선다. 특히 한남뉴타운 중 한강 조망이 가능한 가구 수가 가장 많은 데다 용산공원과도 인접해 한남뉴타운 내에서도 ‘노른자위’로 손꼽힌다.
한남4구역도 5구역 못지않게 투자 가치가 우수하다는 평가다. 4구역은 경의중앙선 서빙고역과 한남역 사이에 위치한 노후 저층 주거지 밀집지역이다. 용산구 보광동 360 일대 부지에 용적률 226.98%, 건폐율 30.89%를 적용받아 지하 7층~지상 22층, 51개동, 2331가구 규모로 조성된다. 공공임대주택 350가구를 제외한 1981가구가 일반분양 물량이다. 조합원 수가 1166가구에 불과해 사업성이 좋다.
서울시 건축위원회는 한남4구역을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해 창의적인 디자인이 도입되도록 유도했다. 구릉지형 대지 특성을 활용해 연도형 근린생활시설(상가)을 데크에 배치한 점이 눈길을 끈다. 남산 경관과의 조화를 위해 단지 중앙 부분은 높고, 남측 한강변과 동서측으로 낮아지는 스카이라인을 형성했다. 공사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5구역(3.3㎡당 916만원) 수준으로 계산해보면 1조5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한남4구역을 추천한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한남4구역은 남산 경관 아래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입지가 가장 큰 강점이다. 일반분양 비율이 높아 사업성이 좋은 만큼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한남뉴타운 구역 해제된 1구역은 서울시 신속통합기획 재개발을 추진 중이다. 용산구 이태원동 730번지 일대 면적 5만3350㎡에 지하 4층~지상 25층, 총 10개동, 약 1000가구를 조성하려는 사업이다.
소형 빌라도 20억 훌쩍…분담금 따져봐야
그렇다면 강북 부촌으로 탈바꿈하는 한남뉴타운에 지금 투자해도 괜찮을까. 전문가들은 한남뉴타운 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워낙 가격이 많이 뛰어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고 내다본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한남5구역에 속한 전용 85㎡ 빌라가 최근 24억원에 주인을 찾았다. 대지지분 41㎡짜리 매물이다. 지난해 3월까지만 해도 비슷한 규모인 전용 78㎡(대지지분 43㎡) 빌라가 20억원에 거래된 점을 감안하면 1년 만에 매매가가 4억원이나 뛰었다. 5구역의 대지지분 113㎡ 연립주택 시세는 40억원 수준으로 훨씬 높다. 한남2구역 66㎡ 단독주택은 22억원에 매물로 나와 있다. 전용 84㎡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주택이다. 정리해보면 전용 84㎡ 아파트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매물은 20억~25억원, 전용 101㎡ 이상 입주권이 가능한 매물은 30억~40억원 수준이라는 것이 일대 부동산업계 분석이다.
용산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워낙 입지가 좋아 매수 수요가 꾸준하지만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이 변수다. 소형 빌라 매매가가 20억원을 웃돌다 보니 대출 부담이 적은 수요자들이 주로 찾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덩달아 한남뉴타운 주변 아파트도 매매가가 뛰는 모습이다. 한남2구역 인근에 위치한 ‘이태원청화아파트’ 전용 106㎡가 최근 21억9000만원에 손바뀜돼 신고가를 경신했다. 1월 매매가(19억7000만원) 대비 2억원 올랐다. 1982년 입주한 이 단지는 2009년 재건축추진위원회를 세우고 2014년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했다. 오랜 기간 사업이 주춤하다 지난해 11월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한 후 재건축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한남3구역 남쪽에 위치한 ‘한남힐스테이트’ 전용 151㎡도 최근 25억5000만원에 주인을 찾으면서 신고가를 경신했다. 2020년 12월 매매가(21억원) 대비 4억5000만원 오른 금액이다. 2003년 입주한 283가구 소규모 단지다.
한남뉴타운이 완공되면 인근 고급 단지인 한남동 ‘나인원한남’ 실거래가에 근접하지 않겠냐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나인원한남 전용 206㎡(75평)는 최근 103억원에 거래되며 종전 최고가(99억5000만원)를 돌파했다. 3.3㎡당 1억3700만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한남뉴타운 투자 수요가 몰리지만 ‘묻지마 투자’는 금물이다. 지나치게 오른 가격에 매입했다 수억원대로 예상되는 추가 분담금까지 감안하면 제대로 된 수익을 내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개발 초기 단계인 만큼 입주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도 변수다. 가장 사업 속도가 빠른 3구역조차 빨라야 2029년 입주가 가능할 전망이다. 다른 구역은 입주까지 적어도 10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랜 기간 버틸 수 있는 자금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투자할 때 주의할 점도 많다. 재개발이 진행될 때 잠시 거주할 대체주택을 매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 거액의 양도세를 내야 할 수 있다. 대체주택은 재개발 지역의 기존 주택이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후 취득해야 양도 시 비과세를 적용받을 수 있다. 만약 대체주택을 정비구역 지정이나 조합설립 시점에 취득하면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대체주택 양도 시 비과세 특례를 적용받으려면 대체주택 취득 당시 1주택자여야 하고, 대체주택에선 가구원 전원이 1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한남뉴타운은 초기 투자금이 10억원 넘게 필요한 재개발 구역이라 시세차익용 투자보다는 실거주 차원에서 ‘똘똘한 한 채’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재건축과 달리 재개발은 같은 구역 내에 있더라도 매물마다 사업성이 천차만별이라 예상 분담금을 잘 따져봐야 한다. 이미 가격이 많이 뛰어 실제 투자 수익률은 떨어질 수 있는 만큼 투자금이 비교적 적은 지분을 매입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 의견은 눈길을 끈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5호 (2024.06.26~2024.07.0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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