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명 증원, 대통령 뜻 아니냐”…청문회서 여야 책임 공방
국회가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 정책의 근거와 추진 과정에 대한 검증에 나섰다. 야당은 ‘2000명’을 산출한 근거가 미흡하다고 짚었다. 또 그 배후에 대통령실이 있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반면 여당은 의대 증원이 필수·지역의료를 해소하기 위한 취지라며 정부 엄호에 나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6일 의료계 비상 상황에 대한 청문회를 실시했다. 정부 측에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박민수 복지부 2차관 등이 증인으로 참석했고, 의료계 측에선 강희경 서울대 의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과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 등이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야당은 2000명이라는 숫자가 나오게 된 산출 근거와 과정이 명확하지 않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복지위 위원장인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00명이 필수불가결한 숫자였다면 어떻게 2개월 만에 4분의 1인 500명을 확 줄일 수 있나”라며 “비과학적이고 주먹구구식으로 숫자를 선정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실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윤 대통령이 지난 2월1일 민생토론회에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언급한 지 닷새 만에 복지부가 2000명 증원 규모를 발표했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보건의료인력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이견이 나왔는데도 장관은 (2000명 증원안을) 1시간 만에 군사작전 하듯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며 “대통령의 뜻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 질타했다.
남인순 민주당 의원도 “의대 증원 이야기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이후 갑자기 총선을 앞두고 2월에 나왔다”며 “정치적인 의도가 있지 않나 하는 문제 제기가 있다”고 말했다. 서미화 민주당 의원 역시 “‘채상병 사망 사건’ 조사 과정에서 나오는 것처럼 윤 대통령이 의료계 패싱, 국민 패싱하라는 외압이나 지시를 했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서영석 민주당 의원은 “2000명 근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도 누가, 언제, 왜 2000명을 결정했는지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이라며 “오죽하면 총선용이라거나,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논란을 덮기 위한 물타기다, 심지어는 천공 이름이 ‘이천공’이라서 2000명을 결정한 것이라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다”고 비꼬았다.
야당은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의 책임을 대통령실도 피해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남희 민주당 의원은 “윤 대통령에게 의사들의 파업, 휴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나”라고 물었다.
이에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의대 증원을 포함한 의료개혁과 관련해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기 때문에 (윤 대통령과) 논의 내용 중 당연히 의료계 반발도 있었다”고 시인했다. 이어 “의사 증원에 대해 의료계의 반대가 심했고, (이전에도) 여러 차례 집단행동을 한 전례가 있다”며 “이번에도 집단행동이 예견됐고, 이에 따라 비상진료를 추진했다”고 전했다.
다만 대통령실에 보고는 했지만, 증원 규모는 관련 법에 따라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조 장관은 “2000명은 복지부 장관이 관련 법에 따라 결정한 사항”이라며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전에 2000명을 ‘오늘 올려서 논의하겠다’고 사회수석실에 연락을 했다”고 말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처음엔 복지부가 400~500명 수준으로 논의했지만 용산과의 협의 과정에서 2000명까지 확대됐다고 한다”라며 사실 여부를 따져 묻는 질문에도, 조 장관은 “전혀 사실이 아니고 잘못된 소문”이라고 일축했다.
여당은 정부를 엄호하기 바빴다.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은 “1만명이든 2만 명이든 국민들에게 의료 공백이 발생한다면 (의대 정원) 수는 얼마든지 늘려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정원 확대 사안은 노인 인구 증가 같은 인구 구조의 변화를 고려해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을 뒷받침하는 근거 역시 부실하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부도 개혁 의지를 가지고 의대 증원을 시도했다. 당시 추계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과거 의약분업 때 감원됐던 351명에 의사과학자 정원 50명을 합해 400명이 적정하겠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문 정부의 의대 증원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박민수 차관은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답했다.
안 의원은 “(윤 정부의) 2000명 증원 규모는 사회과학적인 방법론에 입각해 결정한 것”이라며 “이 논문들을 보면 개량경제학적 방법론에 입각해 보건경제학에서 얘기하는 의사 증원 규모를 토대로 도출했다”며 정부에 힘을 실었다.
아울러 이날 청문회는 정부와 임현택 의협 회장이 의정 갈등 이후 처음으로 직접 대면하는 자리라는 점에서도 이목이 쏠렸다.
임 회장은 청문회가 진행되는 내내 정부를 향해 날을 세웠다. 그는 ‘의료공백 사태 장기화에 대해 의료단체 수장으로서 국민께 사과할 의향이 있냐’는 질의에 “현 사태는 의사들이 만든 게 아니다. 시스템이 멀쩡하게 잘 돌아가고 있었는데 복지부 차관, 복지부 공무원들이 (의료공백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정부와 소통에 나서기 어렵다고도 했다. 임 회장은 “지금까지 복지부는 의협과 의사들을 범죄자, 노예 취급했다. 저도 압수수색을 두 번이나 당했고 거의 10시간 가까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정상적인 대화가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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