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院)구성 투항 해놓고 내부 밥그릇 싸움 벌이는 與 [현장에서]

이창훈 2024. 6. 26.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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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위 보이콧’ 2주 만에 원내 투쟁을 명분으로 국회에 빈손 복귀한 국민의힘이 ‘원내대표 사의 표명’이라는 극약처방에도 사흘째 어수선하다. “더불어민주당의 폭주를 막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국회 부의장과 상임위원장 등 주요 보직을 둘러싼 물밑 힘겨루기만 한창이다. 초·재선들도 특정 상임위를 기피하고, 표에 도움되는 곳에 가려고 눈치싸움을 벌였다. 이런 통에 25일 오후 국회에 상임위 최종 명단을 제출하기 전까지 명단이 수차례 바뀌었다. 너도 나도 밥그릇 싸움에 몰두하는 게 '소수 집권 여당'의 현 주소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뒤 '국회 정상화를 위한 대국민 입장 발표'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①경선 꼼수 = 국회의장단에서 거대 야당의 폭주를 저지해야 할 여당 몫 국회부의장 선정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국민의힘 최다선(6선)인 주호영·조경태 의원이 상·하반기를 나눠 차례로 부의장직을 맡기로 했으나, 박덕흠 의원(4선)이 돌연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25일 출마 선언 때 “국회의장이 5선이니 옷을 맞춰 입으면 좋겠다”며 “6선 부의장은 골목상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주호영·박덕흠 의원 간 당내 경선은 26일 치러진다.

박 의원은 한 술 더 떠 2년으로 돼있는 부의장 임기를 1년으로 하자는 법안을 같은 날 발의했다. 그는 “다수의 중진 의원이 부의장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제안 이유를 들었다. 의장은 2년 임기로 두되 2명의 부의장만 임기를 단축해, 총 8명의 의원이 4년간 돌아가면서 부의장직을 나눠 맡자는 것이다. 국회의 오랜 관행을 깨는 법안 발의에 당내에서조차 “국회의장과 임기를 같이하는 국회법 취지와도 맞지 않는 경선용 자리 나눠먹기 법안”(재선 의원)이라는 쓴 소리가 나왔다.

②우왕좌왕 = 2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는 민주당이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방송 3법’ 등 현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정면 대결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회의 시작 2시간 전에 국민의힘 과방위 간사가 배현진 의원에서 최형두 의원으로 교체됐다. 간사는 해당 상임위에서 소속 정당의 전략을 진두지휘하는 자리다. 이웃한 지역구(서울 송파갑·을)의 박정훈·배현진 의원이 동시에 과방위에 배치된 게 발단이었다. 결국 배 의원은 문화체육관광위 간사로 보임했고, 급히 투입된 최형두 의원이 이날 회의를 지휘했다.

같은 날 또 다른 전장이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상임위 직후 선수가 교체됐다. 검사 출신의 박형수 의원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위원회로, 변호사 출신인 우재준 의원은 환경노동위원회로 옮겼다. 대신 비례대표로 5선 고지에 오른 판사 출신의 조배숙 의원과 원내대변인인 박준태 의원이 법사위로 옮겼다. 원내 관계자는 “박형수 의원이 법사위 배정에 반발해 연쇄 이동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오른쪽)이 지난 25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4차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위원장을 향해 간사 선임부터 해야 한다며 의사일정 진행 관련 항의를 하고 있다. 왼쪽은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간사. 전민규 기자.


이토록 우왕좌왕한 것은 산자위·정무위 등 선호 상임위와 과방위·법사위 같은 기피 상임위에 대한 수요 공급이 안 맞아서다. 당 곳곳에선 “명단이 몇번 바뀐 지 모르겠다”(비례 의원), “가뜩이나 어려운 법사위에 법조인마저 기피하면 누가 가느냐”(중진 의원) 같은 탄식이 이어졌다.

③외통위원장 경선 = 국민의힘 몫의 7개 상임위원장 중 외교통일위원장을 두고 유일하게 경선이 이뤄진다. 원내 지도부가 물밑 조율을 시도했지만 4선의 안철수 의원은 3선 때 상임위원장을 맡지 못했다는 이유로, 3선의 김석기 의원은 외통위 간사 출신의 전문성을 내세워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지도부 관계자는 “일하겠다고 상임위 복귀를 선언했는데, 위원장직을 두고 경선까지 하면 국민이 어떻게 보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의힘의 초선·재선·중진 의원들은 26일 추경호 원내대표를 재신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추 원내대표는 24일 원 복귀 선언 당시 사의를 표하고 잠행 중이다. 27일 의원총회에서 추 원내대표의 국회 복귀를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원내대표 복귀 요청의 명분은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추 원내대표를 필두로 당의 원내 전략을 재정비하겠다는 것이다. 그 전에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막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각자의 사심을 내려놓자고 뜻을 모으는 게 먼저가 아닐까. 뜻을 모으지 못할 거면, 최소한 눈살을 찌푸리게는 안 하는 게 국민을 향한 예의다.

이창훈 기자 lee.changh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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