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 통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소준섭 기자]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 법무부는 개정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일명 검수완박)을 검찰청법 시행령 개정을 통하여 무력화시켰다. 본래 '검수완박' 법률은 검찰 직접 수사 개시 범위를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대형참사)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로 축소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법률에는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한 범죄에 대해 '부패·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고 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하의 대통령령은 이 규정의 '중요 범죄'에 '사법질서 저해 범죄'를 끼워 넣었다. 검찰의 직접 수사를 금지한 상당수 범죄를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 안에 포괄적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이로써 '검수완박' 법률은 껍데기만 남게 되었고, 검찰 수사의 범위는 완벽하게 '복원'되었다.
윤석열 정부는 또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경찰 조직을 행정안전부 산하 '경찰국'으로 예속시켰다. 최근에는 KBS 시청료 분리 징수까지 시행령으로 강행하였다. 시행령은 부자들을 위한 특혜 제공에도 유감없이 남발되었다. 현 정부 출범 직후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1년간 배제하였고, 종합부동산세법 시행령도 고쳐 주택분 종부세 공정시장가액 비율을 100%에서 60%로 낮췄다. 그런가 하면 기업 지배구조 규제 완화도 폭넓게 이뤄져 대기업의 정경유착과 경영권 세습 등을 제한하겠다는 목적으로 국회가 법률로 강화한 공정거래법과 상법을 시행령 개정을 통해 크게 완화하였다.
그리해 "시행령 통치"의 시대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무회의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시행령을 활용할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면서 시행령 통제에 대한 국회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요구권을 갖는 것은 위헌 소지가 좀 많다"며 위헌 발언까지 하였다.
법률에 따르지 않는 시행령은 위헌이고 위법
그러나 국회가 시행령을 통제하려는 것은 전혀 위헌이 아니다. 오히려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따르지 않은 시행령이야말로 위헌이며 위법하다.
행정명령 제정권이란 국회의 입법권과 대등하게 볼 수 있는 행정부의 고유권한이 아니다. 헌법 제75조는 대통령령과 같은 행정명령이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에 대해 제정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행정부의 행정명령 제정권은 국회가 법률에 의해 위임할 때 위임해 준 범위 내에서만 성립하는 '파생적 권한'에 불과하다.
의회가 제정한 입법을 정부가 법률의 하위 개념에 지나지 않는 시행령으로 무력화시키는 것은 의회의 존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이는 민주주의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의 모든 국가들은 당연히 시행령이라는 이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미국 헌법은 제헌 때부터 '의회에 의한 입법권의 위임금지 원칙'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성문헌법상 현재까지도 이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위임입법이 불가피한 현실로 등장함에 따라 '행정절차법'을 제정하여 새로운 시대에 대처하고 있다. 이러한 행정입법에 대하여 미국 연방의회는 행정입법이나 명령을 거부하는 '입법적 거부'가 차다(Chada) 판결을 거쳐 논란이 발생한 뒤인 1996년에 '의회심사법(Congressional Review Act)'에 토대한 행정입법 의회심사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해 오고 있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는 행정입법이 발효하기 60일 전에 연방의회와 연방의회 산하 GAO(의회 회계감사원)에 행정입법안을 제출하고 회계감사원이 연방의회에 검토보고서를 제출한 후, 상하 양원의 의결로 행정입법에 대한 공동불승인 결의(Joint Resolution)를 할 수 있으며 이를 대통령에게 송부하여 서명까지 받도록 하고 있다. 1996년 이후 2015년까지 20년간 총 여덟 건의 사례에 대하여 연방의회가 공동불승인 의결을 하였다. 즉, 양원의 행정입법에 대한 공동불승인 결의로 행정입법에 대한 강제력을 지닌 강력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특히 과거 바이마르 헌법의 위임입법 조항을 통하여 히틀러에게 독재의 길을 열어준 악몽에 대한 반성으로 제2차 대전 이후 제정된 기본법에서 엄격한 위임입법 조항을 설치하였다.
독일기본법 제80조 제1항은 "법률에 의하여, 연방정부, 연방장관 및 주정부는 법규명령을 발하는 권한이 부여된다. 이 경우, 부여되는 권한의 내용, 목적 및 정도는 법률에 규정되어야 한다. 명령에는 그 법적 근거가 제시되어야 하며, 법률이 권한을 다시금 양도할 수 있음을 규정하는 경우에는 권한의 양도에 법규 명령을 필요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위임의 조건(명확성의 원칙)은 대단히 엄격하여 실질적으로 위임금지 원칙을 채택하는 것과 다름없다. 독일 대다수 학설은 원칙적으로 외부 법규로서의 행정입법은 독일기본법 제80조의 한계 안에서만 존재하며, 명시적 수권이 없는 외부 법규로서의 행정입법은 허용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독일의 행정입법에 대한 통제의 수단으로는 동의권 유보와 변경권 유보 그리고 취소권 유보가 있다.
동의권 유보란 법규명령의 제정 전에 연방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동의권 유보는 명시적으로 의회가 결의의 형식으로서의 동의가 필요한 것과 일정 기간이 경과한 뒤에는 동의를 받은 것으로 의제(擬制)되는 것으로 구별된다. 독일 행정입법의 약 40%가 의회의 동의를 거쳐 처리되고 있다. 의회가 동의를 거부하면 행정입법의 제정절차는 종결된다(우리나라도 2000년에 현행 국회법 제98조의 2의 도입 시에 동의권 유보가 검토된 바 있지만 정부의 반대로 현재와 같은 대단히 취약한 형태의 행정입법의 국회 제출 및 위법통보 제도만 도입되었다).
변경권 유보란 연방 의회가 법규명령이 제정된 뒤에 그 변경을 법규명령 제정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이 제도는 독일 의회에서만 인정되는 통제수단으로서 의회 스스로가 단순한 거부로 문제 해결을 지연시키기보다 행정입법에 대한 행정부와 의회가 같이 행정입법 제정에 참여하게 된다는데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취소권 유보는 법규명령이 제정된 뒤에 연방의회가 그것을 취소할 수 있거나 그 취소를 법규명령 제정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시행령 통치'의 종식, 22대 국회의 중요한 과제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 국회는 이 시행령에 대해 무력할 뿐이다. 현행 국회법은 대통령령 등이 법률 취지와 맞지 않으면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 정부에 '개정의견'을 송부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강제력이 전혀 없어서 정부가 수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법률에 따르지 않는 시행령이 속출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이다.
시행령과 관련하여 타이완의 입법원은 '입법원직권행사법(立法院職權行使法)'에서 "행정명령은 심사 후 법률에 위반, 변경 혹은 저촉될 경우 입법원회에 보고하고 결의를 거쳐 해당 기관에 정정 혹은 폐지할 것을 통지한다. 해당 기관이 2개월 내에 정정 혹은 폐지해야 한다. 해당 기관이 기한을 넘기고도 정정 혹은 폐지하지 않을 경우 해당 명령은 효력을 상실한다"고 대단히 명쾌하게 규정하고 있다. 우리 국회로서도 좋은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기본적으로 법률을 최대한 세밀하게 규정하여 시행령에 위임하는 것을 최소화함으로써 시행령을 자의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지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전 국회에서도 시행령 통제를 목적으로 한 법률안이 몇 차례에 걸쳐 발의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민주당조차 이에 적극적이지 못하고 주저하면서 끝내 진전을 보지 못했다. 지난 총선 결과는 확실하게 민주주의를 지켜달라는 국민들의 뜻이 반영된 것이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는 법률에 명확하게 위배되는 자의적인 시행령을 반드시 통제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시행령 통치"를 종식시켜야 한다. 이는 22대 국회의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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