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수익률보다 물가가 더 높아”…30년 뒤 결과는
10년간 수익률 2.07%...물가 상승률보다 낮아
“다른 나라 7% 수익률 낼 때 우리는 2% 불과”
우리나라 퇴직연금을 굴리는 사업자(민간 금융기관)의 낮은 운용 수익률은 한국 퇴직연금의 고질적 문제로 꼽힌다. 낮은 수익률 때문에 적립 금액이 많지 않다 보니 퇴직자가 연금으로 수령하는 경우가 적고 대부분 일시금으로 찾아간다. 현재 우리나라 퇴직연금이 은퇴 뒤 노후 최소 생활비를 보장하는 진정한 의미의 퇴직연금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최근 5년과 10년간 연 환산 수익률은 각각 2.35%, 2.07%에 그쳤다. 그나마 이 정도 수익률을 기록한 것은 지난해 주식시장 강세 덕분에 전년(0.02%) 대비 수익률(5.25%)이 회복한 덕분이었다. 이는 국민연금 수익률과 비교하면 더욱 비교되는 수치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국민연금의 5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7.63%로 기록됐다. 해외 주요 국가 퇴직연금 수익률도 통상 7%가 넘는다.
DB형은 회사가 민간 금융기관과 계약해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운용책임은 회사가 부담하며 운용실적에 따라 회사의 퇴직급여 지급 부담금이 달라진다. 반면 DC형은 노동자 개인이 민간 금융기관(퇴직연금 사업자)과 계약해 직접 투자상품을 선택하고 운용한다. 개인이 투자상품을 결정하는 만큼 급여가 같아도 운용실적에 따라 최종 퇴직연금 금액은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DB형·DC형 모두 퇴직연금 운용과정에서 투자 정보가 부족한 가입자(회사 혹은 근로자 개인)가 민간 금융기관과 계약해 스스로 다양한 투자상품 중 투자할 곳을 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투자 전문가에게 투자를 일임하는 국민연금과 대비된다. 위험성과 변동성 높은 실적 배당형 상품에 투자했다가 원금마저 잃을 수 있다는 위험 때문에 대부분은 원리금 보장형에 장기간 방치해놓기 일쑤다. 그 결과 수익률은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
고려대 고령사회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는 김태일 행정학과 교수가 계산한 결과에 따르면 퇴직연금의 5%포인트 수익률 격차는 은퇴 후 퇴직연금 자산 규모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 예컨대 월 급여 400만원인 사람이 30년간 퇴직연금에 가입한다고 가정할 때, 수익률이 2%면 원리금은 1억6000만원에 머문다. 반면 수익률이 7%면 원리금이 4억원이 넘는다. 2배를 뛰어넘는 차이다.
김 교수는 낮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야기하는 기회비용이 만만찮다고 지적한다. 가입자 잠재 손실액을 따져보면,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이 300조원이라고 가정할 경우 수익률이 2%면 수익은 6조원에 그친다. 하지만 수익률이 6%면 수익은 18조원으로 격차는 12조원으로 늘어난다.
매년 복리로 누적된다고 가정하면 차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김 교수는 2017년 초 150조원 정도였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해서 2021년까지 5년간 6% 수익률을 달성할 경우를 가정했다. 이때 2022년 적립금 규모는 5년간 2% 수익률을 기록할 경우와 비교해 60조원이 더 많아졌을 것으로 추산됐다.
퇴직연금 적립금이 비교적 적을 때도 수익률 차이에 따른 가입자 잠재 손실액은 큰 편이다. 하지만 적립금이 계속 쌓이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낮은 수익률을 방치할 경우 가입자 누적 잠재 손실액은 엄청나게 급증할 것이라고 김 교수는 비판했다.
실제로 퇴직연금 제도 시행 1년 후인 2006년 1조원에 못 미쳤던 퇴직연금 적립금은 10년 뒤인 2016년 147조원으로 늘었다. 이후 2018년 190조원, 2020년 256조원, 2022년 336조원, 2023년 382조4000억원 등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올해 1분기는 385조7000억원에 달한다. 김 교수는 “퇴직연금 목표 수익률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겠으면 그냥 국민연금공단에 퇴직연금 운용을 맡기는 것이 낫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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