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과 정상회담 평가
글‧최은주 세종연구소 한반도전략센터 연구위원
2024년 6월 18일과 19일 1박 2일 예정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는다고 발표하였다. 6월 19일 새벽 북한에 도착한 푸틴 대통령은 이후 카퍼레이드, 환영행사, 확대정상회담, 단독회담, 산책, 공연 관람 등 2019년에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방문했을 때와 거의 유사한 구성으로 방북 일정을 소화하였다. 이에 더해 북한은 푸틴 대통령에게 김일성 훈장을 수여하여 이번 정상회담과 새로운 조약 체결의 결과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북에서 북한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연방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하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체결하여 2023년 하반기부터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밀착 관계를 공식화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약에는 정치, 경제, 군사 및 사회·문화 등 전 부문에 걸친 협력 사안들에 대해 매우 구체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의 내용뿐만 아니라 2023년 하반기부터 진행되어 왔던 북한과 러시아 간의 교류 현황들을 검토해 보고 향후 북한과 러시아 간에 진행할 협력 사업들과 추진 가능성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의 격상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이목을 끌었던 것은 북러관계의 격상이었다. 이번 회담을 통해 2000년에 맺은 ‘조로 친선, 선린 협조조약’을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으로 대체함으로서 기존의 친선과 선린의 관계에서 한층 더 밀접한 외교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이러한 관계의 변화는 방북 전 북한 매체를 통해 공개된 푸틴의 기고문과 북한측의 환영 사설에서 이미 예고되었다. 기고문에서 푸틴 대통령은 북러관계의 역사적 과정을 설명하면서 현재 ‘다방면적인 동반자관계’를 적극 발전시켜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노동신문에 게재된 푸틴 대통령의 방북 환영 사설에서도 이번 방북의 의미에 대해 ‘조로선린우호관계’를 새로운 높은 관계로 발전시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관계 강화는 북한과 러시아 간의 공유된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과 지향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기적인 정세의 변화에 따른 반응이라기보다는 장기적인 협력 관계를 구축한 것에 가깝다고 판단된다. 공개된 조약의 내용에 따르면 북한과 러시아의 새로운 관계는 “미래지향적인 새시대 국가간 관계를 구축하려는 공동의 지향과 념원”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다극화된 국제적인 체계를 수립”하려는 지향을 확인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과 러시아는 이번 조약의 제2조에서 최고위급 회담을 비롯한 대화와 협상 등을 통해 상호 긴밀한 의사소통을 유지하고 전략전술적 협력을 강화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혀 향후 소통 채널 또한 제도화하였다.
군사협력의 공식화
이번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에서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것은 북한과 러시아 간 자동군사개입의 가능성이다. 이번 조약의 제4조에서 북한이나 러시아가 전쟁상태에 처했을 경우 상대 국가는 유엔헌장 제51조와 북한 및 러시아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소련 시절 북한과 체결했던 조·소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의 제1조에 명시했던 내용과 상당히 유사하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또한 베트남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관련 질문에 대해 기존 조약에서 더 나아간 점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조약에서 제4조뿐만 아니라 제3조를 함께 고려한다면 자동군사개입이 이루어지는 데에 있어서 필요한 조건이 제시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제4조에서도 유엔헌장 제51조와 북한 및 러시아의 국내법 조항에 준해야 한다는 내용을 추가했을 뿐만 아니라 제3조에서는 평시에 북한과 러시아 중 한 국가에 침략의 위협이 조성되는 경우에는 상호 제공할 수 있는 실천적 조치들을 합의할 수 있도록 협상통로를 즉각적으로 가동시킨다고 명시하였다. 즉, 위험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양국은 향후 행동에 대한 협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다만, 조약의 제8조에서 양국은 방위능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공동조치들을 취하기 위한 제도들을 마련한다고 밝히고 있어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군사협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고려한다면 북한과 러시아는 어느 시기보다 군사 협력의 수준을 높여나갈 가능성과 함께 상징적일지라도 전쟁 위기 시에는 사전 협의 조항을 통해 자동적인 군사개입에 대한 제어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볼 수 있다.
북러 간 교류 협력 사업의 제도화
기존의 북한과 러시아 간의 조약이나 공동 선언에서도 다양한 부문에서 교류 및 협력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으나 총론적인 수준에 그쳤다면 이번 조약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협력 부문들을 명시하고 있다. 관련하여 푸틴 대통령의 노동신문 기고문에서도 과학, 관광, 문화 및 교육, 청년, 체육, 무역 등에서 교류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부문별 논의가 사전에 이루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작년 7월부터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서는 30여 차례의 인적 교류가 이루어졌는데 구체적으로는 군사부문뿐만 아니라 경제, 체육, 지방, 청년, 문화, 교육, 보건 및 과학기술 등 전 부문에 걸쳐 진행되었다. 특히 올해 3월에 북한의 윤정호 대외경제상이 정부경제대표단을 이끌고 러시아를 방문한 바 있어 실무 차원에서 교류협력사업에 대한 사전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조약에 담긴 경제 관련한 협력 사업들은 경제 문제의 해결이 시급한 북한측의 입장이 다수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9년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정면돌파전을 선언하고 더 이상 북미관계 정상화와 국제사회 대북 제재의 완화 및 해제를 기대하지 않고 조성된 난관을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2020년에 코로나19에 따른 국경봉쇄는 기존의 대북제재와 반복적인 자연재해의 피해에 더해 북한의 경제적 여건을 악화시켰다. 2023년 말 개최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밝힌 바와 같이 방역 조치의 지속, 대북제재와 식량난으로 어려운 여건에서 경제를 운영해야 했었다는 언급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은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2021년 조선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제기한 평양의 주택 건설, 2021년 말에 발표한 농촌발전전략에 따라 즉각적으로 착수한 농촌 지역 주택 건설사업, 2024년에 발표한 지방발전 20×10 정책에 따른 지방공업 현대화 사업까지 경제 관련 정책들을 광범위하게 추진하고 있다. 2023년에 북한은 경제 분야에서 괄목한만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발표했지만 상대적으로 더욱 방대해진 경제정책들을 성과적으로 추진하려면 대외경제관계를 확대시킬 필요성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와 북한이 교류협력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조약에 명시한 것은 러시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와 북한의 경제 회복 및 발전에 대한 요구가 일치된 결과인 것으로 판단된다.
유엔의 대북제재 무력화와 경제협력사업 확대
향후 북한과 러시아가 추진할 교류협력 사업은 크게 다섯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교역이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약에서는 양국의 발전권을 옹호하기 위한 정책과 조치들을 상호 지지한다고 밝혔는데,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의 생존권과 발전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해 왔던 점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서는 유엔 제재를 준수하지 않을 것임을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푸틴 대통령의 방북 이전에 발표한 기고문에서도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상호결제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조치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혀 현재 유엔 대북 제재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며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논의에서도 반대의견을 밝힐 것임을 명확히 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과 러시아는 이번에 두만강 교량 건설에 대한 협정을 체결하여 교역 확대에 필요한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부터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로 인적 교류, 특히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파견이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입장에서 대북 제재하에서도 각종 물품들을 수입하기 위해서는 외화 확보가 중요해지는데, 북한의 해외노동자 파견 금지는 이를 막기 위한 대북제재의 주요 사항이었다. 북한의 해외노동자 귀국 시한이 2019년 12월이었으나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러시아 등에 잔류하였고 이후에도 노동력 부족 문제에 직면한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제재를 우회하여 북한 노동자들을 활용해 왔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번 조약에서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대북제재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그 규모는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이와 같이 북한이 러시아를 통해 대북제재의 대상이 되는 각종 물자들을 조달하고 노동력 파견을 통해 외화를 확보하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대북제재의 효과는 지금보다 더욱 약화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로, 국경지역을 중심으로 각종 경제협력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조약에서는 지역 간 및 변경지역에서의 협력사업을 지지하며(제11조) 특별 또는 자유무역지대와 관련 단체들에 협조를 제공한다고 밝히고 있다(제9조). 이미 2023년 12월과 2024년 3월에 러시아의 연해주정부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여 경제협력의 수준을 높이는 것과 관련하여 김덕훈 내각총리와 윤정호 대외경제상 등과 논의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북한의 나선시 인민위원회 대표단이 연해주 지역을 방문하는 등 연해주 지역을 중심으로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교류협력사업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다. 협력 방식과 관련해서는 지역 간에 기업포럼, 토론회, 전시회, 상품전람회 등을 개최하여 경제 및 투자 협력을 위한 상호 이해 수준을 촉진시킨다고 밝히고 있어 제재 하에서도 추진가능한 사업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2019년 이후 중단된 나선국제상품전시회를 재개하고 2023년부터 재개된 국제상품전시회를 확대된 수준과 규모로 개촤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네 번째로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과학기술협력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과학기술강국의 건설’을 강조하면서 사회 전 부문, 특히 경제부문에서 첨단과학기술에 기반한 발전을 강조하였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 관련 예산을 확충해 왔고 올해부터는 경제부문에서 독립하여 별도로 편성하고 있다. 동시에 대외경제관계에서도 과학기술교류협력을 장려하고 있으나 대북제재로 실질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북한은 정보기술, 나노기술, 생물공학 등과 같은 핵심기초기술과 신소재, 에너지, 우주기술 및 핵기술 등 파급력이 강한 과학기술분야를 핵심 분야로 선정하고 있는데 이번 조약에서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교류 및 공동연구를 추진할 분야로 우주, 생물, 정보기술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두번째 북한과 러시아는 평화적 원자력 또한 과학기술교류분야로 설정하였다. 이미 북한은 2021년 조선노동당 제8차대회에서 에너지문제와 관련하여 핵동력공업을 창설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올해 1월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시정연설을 통해 에너지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중 하나로 원자력발전소와 조수력발전소의 역할을 언급한 바 있어 러시아와 관련한 기술 협력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국제 및 지역기구들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조약의 제7조에서는 북한이나 러시아가 참여하고 있는 국제 및 지역기구에 상대 국가가 가입하는데 협조하고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북한은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국제 회의 및 포럼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23년 11월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최된 제9차국제문화연단(포럼)과 2024년 2월과 5월에 각각 러시아에서 개최된 유라시아정보기술연단과 국제안전보장수단전시회 ‘종합안전-2024’에 대표단을 파견하였다. 현실적으로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국제기구에 북한이 가입하는 방식이 유력해 보이는데, 대표적인 국제 기구로는 유라시아 경제 연합(EAEU),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 등을 들 수 있다. 이미 러시아는 지난 2월에 북한 체육성과 체육교류의정서를 체결하면서 브릭스플러스(BRICs+) 체육회담에 초청하였고, 북한은 브릭스플러스 체육성회담에 대표단을 파견하였다. 각 기구별로 참여국가들간 입장 차이가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회원 가입은 쉽지 않겠지만 올해 10월에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브릭스(BRICs)에 옵저버 자격으로 초청받는 등 참여 가능성은 과거에 비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실효성 있는 성과로의 이행 가능성
북한은 2023년 12월에 개최되었던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대외사업부문의 확대·발전을 위한 전략전술적 방침으로 사회주의국가의 집권당들과의 관계 발전을 강조하였다. 이는 북한이 일관되게 밝혀 온 대외정책이지만 이번 러시아와 새로운 조약의 체결이라는 구체적인 결과로 이어진 바, 6월 하순으로 예정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10차 전원회의에서 북러관계의 진전을 대외정책의 주요 성과로 평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적으로는 군사적 성과가 중요하지만 북한 내부적으로는 이번 회담의 결과가 산적한 경제 과제를 수행하는데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군사적 성과를 과시하는 것만으로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강조해 온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한과 러시아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하에서 이루어지던 한정적인 교역 수준을 넘어 전방위에서의 경제 교류 및 협력을 추진한다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경제부문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조약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식량과 에너지,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보건 문제는 최근 북한 경제에 난관을 조성했던 주요 사안들이다. 러시아와 관련한 협력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북한은 기본적인 경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향후 단기적으로는 경제를 안정화하고 경제정책을 수행하는데 필요하지만 자력으로 해결하기 힘든 각종 물자들을 확보하고 경제발전5개년계획(2021-2025)에서 주력하고 있는 정비보강전략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설비와 부품 등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김정은 집권 이후 처음으로 경제발전계획을 달성하는 성과 또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조약의 내용들이 실질적으로 이행되겠는가의 여부이다. 북한과 러시아는 1992년에 기존의 ‘북·러 경제공동위원회’를 ‘북·러 무역·경제 및 과학기술협조위원회’로 개칭하고 2023년 11월까지 10회에 걸쳐 회의를 진행하면서 각종 분야에서 협력사업들을 논의, 결정해 왔다. 그러나 핵문제와 대북제재, 러시아의 극동개발 사업의 지체 등으로 합의된 사업들조차 거의 추진되지 못했다. 이러한 전례를 고려할 때 조약 내용이 실질적으로 이행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국제정세의 변화와 북한과 러시아의 이해관계, 사전 논의 과정의 진행 등을 고려한다면 과거에 비해 이행가능성은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단극질서를 다극질서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공통된 지향을 확인하면서 국제 정세에 대한 공동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과 러시아 간의 교류 협력은 경제적 필요성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강화를 막아왔던 소극적인 방식에서 기존의 제재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적극적인 방식으로 선회한 것에서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된다. 그리고 전술한 바와 같이 이번 조약에 담긴 다수의 사업들은 이미 작년부터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서 실무 접촉이 진행되어 왔다는 점도 과거와 차이점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이번 조약의 경우 효력 중지 조건을 명시하고 있지만 효력 자체를 무기한으로 설정하여 과거 조약에 비해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다만, 조약에서는 원칙적인 수준에서 협력 부문들을 밝히고 있고 북한과 러시아가 사전에 논의한 내용들도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아 교류협력의 범위와 폭은 단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광범위하게 논의된 데 비해 북한과 러시아 간의 교류 협력을 위한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점에서 단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향후 국제 정세의 변화 및 북한과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달라진다면 교류협력의 수준이 조정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북중러 관계의 심화 가능성과 효과적인 위기관리의 필요성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북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의 체결로 북한과 러시아는 냉전 해체 이후 가장 밀착된 관계를 구축하였다. 공개된 조약 전문을 통해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교류협력 사업은 대외적인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진행될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조약의 목적과 의의를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서 다극질서 구축이라는 공통의 지향을 실현하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어 장기성을 띨 가능성 또한 높아졌다.
관련하여 북한의 중요한 외교 파트너인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북한과 러시아간 관계의 강화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중국의 부담을 완화하는 측면 또한 존재한다. 지난 5월에 중국과 러시아는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심화시키기로 합의하는 등 경쟁보다는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역내 위기를 촉발하지 않는 한에서는 용인할 가능성이 높다. 뿐만 아니라 유엔의 대북제재로 인해 중국이 북한과의 교류협력 사업을 북한의 기대만큼 확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러시아와 북한이 교류협력 사업을 활성화하는 것은 오히려 중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중국 및 일본의 언론에서는 중국과 러시아의 공동성명에 중국 선박의 두만강 항해 문제가 언급되었고, 러시아는 중국이 북한과 관련 문제를 건설적으로 논의하는 것에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내용을 보도하였다. 이를 고려할 때 경제적 측면에서는 국경 지역을 중심으로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북한과 중국, 러시아 사이에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업들에 대한 협력은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즉,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수준에서 북한과 중국, 러시아 사이에 느슨하게나마 상호 이해관계를 반영한 협의가 추진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이번 북한과 러시아가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은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하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를 지원하는 방안을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조약을 통해 러시아가 북한과 군사협력을 진행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조항을 명시한 데 대해 한국 정부는 명확한 입장을 밝힐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대러 관계의 레버리지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살상무기를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이 결정이 정부가 기대하는 것처럼 러시아의 판단과 행위를 바꿀 수 있는 ‘레버리지’로 작용하지 않고 오히려 북한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데에 대한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힘에 의한 평화’가 북한의 군사력을 더욱 강화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밀착되면서 오히려 북한에 대한 한국과 국제사회의 개입 수단이 줄어들고 있는 현재 상황을 직시하고 그동안 한국이 축적해 온 외교적 수단을 포함한 다양한 정책 수단들을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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